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이유는 나 때문이었다
나는 아빠에게 엄청난 늦둥이 딸이다. 우리 아빠는 나이가 엄청 많았다. 다른 사람이 몇 살을 예상하던 우리 아빠는 나이가 엄청 많았다. 그렇기에 우리 아빠는 다른 친구의 부모님들과 다른 점이 매우 많았다.
내가 초등학생일 적에 아빠는 항상 차로 나를 데려다주셨다. 하지만 아빠는 항상 학교 옆이나 교문 앞에 세워주시곤 차 안에서 밝게 손을 흔들며 잘 다녀오라고 인사해주셨다. 그리고 우리집 화장실 서랍에는 항상 검은색 염색약이 존재했다. 한 개도 아니고 적어도 세 개씩 말이다. 어릴 적엔 염색약이 있는 게 당연해 보일 정도로 의식도 안 했지만 중학생이 되고 난 뒤 그 이유를 엄마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그 모든 이유는 나 때문이었다는걸 알게 되었다. 아빠가 나를 학교 안까지 데려다주지 않은 이유는 다른 친구들 아빠와는 다른 더 나이 든 모습 때문에 놀림을 받아 내가 부끄러워할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염색도 다른 아빠들과는 다르게 빼곡한 흰머리를 가리기 위해서였다. 엄마가 말씀하시길 내가 너무 늦게 낳은 딸이라 아빠가 너무 이뻐하셨다고 했다. 나도 기억하고 있다. 아빠의 모든 하루하루는 나를 기준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그 나이에는 필요 없는 염색도 매번 나오는 흰머리를 가리려 하셨던 것이었다.
난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나를 많이 아낀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난 그런 행동 하나하나의 의미는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여태까지 아빠의 흰머리를 보지 못했던 이유이며 아직도 아빠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제야 말하는 거지만 어릴 적 나는 아빠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부끄러웠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아빠는 나를 한 번도 나무라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을뿐더러 나에겐 다른 사람 앞에서 자랑할 수 있는 너무나도 자랑스러운 하나뿐인 내 아빠였다. 그래서 난 항상 이 이야기를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진다. 그런데도 내가 단 한 번 아빠의 흰머리를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아빠가 아팠을 때이다.
난 그때 검은 머리 하나 없이 새하얀 아빠의 머리를 처음 보았다. 처음에는 너무 놀랐다. 아빠의 흰머리라니 상상한 적도 없고 보았던 적도 없기에 너무 다른 사람 같았다. 난 그제야 아빠가 많이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아빠의 힘겨운 노력 덕에 그런 걸 모르고, 신경 쓰지 않고 커왔지만 난 그때가 되어서 아빠가 많이 늙었다는 것과 함께 이젠 아빠가 그럴 힘도 없이 아프다는걸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되니 그동안의 모든 게 다시 보였다. 매번 염색을 하던 모습과 주말마다 날 데리고 나가시던 아빠의 모습이 말이다. 하지만 아빠는 한 번도 힘든 모습, 귀찮아하신 적이 없으며 그저 어린 딸을 위해 이 모든 노력을 하셨다. 난 이후로 가끔 염색약 이 단어 하나에 아빠의 흰머리가 생각이 나고 아빠가 했던 노력이 떠오르며 아빠와 함께했었던 모든 것들을 추억하곤 한다. 내가 느끼기엔 너무 짠했던 우리 아빠의 이야기. 아무에게나 쉽게 말할 수 없지만 절대 부끄럽지 않은 나의 어릴 적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