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세우스 배라고 소개할 수 있을까?
나는 유튜브를 보다가 “나”에 대한 영상을 봤다. 나는 영상을 본 후 남에게 나를 소개하는건 당연히 어려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고, 나의 생각을 통제하고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되었다. 그리고 그 영상 속에서는 데카르트의 명언에 대해 반박을 하며 ‘나’ 와 ‘생각’ 에 대해 설명했다. 그 명언은 ‘나는 생각한다,고로 존재한다’였다. 다들 어디서 한번 쯤은 들어본 명언일텐데 무엇이 틀렸다는걸까?
첫째로, 반박한 내용은 “생각”이였다. 생각? 생각이 뭐가 틀렸다는 걸까?라고 질문 할수 있을 것이다. 생각은 매우 모순적이다. 우리는 원자들로 소통하고 움직인다. 우리는 과연 그것들을 통제하고 있을까? 1980년대 미국의 벤자민 라벳은 뇌 과학의 한 획을 긋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실험의 이름은 ‘자유 의지’ 였다. 내용은 실험자들에게 뇌전도 즉 뇌신경 세포의 전기 활동을 그래프한 기계를 실험자들 머리에 설치하고 버튼을 눌러보라고 지시하였다. 그 후 실험자들이 버튼을 누르겠다고 결심한 약 0.5초 전에 그 결과를 미리 알 수 있었다. 0,5초라는 시간이 너무 짧아 보이는가?
그러면 최근인 2019년 특이한 실험을 하기로 유명한 막스프랑크 연구소에서 논문 하나가 올라온다. 실험에서는 실험자들에게는 그림 몇장을 보여주고 그림을 골라보라고 하였다. 실험 결과는 실험자들이 그림을 무엇을 고를지 11초 전부터 결과를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생각이란 걸 하고있는걸까? 아니면 심장이 뛰는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뇌도 자동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무도 ‘나는 심장이 뛴다’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도 ‘나는 혈액순환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또 한 실험에서는 실험자 몰래 뇌에 전기 자극을 해서 왼손을 들게 하고 과학자는 시치미를 때며 왜 왼손을 올렸냐고 물어봤다. 근데 실험자들은 ‘올리고 싶어서 올렸다.’ ‘머리가 간지러워서 올렸다.’ 등 이미 일어난 일에 온갖 이유를 갖다 대는 것이었다. 우리는 정말 생각이란걸 하는 걸까?
둘째로, 반박한 것은 ‘나’ 라는 것이다. ‘나’라는게 뭐가 틀렸다는 걸까? 그럼 ‘나’를 소개해보자 ‘나’는 뭔가? ‘나’는 키가 크다, ‘나’는 잘생겼다, 못생겼다 팔이 길다, 다리가 길다 등 ‘나’라는 사람을 소개할 방법은 수도 없이 많지만, 이상한 건 다른 사람이 존재하지 않을 때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건 상대적이기 때문에
우리의 태양계의 행성이 어떤 속력으로 움직이고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알 수있다. 하지만 이상한건 그 행성도 다른 행성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떤 속력으로 움직이고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설명할 수 없다. 모든건 상대적이니까. 그렇다면 ‘나’는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나는 혼자있을 때 설명도 할 수 없는데 말이다.
나는 가상이다. 또 하나의 예시를 들자면 테세우스 배가 있다. 이 역설은 정답이 없다. 아테네 사람들은 테세우스 배를 몇백년간 보존하고 지켜왔다. 그 배는 판자 하나가 낡을 때 마다 교체하고 다른 판자가 또 낡으면 교체했다. 그렇게 몇백년간 교체한다면 어느 순간 원래 만들었던 배의 판자는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테세우스 배라고 소개할 수 있을까?
만약 테세우스 배에서 떼어넨 낡은 판자로 다시 테세우스 배라는 것을 만든다면 그것을 테세우스 배라고 소개할 수 있을까?도무지 답이 없어보이는 이 유명한 역설은 관점을 바꾸면 아주 쉽다. 그것은 애초에 태세우스 배라는건 존재하지 않는 그냥 사람들이 온갖 이유를 갖다 붙인 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어려운 문제를 풀어보자. 여기 ‘나’ 라는 것이 있다. ‘나’는 40억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세포들은 낡으면 교체된다. 피부는 4주에 한번씩, 위장 벽은 2~3일에 한번씩 그렇게 교체가 계속되다 보면 우리는 7년에 한번씩 나를 구성하고 있던 세포들은 없는 상태로 새로운 것이 된다. 7년 전의 나를 구성하던 세포는 하나 없는 상태로 나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된다는 것이다. 태세우스 배의 역설과 같지 않은가? 그렇지만 우리는 ‘나’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또 하나의 예시를 들자면 아이가 말하는 것에 있다. 아이는 ‘나’를 나라고 부를줄 모르고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 ‘나’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소개할 때 애쓴적 있는가? ‘나’를 설명하는게 어렵다고 느껴진적 있는가? ‘나’를 소개하는건 어려울 수 밖에없다.
왜냐하면 ‘나’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