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기의 물줄기에 담긴 의지
“하지만 이것은 지금 제 점심이죠.”
베어그릴스라는 생존 전문가가 연어를 먹으면서 말한 말이다. 그가 연어를 먹을 때 연어는 파닥 파닥 거리며 몸부림을 친다. 자연의 섬광에 비친 물고기의 비늘은 역동적인 연어의 몸부림과는 다른 듯 했다. 그것은 마치 강의 물줄기를 한 줄기 잘라 물고기에 새긴 듯 과격하지 않고 유유히 흘렀다. 누군가는 연어를 보고 사케동(연어 덮밥)을 떠올렸을지 모르겠지만, 내 기억 속 한켠에는 정겨운 고향 다리 아래가 떠올려진다.
개도 혀를 헐떡이며 물을 들이키던 2014년의 여름이 지나고, 강릉 거리 가로수의 낙엽이 막 떨어지기 시작한 그 초가을날, 강릉의 남대천에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 연어, 입이 삐죽 튀어나온 암적색의 물고기가 저편에서 강릉교 아래까지 가득 메우고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호기심에 이기지 못하고 난간 사이로 거북이처럼 고개를 쭉 뺐다.
“야, 그러다가 난간 사이로 떨어진다.”
누나는 장난스레 내 등을 툭 밀치며 내가 떨어지는 시늉을 했다. 고소공포증이 심했던 나는 누나의 말에 넘어가 재빨리 고개를 쳐들었다. 나는 난간 뒤에서 연어를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강릉교 아래서는 둑을 넘기 위해 연어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둑을 오르려는 연어들의 의지는 감히 그 어느 주변의 거센 물살도 꺾을 수 없었다. 공중에 뜬 채로 파닥거리는 그 몸부림은 마치 거센 물살이라는 법칙을 역행하는 연어들의 굳센 의지같았다. 모든 만물은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 의지는 거센 물살을 가르고, 높은 둑을 뛰어넘는 것보다 소중할지도 모른다.
연어가 상류로 올라가는 이유는 ‘귀소 본능’ 때문이라고 만화책에서 본 적이 있다. 연어는 태어나자마자 강의 하류로 내려간 후 바다에서 자란다. 그리고 산란기가 되면 다시 정확히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강의 상류로 올라가 산란을 한 후 최후를 맞게 된다.
강물은 세차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고요하고 조심스럽게 생명들을 바다를 향해 옮기고 있다. 저 멀리 태백산맥의 조그마한 계곡부터 남항진 해안까지 생명을 옮겨야 하니 아마 당연한 이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어는 알에서 태어나 심장으로부터 움큼 피를 순환해 그 근원의 힘으로 고요한 물살을 가르고 바다로 가는 것이다. 비록 평온하고 묵묵한 바다속에서 그 심장은 고요할것이다. 하지만 그 고요한 심장은 다시한번 그 순환의 전율을 느끼기 위해 다시 물살을 가르고 생명의 근원지로 돌아올것이다. 비록 최후를 맞더라도 연어는 과거의 전율을 느끼기 위해 다시 생명의 근원지로 돌아가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의지는 생명의 흐름을 역행하여 생명력이 약해 말라 비틀어지더라도 바다에서 느끼지 못했던 그 조그만 심장에서 나오는 생명의 격동을 위해 강물을 가를것이다.
사람 또한 그렇다, 사람 또한 나이를 먹어가면서 마음 속의 정열은 식기 마련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땅으로 들어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을 때, 비로소 그 정열은 마지막 생명력을 다하여 활기를 되찾는다. 우리는 그것을 ‘회광반조’라고 명명한다. 아마도 우리가 늙고 병들면 고향에 가고 싶은 이유는 연어와 같지 않을까 싶다.
제작년, 무심코 뉴스 기사를 돌아보던 중 강릉 남대천의 연어가 위험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높아지고 많아진 둑, 주변 하수 처리장에서 나오는 오염수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언어들은 상류로 올라가지 못하고 남대천 강둑에서 매말라가고 심지어는 강 하류에 알을 낳게 되었다. 썩은 시체들은 파리들과 갈메기의 먹잇감이 되고, 장난 많은 아이들의 놀잇감이 되었다. 강자의 편의를 위해 약자들은 자신의 의무이자 천명의 수행에 있어 크나큰 어려움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약자들은 핍박을 견디기 위해 모이기 시작했다. 그 언어들은 모여서 상류로 향하고 일부는 둑을 전부 뛰어넘었다.
김기택의 시 [멸치]의 한 구절 “몸통을 뒤틀고 있는 이 작은 무늬가 파도를 만들고 해일을 부르고 고깃배를 부수고 그물을 찢었던 것이다” 라는 구절이 있다. 하물며 작은 멸치도 이러한 행동을 하는데 어찌 연어도 못할 것인가. 우리 또한 강자로부터 지키기 위해 다같이 모여 투박한 손에 죽창을 들고 촛불을 들어 왔다. 죽창 한 마디, 촛불 하나의 일렁임이 모여 죽산이 만들어지고 대화염이 되며 우리의 의지를 가다듬었다. 한줄기의 의지, 그것이 물줄기가 되든, 나뭇결이 되든, 촛불의 일렁임이 되든, 우리는 한올, 한줄기가 뭉쳐 강의 흐름이 되어 사회라는 강이 되고, 역사라는 콘 바다가 되어 해류를 통해 지구로 매일매일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