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자해다.

by 김병섭

사랑은 자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이돌이나 연예인, 가수 등을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하지 않았다기보다는 아예 그런 분야(쪽)에 관심이 없었다. 어떤 아이돌 그룹이나 가수의 노래를 듣더라도 그 노래가 좋아졌으면 좋아졌지, 그 노래를 부른 사람들에겐 관심이 가는 일이 없었다. 친구들이 옆에서 아무리 누구가 잘생겼고, 예쁘고 무슨 그룹이 엄청 멋지다 등의 말을 해도 그때만큼은 친구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가까이 있는 사람들도 아니고 멀리있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힘든 사람들을 좋아할 수 잇는건지 문득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결코 관심 가는 일 없이 궁금증에서 멈추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앞으로도 특정 연예인 누구를 좋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지내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인해 여자 아이들의 서수진이라는 멤버의 직캠이 떴다. 나는 그 영상을 보게되었고,. 이번에도 그냥 ‘와 이사람 예쁘네.’ 혹은 ‘노래 좋네.’ 정도만 느끼고 넘어갈 것을 예상하며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끝나고 나서는 마치 서수진에게 사랑에 빠진 것만 같았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부정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친구들도 계속 서수진에게 빠진게 맞다고 하고, 부정해봐야 좋은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인정하기로했다. 그렇게 굿즈도 사고, 사진도 모으고 노래나 뮤비등도 열심히 감상하며 지냈고, 내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고 행복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랬던 3개월이 지났고, 새로운 학교와 학기, 성적 등의 걱정과 설렘만을 느끼고 있던 2월 21일이 되었다. 그리고 성적이나 새로운 학교, 그것만이 나의 고민일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 날 오후까지만 해도 그 날이 내 인생 최악의 날이 되어버릴 것이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매우 평범한 하루였지만 사건은 아무런 징조도 없이 급작스레 찾아왔다.


친구에게 연락이 왔고 평소처럼 시답잖은 얘기일 거라 생각하며 내용을 읽어봤다. 하지만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 내용이 무려 서수진이 과거에 학교폭력을 일으켰다는 기사들과 폭로글이었던 것이다. 나는 믿을 수 없었고 혼란스러웠으며 믿고 싶지도 않았다. 솔직히 무슨 정신으로 친구에게 답장했던 건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혼란스러움 또한 느꼈다. 처음에는 당연히 현실 부정을 했다. 부정하던 그 상태로 몇시간을 평범하게 보내는 척 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이 무거웠고, 나는 일단 친구가 준 기사와 글들을 자세히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피해자의 주장과 증거들, 그리고 추가적인 폭로 내용들이 너무 명확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매체에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그랬다는 것이 정말 속상했고, 다른 한몊으로는 화도나고 믿을 수도 없었다. 그래도 일단은 무작정 서수진을 욕하거나, 그렇다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기로 하고 서수진이 본인의 입장을 밝힐 때 까지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고, 몇 주, 그리고 몇 달이 지나갔다. 그 사이 서수진은 몇 차례의 입장에서 일부는 인정하고 일부는 인정하지 않았고, 말도 몇 변 바뀌었다. 그리고 그렇게 허위 사실을 유포한 사람들에게는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하며 활동을 중단했고, 몇달이 지난 지금도 활동만 멈춘 채로 대응은 제대로 하지도 않고, 방치만 하고 있으니 서수진을 향한 마음이 점점 식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서수진을 향한 마음을 놓기로 결심했고, 약 3개월 간의 사랑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이 일을 겪고 처음에는 무작정 다시는 연예인이든 일반인이든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떤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도 없고, 잘못도 아닌데 무작정 그럴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럼 마음이 있던 상태에서 억지로 마음을 죽이는 것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해야하나 싶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애초에 쉬운 일이 아니고, 내가 마음이 식었다고 생각해서 진짜로 마음이 식어버리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인터넷도 찾아보고,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도 해보았다. 근데 그 일과 생각에 집중 하고있는 중에는 서수진 생각이 많이 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을 접을 일이 생겼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힘들지 않는 것이다. 아예 안 힘들 수는 없겠지만 무언가 집중할 것이 생긴다면 그래도 그사람 생각으로 인해서 많이 힘들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마음을 접은 뒤 집중할 것을 찾아서 주위를 돌리는 것이 정답인지는 모른다. 마음을 접는 일이 이번이 처음이었고, 사건으로부터 몇달이 지난 뒤에, 덕질을 열심히 하지 않던 때에 접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마음을 접을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사람 일이 그렇게 마음 먹은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일단은 이렇게 생각하며 지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