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보기 전 새싹을 보는 것은 어떤가
매년 4월마다, 벚꽃이 만개 하는 일명 “벚꽃 시즌”이 돌아온다. 그러나 내게 이러한 벚꽃 시즌은 그저 시험 기간이 된지 오래였었다.
나 역시 벚꽃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시험을 봐야하는 나이가 되고, 벚꽃이 피고 지는 기간은 1학기 중간고사 기간이라는 공식에 스스로 점령 당해버렸을 뿐이었다. 솔직히 좀 억울하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아무리 벚꽃을 보고 싶어 하더라도 그 시간에 문제 하나를 더 보는게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난 늘 내 인생을 동정하며 부정적으로만 바라봤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내 생각들의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또한 내 생각을 바꾸게 되는 계기도 그리 거창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라 내 일상생활에서의 일이었다.
올해, 2021년에도 마찬가지로 제대로 벚꽃시즌을 만끽하지 못했었다. 물론 코로나라는 이유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말이다. 난 그 부분이 억울해 카페에서 한참이나 친구에게 신세 한탄을 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그러던 도중에 들은 친구의 말은 나를 멍하게 만들었고 그 동안의 철없던 생각에 창피해진 내 얼굴을 빨갛게 달아올리기 충분했다.
“야, 1년중에 볼 거리가 벚꽃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대체할만한 것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은데. 주위를 좀 둘러보고 살아.”
“아, 뭐가 있는데……………”
“당장 밖에 들판에 핀 꽃들도 있고, 별이 가득한 밤 하늘도 있고.뭐 말고도 많지, 다 말하자면 날 새겠네. 공부도 조금씩 스트레스를 풀어 줘야 결과가 더 좋다, 알지?”
그러고는 다시 카페 음료를 쪽쪽 빨아 마시는 것으로 보아 아마 얜 자신의 말이 내게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열일곱살짜리 소녀한테 그런 말 한마디는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것이다.
난 친구와의 만남 뒤로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 물론 학생이기 때문에 학업은 계속 열심히 하지만, 그 속에서 여러 가치 있는 것들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예를 들면 학원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풍경을 몇분이라도 만끽한다던가, 미세먼지 없이 맑은 날 자기 전 밤하늘을 보며 노래를 듣는다던가.
그 친구에게는 고마운 마음이 크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모든 힘든 일을 세상 탓으로 돌리는 것, 신세한탄을 하며 자기 인생을 부정하는 것 밖엔 없던 내가 드디어 주위를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말 한마디에 나의 문제점을 깨닫고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건 내가 그러한 부분에 있어 대단한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의 나처럼, 원하는 것만 바라보며 주변의 사소한 것들은 잊거나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세상을 더 넓게 보고, 주변을 더 살피며,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원하는 것도 결국엔 얻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보고 싶어 하는 나무를 보기 전에, 그 나무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주변의 새싹들, 나뭇가지 위에 앉은 새들, 때에 맞춰 피어난 꽃이나 열매들에게 조금씩 관심을 갖고 눈길을 주며 그들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은 어떨까, 결국 그 나무 역시 더 빛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