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에서 요리로

매주 요리를 했고 운동부도 그만두게 되었다

by 김병섭

초등학교 시절 나는 수업시간에는 발표도 잘 못하고 남들 앞에서 못 나서는 소심하고 내향적인 아이였다. 학교가 끝나면 방과후로 영어와수학,논술을 배웠고 집에 가면 8시~11시까지 3시간씩 공부했다. 초등학교가 끝나갈 무렵까지 진로도 못 정해서 진로 작성란에는 항상 ’잘 모르겠다‘ 라고 밖에 적지않았다. 하고 싶은것도 없고 그냥 적당한 회사에 들어가서 살 것 같았다. 그 상태로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여 **중학교에 입학했다.

**중은 유도가 유명하여 교과시간에도 유도가 포함되었다. 유도 수업을 두 번 정도 할 때쯤 유도부의 감독님이 나에게 유도부에 들어오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이렇다 할 장점은 없지만 옛날부터 체격은 남들과 달랐다, 그래서 감독님 마음에 쏙 드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운동하고는 연이 없었다. 달리기 대회 때는 맨날 꼴등이고 축구 때는 수비수 농구할 때는 패스만 하는 반에 한 명씩 있는 운동에 재능이 없는 애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감독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거의 한 달에 걸쳐 나를 설득하셨다.


처음 도장에 들어갔을 때 든 기분은 걱정과 떨림 뿐이었다. 거의 반 강제로 들어간 거기 때문이었다. 처음 감독님이 나에게 지시한 것은 도장에서 운동하는 부원들의 모습을 관전하는 것이었다. 다들 힘들지만 끝까지 열심히 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이거라면 내 내향적인 성격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도장에서 관전하고 다음 주가 되었을 때 나는 드디어 도복을 받고 하얀띠도 받았다. 이젠 정식으로 유도부 부원이 된 것이다. 처음에 느꼈던 걱정은 거의 사라지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코치님이 나에게 지시한 것은 유도 기술 중 기본인 업어치기를 연습하는 거였다. 나는 아직 초보라 인형을 가지고 연습하였다. 소심하고 내향적이었던 나지만 이상하게 업어치기 동작을 연습할 때는 전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남들 앞에서 뭘 이렇게 한 것도 처음이었다.

부활동이 끝나면 부원들과 학교 옆에 있는 슈퍼에서 저녁을 먹었다. 부원들과 함께 얘기하면서 밥을 먹는데 지금까지는 느껴보지 못한 뿌듯함과 성취감이 느껴졌다. 집에 가서도 유도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게 유도부원으로 지낸 지 1년이 지나고 나는 2학년이 되었다. 2학년이 되고 내 성격은 완전히 바뀌었다. 축구를 할 때는 수비수를 맡긴 하지만 가끔 최전방에서 뛰었고 농구를 할 때는 내가 리드하면서 점수를 얻어냈다. 덕분에 친구도 많이 생기고 학교를 다니는 것이 즐거웠다.

2학년이 되어서 바뀐 것은 성격 뿐만이 아니었다. 내 띠도 하얀색에서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처음 검은 띠를 매고 운동한 날의 기분은 말로 표현을 할 수 없었다. 친구와 가족들에게도 자랑했다. 나는 더욱 유도에 전념하게 되었다.


하지만 2학년 중 후반기에 문제가 생겼다. 나와 선배 2명하고 트러블이 생긴 것이다. 이 때의 3학년은 유도부 코치님과 감독님도 포기할 만큼 최악이었다. 유도가 끝나면 코치 욕부터 시작하고 밖에 나가면 담배를 피고 있었다. 후배도 많이 괴롭혀서 학폭위까지 열릴 정도였다. 그런 선배들과 트러블이 생기고 만 것이다.


문제가 생긴 이후부터 나는 유도장에 들어가지 않았다. 선배들과 마주치기 싫었기 때문이다. 나는 감독님과 상의해서 유도시간이 되면 지하실에 있는 체력단련실에서 따로 운동하기로 했다. 그렇게 한 달을 체력단련실에서 보냈다. 몸은 전보다 좋아졌지만 유도에 대한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전처럼은 못할 것 같았고 다시 시작하기도 싫었다. 하지만 유도를 그만두기에는 잃는 것이 너무 많았다. 들어갈 고등학교와 대학교도 정했고 국가대표 감독님하고도 연이 생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학업에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운동을 그만두면 남는 것이 없었다.


운동이 일찍 끝나다 보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거기서 나는 새로운 취미를 찾았다.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유명하다 싶은 영화는 거의 다 본 것 같았다. 그중에서 요리 관련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이름은 기억 안나지만 일본영화였던 것 같앗다. 꽤 재밌게 봐서 다음 날이 돼서도 기억에 남았다. 나도 요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이나마 들게 했다. 그래서 나는 마트에 가서 밀키트를 샀다. 라면도 못 끓이던 내가 요리를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밀키트였지만 꽤 어려웠다. 운동하는 것보다 어려웠다. 하지만 내가 한 요리를 먹는 가족들을 보는 것이 매우 뿌듯했다. 다른 진로를 찾은 것 같았다.


이때 이후로 나는 요리에 빠졌다. 주말이 되면 매주 요리를 했고 운동부도 그만두게 되었다 고등학교도 형과 같은 조리과가 있는 인천생활과학고등학교로 정했다. 하지만 생과고 조리과는 들어갈려면 꽤 높은 성적이 필요했다. 전교 50등이었던 나는 들어가기 힘들었다. 그래도 시도라도 해봤다. 시험기간 한 달 동안 매일 새벽까지 공부했다. 덕분에 내 성적은 매 시험마다 올랐다. 3학년 2회고사 때는 전교 28등이 되어 있었다. 부모님도 놀랐지만 나는 더 놀랐다. 이 정도로 성적을 올릴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과고에 들어가서 매일매일 즐겁게 학교를 다니는 중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듣는 것만으로도 벅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