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어디지. 갑자기 몽롱해지는, 꿈을 꾸고 있는 듯한.
푸른 하늘,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 걸 알리는 알리는 듯 한 새들의 노래, 방 창문으로 기어코 비집고 들어온 햇살 한 줌, 애써 알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다 아는 내용인데. 마음 한 켠에서 이미 온갖 부정적인 마음들이 가득 차있었지만 애써 꾹꾹 눌러 담을려고 노력한다. 별 다를 것 없는 일상. 달력을 보니 앞자리가 3으로 바뀌었네, 찬물 한 잔 마시고 자연스럽게 침대로 비집고 들어간다. 봄이라고 새로운 노래, 행사, 영화 ... 갖가지 잡다한 것들 천지. “아 짜증나”
또 시작이다. 이대로 가면 한도 끝도 없기 때문에 얼른 침대로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는다. 겨우 1미터 반경도 안 되어보이는 나와 창문 사이의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절망과 희망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니. 1:15분. 야박하게 흐르는 시간은 내 맘을 알련지. 이대로 가면 하루가 갈 게 뻔하니 얼른 핸드폰으로 들어간다. 부정을 해도 집에서 부정하긴 싫어서. 들어가자 맨 왼쪽 귀퉁이에 쓰여진 “강의”. 설명은 “유명 강의 선생님들을 모아~.. 아 허접한 자기계발이네. 짜증이 확 오른다. 그래도 이거 아니면 할 게 없으니. 시간을 팔수만 있다면. 아마 세계 최고 부자겠지. 고등학생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재밌네. 시간이 남아도는 고등학생이 과연 어디있으랴. 난 고등학생이지만 시간이 남아도는 모순적 사람. 어쩔 수 없이 목적지를 확인한다. 부산이네.
기차표를 예매하고 옷들을 주섬주섬 챙겨 입는다. 나의 목적지는 어떤 사람의 공연 또는 나에겐 한 사람의 수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가는 길은 내 인생같이 구불구불거렸다. 강의장에 도착하자마자 보인 빈 의자 여러 개들 “어차피 사람이 없으면 없을수록 좋으니” 내심 안도를 한다. 그때 저 멀리서 걸어오는 한 남성. 아 저 사람이 강사시구나. 대충 예의 형식의 인사를 하고 약간의 담소들. 강의 시작하기에 앞서 보여주는 영상 덩어리들, 시인의 발자취를 엮은 동영상이다. 화면이 잘 보이도록 조명을 낮춘 탓인지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강의가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음들. 막이 점차 내려가고 마이크 볼륨은 올라간다. 분명 무슨 말인지도 못 알아듣겠지만 허나 분명한건 세계에서 성공하는 법에 대한 주저리 주저리.
“아 지겨워“ 성공을 하려면 어쨌나 저쨌나. 왜 그래, 알면서 왔으면서. 그저 여긴 시간 때우는 용뿐. 역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지 원. 그 뒤엔 리더쉽 발휘하는 법을 설명해주시는데 괜히 청정구역에 먼지 한 톨이 기웃거리는 느낌. 하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 내 얼굴만 붉어지는 자리. 수면 위 감정은 분노와 좌절. 그 아래는 자책과 원망감, 괜히 온 거 같다. 라는 생각을 알아차리는데 엔 그리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럼 역시 그렇지. 자기 분수에 맞게 살아야지. 성공한 사람들은 빙산의 일각뿐인 사람들. 그 심해엔 나 같은 사람들. 이성이 들어 “화려한 것들은 내 몫이 아니었‘ 음을 깨닫고 ”내 몫“에 맞는 자리로 가야겠다. 마음먹었다.
그러자 “아, 아”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에게 깊이 전하고자 합니다.” 끝났다는 걸 알리는 듯한 노란색 조명. 그래 기왕 온 거 좀만 참자 “여러분들은 이 세상의 주인공...” 역시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야지 원, 기대를 하면 안 되는 거야. 신발을 신고, 겉옷을 챙기고 물병을 챙긴다. 아 모자도 깜빡했네. 출구로 나가는 문은 어디지? 나 참, 조명 좀 키워주시지. 슬리퍼를 질질 끌다. 그리고 문을 딱 열자 “꽃이라 불리지 않아도/그만하면 됐다” 그 순간 밝은 태양빛들은 나를 향해 걸어왔다. 여기가 어디지. 갑자기 몽롱해지는, 꿈을 꾸고 있는 듯 한.
맥박이 요동친다. 터질듯하다가 이내 아늑해지는. 동공이 확대되다가 축소되는. 뭐지 이 낯선 감정들은. 그 순간만큼은 내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아님 내 존재여부가 불확실해지는. 나는 누구지? 나는 누굴까. 실패는 사회의 악이라 생각하는게 난데. 결과가 실패했다고 내 인생이 송두리째 날아가는 건 아니니깐. 정말인가? 정말이겠지. 그래도 교수이신데 괜히 한 소린 아니시겠지. “아 졸려” 생각을 너무 많이 했나? 집으로 가야지.
기차역으로 간다. 문득 하늘을 보니 유독 파랗다. 주위를 둘러보니 꽃들이 만개했네. 갈대가 살랑살랑 움직인다. 해를 보니 해는 석양을 지고 있었다. 맥아리 없이 멍 때리다가 뇌리에 흐르는 한 구절 “꽃이라 불리지 않아도 그만하면 됐다” “꽃이라 불리지 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