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것만으로도 벅찬

함께 가는 방법을 찾을 수 없다면 나는 멀리서 널 비춰줄거야.

by 김병섭

아무런 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서사가, 분위기가 마치 내 일처럼 느껴지고, 내가 그들의 유대감 사이에 끼워져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심장이 터질 것처럼 벅차오른 적이 있는가? 어제는 그러한 기분이 내 마음 속에 가득 차버려서 쉽게 잠들 수 없는 하루였다.


나는 엄청난 ‘금사빠’ 이다. 한마디로 금방 사랑에 빠지고 금방 마음이 식어버리는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작년 8월부터 지금까지 쭉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이 있다. 그들을 좋아하기 시작한 건 어느 영상이었다. 어린아이들이 입는 반바지, 목에 두른 손수건, 흘러내리지 않도록 턱에 묶을 수 있는 끈이 달린 모자를 쓰고 풋풋한 첫사랑을 노래하던 중학생들이 자라서 왁스로 머리를 올려 고정하고 어른스러운 스타일의 코디를 받은 채로 춤을 추는 그런 영상.


내가 좋아하는 그룹은 막내가 14살, 맏형이 17살에 데뷔를 해서 한때는 나이로 주목을 받은 적이 있는 그룹이다. 데뷔부터 지금까지 팬들과 함께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유독 성장이 잘 담겨 있는 영상이 많았고 그러한 점이 너무나도 좋았다. 나는 애니메이션을 볼 때도 주인공이 처음엔 정말 보잘것없는 사람이었지만 나중엔 수많은 동료와 함께 무언가를 해내는 스토리를 가장 좋아한다. 아직 작고 어린 짱구가 자기보다 더 어린 동생을 구해주기 위해 노력하며 정신적으로 성장한다거나 ‘샤먼킹’ 이라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처럼 외적으로 성장하는 등. 그런 것을 참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그들이 그랬다. 앨범을 10만 장밖에 못 팔았던 그룹이 지금은 300만 장을 팔고 ‘세계 최초’ 타이틀을 몇 개나 가지고 있다. 성장한 것이다.


지금껏 글을 읽었으면 알겠지만 나는 성장을 아주 좋아한다. ‘성장’이란 듣는 것만으로도 그 과정이 궁금해지고 과정을 알고 나면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벅차오름에는 행복과 기쁨 등 온갖 좋은 감정이 다 섞여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엄마는 요새 내가 성장한 것을 보면 뿌듯하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파워레인저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던 내가 어느 새 아르바이트를 하여 스스로 사고 싶은 걸 사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은 태어나서 싫어도 성장을 하게 되고, 어느 순간 세월을 느낀다. 좋은 기억도, 싫은 기억도 있겠지만 지난 날을 돌아보며 추억에 젖는다. 그렇기에 나는 성장을 좋아한다. 모든 성장은 추억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그리고 어제는 내가 사랑하는 성장 스토리를 가진, 마치 소년만화 주인공 같은 그들이 보여주는 ‘쇼’ 였다. 벅차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40분 동안 진행이 되었는데 그 중 한 무대는 그들이 데뷔한지 2년도 되지 않았을 때 타이틀로 달고 나온 곡이었다. 그 곡을 4년이 더 지난 지금 똑같은 옷을 입고 무대를 했다. 그들과 함께 성장한 팬들은 곡을 진행하는 3분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난 그것이 어떤 기분이던간에 분명 ‘성장’이라는 단어를 한번쯤은 떠올렸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또 다른 곡에는 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가사로 적어 낸 곡이었다. 그 곡엔 “함께 가는 방법을 찾을 수 없다면 나는 멀리서 널 비춰줄거야.” 라는 가사가 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파트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전부 본인들이 쓴 거라고 한다. 자신의 마지막 첫사랑은 너라면서 변성기가 오지도 않은 목소리로 노래하던 아이들이 커서 함께 걸어주겠다고,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멀리서 비춰주겠다고 한 것이다. 너무나도 두근거렸다. 두근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40분밖에 안되는 분량이었지만 그 40분 안에는 우리 팬들과 그들 사이의 추억이 가득 담겨 있었다. 어제는 그 추억을 곱씹어보느라 쉽게 잠들 수 없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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