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하지 않아도 될 일

두 바퀴를 돌아도 동생은 보이지 않았다.

by 김병섭

내가 8살이고, 동생이 6살이던 여름 날 동생을 다시는 못 볼 뻔 했던 적이 있었다. 날씨가 좋던 그 날 엄마랑 나랑 동생이랑 셋이 구월동에 있는 뉴코아 아울렛으로 쇼핑을 하러 갔었다. 제일 먼저 동생 옷을 보고 사고 그 다음으로 내 옷을 구경하고 구입하고 마지막으로 엄마 옷까지 신나게 쇼핑한 뒤 1층으로 내려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던 우리는 에어컨이 빵빵한 차를 타고 집에 갈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집에 가기 전 엄마는 화장실을 간다며 우리한테 얌전히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하신 뒤 화장실을 가셨다. 그렇지만 체력이 넘치고 넘치던 어린 시절에 그 넓고 신기한 게 많은 아울렛에서 어떻게 얌전히 있을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누나가 되어서 엄마 말 안 듣고 멋대로 행동했던 게 정말 어리석다. 엄마를 기다리던 그 짧은 순간조차도 가만히 있지 못했던 나와 동생은 술래잡기를 하였다. 아울렛 정문에서 시작하여 동생이 먼저 도망가고 내가 찾으러 가기로 한 뒤 게임을 시작했다. 10, 9, 8, 7, 6. 5...땡! 10초를 다 세고 동생을 찾으러 나섰다.


그러나 한 바퀴를 돌고 두 바퀴를 돌아도 동생은 보이지 않았다. 좀만 돌아다녀보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동생이 생각처럼 보이지 않아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이런 당황스러움도 잠시 점점 알 수 없는 무서움이 다가왔다. 평소에 느끼는 무서움과는 다른,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전 느껴보지 못한 무서움이었다.


한참을 돌아다녀도 보이지 않자, 이젠 동생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버린 나는 그러면 안 되는걸 알면서도 밖으로 나가 근처를 돌아다녔다.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주위를 둘러봤다. 난 그제야 알아차렸다. 아울렛을 벗어나 모르는 곳에 와있었다는 사실을. 모든 것이 내 잘못 같았다. 어린 동생을 챙기지 못하고, 동생을 찾겠다고 돌아다니다가 모르는 곳에 와버리고. 엄마는 그런 나로 인해서 소중한 사람 두 명, 그러니까 나와 동생을 동시에 잃어버릴 뻔 했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같은 곳을 계속해서 맴돌다가 만난 반가운 얼굴. 누구보다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엄마를 만났다. 동생은 어딘가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텐데 그런 동생을 두고 난 엄마를 만나 기뻐했다는 사실에 내가 너무나도 밉다.


걱정을 넘어서 무서워 보였던 엄마는 아마 나와 같은 무서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엄마는 나보다 더 큰 무서움을 느꼈던 게 분명하다. 아마 아직 다 채워주지 못한 자신의 사랑을 더는 채울 수 없다는 무서움이 아니었을까.. 엄마를 만난 기쁨도 잠시, 바로 동생을 찾으러 다시 아울렛으로 갔다.


제일 먼저 안내원에게 어린 남자아이를 본 적이 없느냐고 물어보기 위해 안내데스크로 가던 중, 나는 들을 수 있었다. 동생의 울음소리. 안내원에게 갈수록 그 소리는 커져만 갔다. 그 소리가 정점을 찌르는 곳은 안내원이 있는 곳이었다. 동생은 안내원에게 안겨 목이 터져라 울고 있던 것이다. 엉엉 우는 동생을 보며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고, 미안하였다. 그 낯선 곳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수많은 사람들 곁을 지나 안내원에게 가있는 동생에게 참으로 고마웠다. 엄마와 나는 안내원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동생을 챙겨 서둘러 차를 타러 갔다.

난 긴장이 풀리고 너무 많이 울어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지하주차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엄마는 우리를 혼냈다. 지금에서야 정확히 말해보면 우리를 챙기지 못한 자신을 혼내는 것 같았다.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우릴 쳐다보며 “다시는 그러지 마” 라고 말하던 엄마의 모습이 생생하다. 그러고 엄마는 나를 보듬어 줬다. 난 마치 그 날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용서받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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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나도 마음이 어리던 시절, 소중한 누군가를 잃어버리고 보고 싶은 누군가를 볼 수 없고, 그 누군가를 부를 수 없는 허전함과 답답함을 경험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고 그 역할을 잘 해내고 싶었을 테고 그러지 못했다고 생각하실까봐 걱정이 된다.


다들 경험을 해봐야 안다고, 경험을 많이 해봐야 한다고 그러지만 세상엔 경험하지 않아도 될 일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아마 내가 겪은 일은 경험하지 않아도 될 많은 일들 중 하나인 것 같다. 무서움, 슬픔, 답답함, 미안함.. 좋은 감정이 아닌 어두운 감정만 가득했던 지난여름 날, 경험하고 싶지 않은 무서움을 경험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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