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웃게 한 문자

사람이 극도로 화가 나면, 마냥 웃기기만 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by 김병섭

때는 2020년 내가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인문계를 가려다 일찍 사회에 나가고 싶은 마음에 특성화 고등학교를 내 첫사랑이랑 같이 고민하고 있었다. 첫사랑과 같은 학교를 다닌다기에 안전한 학교를 찾고 있다가 첫사랑과 나 둘 다 미용에 관심이 있어서 미용과가 있는 학교를 찾아보았다. 찾고 찾다가 인천생활과학고등학교랑 인천생활예술고등학교를 고르게 되었다.


그런데 인천생활과학고는 서로 부평구 삼산동에서 연수구 함박뫼로까지 1시간 20분 거리로 엄청난 거리였고 인천생활예술고등학교는 학력인정고등학교로 양아치가 많고 학교 생긴 것이 교도소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둘 다 양아치가 넘치는 학교보단 먼 거리를 택했다. 좀 멀다 하더라도 둘이 같이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등하교하며 다닐 것이라 크게 위험하거나 따분하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둘 다 인천생활과학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부모님을 설득하였다. 나의 부모님이 거리도 문제고 미용이 불량한 느낌이라고 생각하여 반대하셨다.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 첫사랑이랑 같이 학교를 다니기 위해 부모님과 싸우면서까지 허락을 받아냈다. 그렇게 같이 등하교를 할 생각에 신이 나서 좋아하던 카페에서 파는 딸기 파르페를 먹으면서 입학신청 마감만 기다리고 있었다. 마냥 들뜨고 신나는 마음으로 딸기 파르페를 반쯤 먹을 때쯤 첫사랑에게 문자가 왔다. 첫사랑의 문자였기에 바람보다도 빠르게 문자를 확인하였다.



문자의 내용은 첫사랑이 인천생활과학고등학교 말고 다른 특성화 고등학교로 신청을 바꿨다는 것이었다. 같이 다니기로 약속한 나에게 말해준 것도 아니고, 마감 30분 전에 바꾼 뒤 바로도 아니고, 모든 신청이 다 마감이 된 후에 말이다.


문자를 보고 처음에는 아무생각도 들지 않았다. 사람이 극도로 화가 나면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마냥 웃기기만 하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나는 어이없음에 한참 동안 혼자 웃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그 후, 다시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먹던 딸기 파르페를 던지고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이 미친 사람 보듯이 쳐다보았지만 그 때 나는 너무 화가 나 있었기에 시선 같은 것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면서 앞으로 매일 1시간 20분을 혼자 다닐 생각과 부모님과 싸우면서까지 인천생활과학고등학교를 다니겠다고 투정 부렸던 것이 떠올랐다. 모두 헛수고 같았다. 지금까지 고등학교를 찾았던 것이, 진로를 고민했던 것이 다, 내가 열심히 노력했던 모든 것들이 부정 당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혹여 누구에게든 메시지로 욕을 하며 상처를 줄까봐 폰을 꺼버렸다. 그리고 던졌던 딸기 파르페를 치웠다. 그렇게 나는 쓸쓸하게 집으로 갔다.


이 일로 인해 나는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이후로 사람을 깊게 좋아해 본 적이 없다. 아니 사실 잊어버린 것 같다. 아직까지도 사람에 대한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더 이상 남에게 내 이야기를 속 편하게 털어 놓을 수도, 깊게 믿을 수도 없게 되었다. 특히나 성격이 남자 같더라도 몸이 여자인 사람에게는 불신, 의심이 기본이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무리 잊으려 해봐도, 정말 순수하게, 정말 누구보다 첫사랑을 좋아하고 있었던 나에게는 씻지 못할 상처가 되었다. 너에게는 단순히 한 순간의 잘못이었겠지만, 나한테는 칼에 난도 당하는 기분이었는데..


이젠 사람 안 믿으려고.




매거진의 이전글선재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