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상처
지금으로부터 약 13년 전, 내가 4살때의 일이다. 삼촌은 우리 집에 놀러와서 부모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카트라이더라는 게임을 하러 방으로 들어갔다. 부모님은 내가 게임을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셔서 평소 나에게는 게임을 접할 기회가 많이 없었다. 하지만 삼촌이나 형들이 와서 게임하면 나는 옆에서 보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평소 많이 접하지 못해서인지 신기했던 것 같다.
늘 그랬던 것 처럼 나는 삼촌이 게임을 하러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알고 삼촌의 뒤를 쫄래쫄래 쫓아서 들어갔고, 삼촌 자리 옆에 앉았다. 한참을 구경하다가 나는 컴퓨터 옆에 있는 호치케스를 발견했다. 그당시 나는 호기심이 매우 많았고, 뜨거운 물에 손을 넣어보거나, 껌을 삼켜보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하였다. 호치케스를 봤을때 내 머릿속에 있는 엉뚱한 호기심이 깨어났고, 호치케스로 손을 찝으면 아플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저 호치케스로 손을 찝으면 어떻게 되지?’ 라는 의문이 더 컷다. 결국 나는 호기심에 내 신체를 지배당해 호치케스로 손을 찝었다.
나는 매우 아파서 울었다. 손가락에 클립이 찝혔고, 피는 계속 흘렀다. 나는 옆에 게임을 하고 있는 삼촌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삼촌은 무시하고 게임만 할 뿐이었다. 결국 내 울음소리를 들은 엄마가 와서 달래주었다.
그때 나는 매우 아프기도 했지만, 나를 무시한 삼촌에 대한 미움이 더 컷다. 삼촌이 나보다 게임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 13년이 지나고 호치케스로 찝힌 고통의 기억은 잊혀졌지만, 나를 무시하고 게임만 했던 삼촌에 대한 기억은 여전하다. 4살 때의 기억 대부분은 없지만, 그때 호치케스가 어딨었는지, 삼촌이 무슨 게임을 했는지 생생하게 기억나는 이유도 이것 때문인 것 같다.
12살때 나도 게임을 보지만 않고 하게되었고 친구 따라 종종 PC방에 가게 되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마음껏 할 수 있는 PC방이 너무 좋았고, 부모님은 PC방에 가는 것을 싫어하셔서 갈때마다 ‘친구들이랑 놀이터간다’, ‘친구 집에 놀러 간다’라는 거짓말을 했다. 나도 삼촌과 마찬가지로 게임 때문에 상처를 준 것이다. 거짓말이 들키고 엄마에게 많이 혼났다. 12년 인생 중 가장 많이 혼났던 것 같다. 그 전에는 혼나면 억울해서 대들었지만, 그때 나는 엄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엄마는 내가 PC방에 간 것보다 거짓말을 한게 더 화났다고 한다. 나는 신뢰를 다시 쌓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이를 계기로 엄마와는 가까워지고, 거짓말과는 거리를 두었다.
이처럼 누구든지 게임때문이든 욕심때문이든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주고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상처는 평생 지워지지 않고 머릿속에 남아 원래의 관계를 회복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쁜 상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상처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성장한다. (원래의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에서든, 상처를 이겨내는 과정에서든) 모든 사람들은 개인의 말 못할 상처를 가지고 있고, 그 상처를 이겨내고 살아가기 때문에 모든 인간의 삶은 빛나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다. 너무 상처와 멀리 하지마라. 상처는 내가 힘든 일을 이겨내고 꿋꿋이 살고 있다는 증거이며, 나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거울이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때로는 자신의 상처가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