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심의 고마움
문득, 눈부시게 화창한 5월의 하늘을 바라보다 얼마 전 보았던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40~50대 정도로 보이던 어떤 색맹 아저씨에 관한 영상이었다. 그 영상에서는 색맹 아저씨가 특수 제작된 안경을 통해 처음으로 색깔을 마주하게 된 반응을 보여주었다. 선글라스, 또는 사이클 안경과 같이 생긴 특수제작 안경은 평범해 보였다. 안경을 착용하려는 아저씨 주위에는 온 가족이 숨 죽인채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아저씨의 가족 곁에 서서 아저씨가 안경을 착용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안경을 들어올린 아저씨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저씨가 느끼는 감정을 완벽하고 고스란히 이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마 아저씨는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다채롭고 아름다운 색과 빛에 압도된 것 같았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주변을 계속해서 두리번 거리는 아저씨를 가족들이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저씨는 자신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얼굴에 핀 분홍빛 기쁨과 하늘빛의 투명한 눈물 방울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아저씨의 영상을 보다 보니 나의 어린시절을 회상할 수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빛에 취약한 나의 눈에 대해 늘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옛날 앨범들을 펼쳐 소풍을 가거나 여행을 가서 야외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 나는 대부분 눈을 찡그리고 있다. 거의 모든 사진이 눈을 반쯤 뜬 모습일 정도로 빛이 쨍쨍한 한 낮에 밖에서 노는 것은 나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어린이집을 다니던 5살에서 6살 정도의 나는 태양을 보는 것을 스스로의 대결로 삼고 눈을 감지 않고 몇 초 동안이라도 태양과의 눈싸움에서 이기려고 했다. 그렇지만 햇빛이 반사된 자동차 창문도 제대로 쳐다볼 수 없는 나는 매일 태양과의 눈싸움에서 패배했다.
눈이 있음에도 태양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때의 나는 태양을 하느님 또는 부처님 같은 강력하고 절대적인 신으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 태양을 신으로 믿었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의 나는 상상력이 매우 풍부했었던 것 같다. 실제로도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눈부셔 쳐다볼 수 없는 태양을 신으로 섬겼기 때문에 과거의 내가 완전히 터무니 없는 생각을 한 건 아닌 것 같다. 이러한 얘기는 혼자만 간직했었다. 왜냐하면 영화에서도 유니콘과 같은 전설 속 동물이나 귀신 같은 것을 본 주인공의 말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의 말에 공감해주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신을 이기려는 눈싸움을 혼자 하며 영상의 아저씨와는 다른 용도의 선글라스를 소지하고 다녀야 했다. 빛이 닿아 눈부신 색채들을 뽐내는 주변 풍경의 아름다움보다 빛의 눈부심이 주는 눈의 고통과 피로도를 더 크게 받아들인 나는 어리석을 생각들도 자주 했다. ‘만약 해와 빛이 없어 온 세상이 흑백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눈부신 색들을 볼 수 없었다면 좋았을텐데’ 등 눈부신 색깔들을 볼 수 있는 나의 눈에 대한 고마움을 몰랐던 것 같다.
영상에서 아저씨는 눈부신 빛깔들에 사로잡혀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며 눈부심에서 벗어나려 했던 과거의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영상의 아저씨를 포함한 전 세계의 많은 색맹 또는 시각 장애인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분들이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것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모르는 것도 해서는 안된다. 우리 모두는 각자에게 주어진 것의 종류나 양이 다를 수 있다. 나에게 주어진 것을 남들이 가진 것과 비교하며 부족하거나 쓸모가 없다고 여기는 것은 경솔하고 잘못된 행동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나보다 많이 가진 사람들과 스스로를 비교하지 나보다 부족하거나 없는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앞으로 나의 결점을 탓하기 보다는 부족하더라도 조금은 있다는 것을 늘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놓고 나 자신에게 감사한 삶을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