개미

by 김병섭



개미


몇 주 전 학교 앞에서 개미를 밟은 적이 있다. 바닥을 바라보니 죽진 않았지만 겨우 꿈틀거리기만 한 것이 곧 죽을 성싶었다. 죄책감은 둘째 치고 나는 그 개미를 관찰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니 시간은 많았다.


다리로 겨우 일어서는가 싶더니 다시 풀썩 주저앉더라. 쯧쯧, 그럼 그렇지. 그 전까지는 뽈뽈 잘만 돌아다니던 것이 저 지경이 된 걸 보니까 조금 미안해졌다. 개미 입장으로서는 잘 살고 있다가 나 때문에 대재앙을 만난 것이었으니까. 개미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차라리 완전히 죽여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 계속 지켜보기로 했다.


개미는 포기하지 않더라. 그 다친 다리로도 열심히 일어서려고 노력하더라. 계속 풀썩풀썩 주저앉기는 했지만. 등을 뒤집기도 하고, 괴로운지 바들바들 떨기도 하는데, 그걸 보고 몇 년 전 농장에서 개미를 본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어머니를 따라 운 좋게 당첨된 주말 농장으로 가던 길. 그 곳은 도심에서 떨어진 곳이라서 그런지 개미들이 정말 활발하게, 많이도 돌아다녔다. 아이고 징그러워. 개미들이 징그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나는 평상 위에 앉아서 나름 안전하게 멀찍히 개미들에게 먹던 과자 부스러기를 뿌렸다. 마치 그들에게 상을 내리듯이 말이다. 개미들은 삼삼오오 모여 내 부스러기를 받아갔다. 자기보다 더 무거운 부스러기를 힘차게 가져가던 그 개미들. 개미들은 자신들의 자매와 함께 생명을 운반하지. 그 생명에 대한 갈구. 왜인지 그것이 그들에게 느껴졌다.


나 때문에 다리를 다친 개미. 그 개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죄책감보다는 그 경이로움에 감탄했다. 만약 내가 자연재해로 장애인이 되었다면, 쉽게 포기하였을 텐데… 어떻게든 삶을 이어가려는 그 끈기가, 발악이, 삶에 대한 갈구와 그 고통이 매우 놀라웠다. 그것을 보고 나니 ‘저 개미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 다시 밟아 죽이는 것은 그 노력을 폄하하는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닌가.


개미 다리 개수는 6개래. 그럼 개미는 다리 몇 개 잘라도 인간보다는 더 이동하기 쉬울까? 유치원 다닐 때 소꿉놀이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지금 생각하면 꽤 잔인한 말이지만, 어렸을 때니까 그러려니 했던 것 같다. 그 친구는 지금까지 그 답을 찾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답은 ‘아니’였다. 개미는 매우 힘들어 하고 있었다. 최소한 이동하기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다리가 6개여도, 아프고 힘든 건 똑같구나. 인간도, 개미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그 생명에 대한 집착도 똑같겠지.


개미에게는 배울 점이 참 많다. 인간 자매끼리의 유전자 근연도-유전자가 서로 닮은 정도-는 1/2이지만 개미 자매끼리는 3/4이라고 한다. 따라서 개미는 인간보다 더욱 협동하고, 충심을 지키고, 삶에 대한 열망과, 자신들의 규칙을 지키며 살아간다고 한다. 인격체라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이 개미보다 나은 점은 과연 무엇일까? 인간의 정의는 “언어를 가지고 사고할 줄 알고 사회를 이루며 사는 지구상의 고등 동물” 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개미들에게도 나름의 언어가 있고, 사고할 줄 알고, 인간보다 더 끈끈한 사회를 이루며 살아간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개미보다 덜 인간이다. 다리를 다친 개미를 보며 나는 인간이 아닌 개미의 삶을 살기로 했다. 당신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적어도 난 다리를 다치고도 포기하지 않고 삶을 찾던 개미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저와 서로를 위해 열심히 먹이를 나르던 개미들도 잊지 못한다. 개미보다 못하게 살았던 내 모습도 잊지 못한다. 그럼 다시 묻는다. 당신은 누구인가. 또한 누구로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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