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한테 고백하려고 한 거야

난 전혀 가벼운 사람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이런 적도 처음이야.

by 김병섭

중학교 3학년 나는 그를 처음 알게 되었다. 기말고사 시험 준비를 위해 독서실 한달 이용권을 끊고 일주일쯤 다녔을 때였다. 난 항상 벽에서 한칸 떨어진 자리에 앉았었다. 그 애도 항상 앉는 자리가 있었는데 내가 오른쪽 대각선을 바라보면 닿는 시선이 그 애의 자리다. 그 애는 항상 강의를 보며 공부를 했다. 매일 보다 보니 내적 친밀감이 생겨서인지 계속 눈이 갔다. 안 오는 날은 ‘오늘은 안오나보네’ 나보다 일찍 와있는 날은 ‘오늘은 빨리 왔네’ 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난 9시가 넘기 시작하면 나갈 준비를 한다. 그 애는 몇 시에 가는지는 모르지만, 항상 나보다는 늦게 갔다. 그런데 그날은 나와 같은 시간에 나갈 준비를 하길래 일찍 가나 싶었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는데 항상 보던 배경에서 다른 배경으로 바뀌니 뭔가 색다른 기분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문을 열고 나가 몇 걸음 걸었을 때 그 애가 내 어깨를 톡톡 쳤다 나에게 자기 핸드폰을 내밀며 “친해지고 싶은데 번호 주실 수 있나요” 라고 내게 말했다. 난 이런 경우는 처음이고 그 애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는 게 현실 같지 않았지만 내가 놀란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숨기고 번호를 주었다.


그리고 고개를 꾸벅이고 서로 갈 길을 갔는데 몇 분 뒤 카톡이 왔다. “안녕세요” 하고 자기 번호를 보냈다. 처음엔 어떻게 답장을 해야 하나 고민을 했고 겨우 보낸 말은 “안녕하세요” 였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서로의 나이, 이름, 학교 등등을 물어보며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 애랑 메시지를 주고 받는 건 재밌고 즐거웠다. 왠지 모르는 마음이 간질거리는 기분도 들고 설렜다.


카톡으로는 잘 말하지만 막상 독서실에서 만나면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그 애는 나한테 말을 잘 걸어왔는데 나는 어색해서 길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랬던 우리가 친해지게 된 계기는 전화였다. 평소와 같이 자기 전에 카톡으로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내게 “전화로 말할까?” 라고 그 애가 보냈다. 전화는 처음하는 거여서 어색할 것 같았지만 그러자 하고 전화를 했다. 처음에는 정적이 싫어서 일부러 더 말을 많이 하고 그랬다. 점점 어색함이 풀리면서 대화도 자연스러워졌는데 그때 전화가 이렇게 재밌다는 걸 처음 알았다. 무려 그 애와 1시간을 넘게 전화를 했고 우리는 늦은 시간이 돼서야 잠들었다.


그 이후로 독서실에서 만나서도 잘 인사하고 잠깐 쉬는 시간엔 수다도 떨었다. 난 낯을 가리고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성격인데 그 애는 나와는 반대로 아주 적극적인 애였다. 내게 관심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좀 친해지고 나서부터는 더욱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난 그게 좋았지만 밀어냈다. 그 애가 너무 가벼워 보이고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그럴 것 같아 보여서였다. 내가 밀어내도 꾸준하게 날 좋아한다고 말하던 그 애는 내가 자꾸만 선을 긋자 내게 말했다.


“내가 이러는게 싫어?”

“아니, 너가 싫은 건 아닌데 알게된 지 얼마 안됐는데 이러는 게 가벼워 보여.”


그 애는 내가 가벼워 보인다는 말을 듣고 놀란 모습을 보였다.


“난 전혀 가벼운 사람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이런 적도 처음이야. 너한테 내가 가벼워 보이는 모습을 보였다는 게 너무 싫다”


그때부터 나는 그 애가 달라 보였다. 내게 보여준 행동들에도 다 의미 부여를 하게 되었고 행동 하나하나에 설렜다.


그 후 우리는 주말에 만나 놀기로 했다. 그 애와 얘기를 하다가 피아노를 잘 친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내가 피아노를 쳐달라고 했다. 바로 그 주 주말에 만나 음악실을 가게 되었는데 날을 잡고 놀기로 하는 건 처음이고 음악실이라는 곳을 가는 것도 처음이어서 기대를 많이 했다. 난 예뻐 보이고 싶어서 한껏 꾸미고 갔다.


버스를 타고 주안역에서 내렸고 내가 먼저 와서 정류장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다. 곧 그 애가 탄 버스가 오고 버스에서 내렸는데 나와 마찬가지로 꾸민 모습이 눈에 보였다. 하늘색 스트라이프 반팔 셔츠에 검정 슬랙스 였는데 한여름과 어울리는 옷차림이었다. 원래는 어색하지 않았던 우리가 그날은 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고서 주안역과 가까운 음악실로 가서 피아노가 있는 방에 들어갔다. 내가 무슨 곡 칠 수 있냐고 묻자


“니가 듣고 싶은 건 다 칠 수 있어”


라고 말했고 난 그때 한번 더 반했다. 그 애는 정말 피아노를 잘 쳤다. 나는 ‘river flowers in you’ 라는 곡을 좋아한다고 말하자 나도 그 노래 좋아해 라며 바로 쳐주는데 막힘없이 멜로디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그 뒤로도 피아노를 계속 쳐주었고 기타도 칠 수 있다면서 기타도 쳐주었다. 김광석의 ‘잊어야한다는 마음으로’를 기타로 연주하며 노래를 불러주는데 떨렸는지 중간중간 목소리에 떨림이 느껴졌다.


내게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러주는 그 애가 좋았다. 좁은 방에서 피아노 의자에 앉아 노래를 불러주는 목소리와 선풍기 바람에 불어오는 그 애의 향수가 분위기를 만들어 마음을 들뜨게 했다. 노래가 끝나고 정적이 흘러서


“좋다. 너 노래도 잘부른다”


라며 말을 꺼냈고 아니라며 칭찬을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몇 초간 말이 없더니 그 애는 내 생각을 멈춰버렸다.


“나 원래 누구 앞에서 기타 치고 노래 부르지 않는데 너한테 고백하려고 한 거야. 알고 있겠지만 나 너 좋아하는데 우리 사귈래?”


그 말에 나는 생각을 할 수 없게 되어버렸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점차 현실감각이 돌아오고 내가 말을 하지 않으면 거절의 의미로 받아들일까 봐 난 말했다.


“그래, 나도 좋아”


그날의 로맨틱한 고백이 지금까지 우리를 이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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