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모습의 목표를 세우고, 그걸 조금씩 실천해 나가면
본래에 가지고 있던 성격을 바꾸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그 본래 성격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어떤 성격으로 자신을 바꾸고 싶은지에 대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노력한다면 본래 성격 또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원체 자존감이 낮은 아이였다. 자존감이 낮아서 남 앞에 서거나 발표를 하는 등의 행동을 취하고 나서 남들에게 이목을 집중 받으면 얼굴이 토마토처럼 새빨개지고, 말도 절고, 머리는 새하얀 백지가 되어버린다. 이렇다 보니 어렸을 적의 나는 남 앞에 서는 게 정말 싫었고, 부끄럽기까지 했다. 이런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반장선거 때마다 항상 내 이름이 거론되며 추천되었다. 그때마다 나는 얼굴에 물음표를 띄운 채로 얼굴이 새빨개지며 항상 고개를 격렬하게 돌리며 반장선거에 출마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나는 초등학교 6년 동안 반장선거를 해 보지 못하고 중학교에 올라섰다.
중학생이 된 나는, 반장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나의 중학교 생활의 첫 친구를 응원해 주었다. 그 친구는 많은 친구의 득표를 받아서 반장이 되었고, 1년 동안 우리 반을 잘 이끌어 주었다. 내가 오랫동안 품고 있던 꿈이 하나가 있는데, 그 꿈을 용기를 내 말하고도 도전하지도 못한 채로 포기했었다. 항상 도전하고 싶었지만, 그 후의 일이 조금 두려웠었던 감정에 그 꿈을 마음 한켠에 둔 채로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려고 했고 그러기 위해선 나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다. 그 생각을 실천으로 하기 위해서 나는 2학년에 올라오고 나서 처음으로 내 자의로 반장선거에 출마하게 되었다. 반장선거 직전까지 ‘하지 말까?’, ‘떨어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과 감정들이 나를 감싸고 있었는데, 오랜 시간 함께 지낸 친구 덕에 다시 용기를 얻어서 친구들 앞에 섰다. 내 첫 반장선거 연설문은 가장 기본적이고, 형식적인 멘트로 시작했다. “제가 만약 반장이 된다면…….”
심장이 엄청 두근거리고 얼굴은 엄청 시빨개지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반 친구들 앞에서 말을 하려니 엄청나게 떨리고, 떨렸다. 아직도 그 감정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엄청 자신감있는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첫 반장 선거치고는 굉장히 많은 득표를 얻었다. 후보 4명 중에 11표를 득표해서 부반장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내 자의로 했던 반장선거에 부반장이라는 결과를 얻어서 무척이나 신기했고 뿌듯했다. 학급의 대표 임원이라는 생각으로 정말 반에 최선을 다했고, 비록 반장보다 다양한 일을 많이 했었기에 부반장이라는 직급을 달고 있는 게 억울했었지만, 반 친구들도 알아줘서 중학교 2학년의 부반장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2학년 부반장을 마치고 3학년에 올라왔다. 3학년 반장선거 전에는 갑작스럽게 학급 대표 임원의 임기가 1년에서 1학기로 바뀌었었다. 3학년 반장선거 후보는 같은 학년 친구들에게 많이 알려진 친구들 두 명과 내가 나갔었다. 3학년 6반 친구들 앞에서 처음하는 연설이기도 하고,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에 나는 연설문을 쓰고 여러 번 수정을 반복했었다. 반장선거 전날까지 수정을 진행했었고, 친구에게 피드백을 받으면서 연설문을 한 층 더 완성해나갔지만, 반장선거 연설문을 제대로 소리 내어 읽어보지 못하고 당일이 되었다. 친구들 앞에 서려니 다시 엄청 떨렸다. 인기 많은 친구 두 명에서 학급 대표 임원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반 친구들 앞에 섰지만, 연습이 부족한 탓인지 말을 엄청나게 절고, 시야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얼렁뚱땅 반장선거 연설을 끝냈다. 내가 연습 부족으로 잘하지 못한 것도 있고, 그 두 친구들이 연설을 기가 막히게, 나도 감탄할 정도로 연설을 잘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대는 했지만, 결국 되지 않았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되지 않았다는 결과에 엄청 눈물이 났었다.
반장선거가 있던 그 날 저녁에 나는 방송부에 일이 있어서 친구들과 다 같이 남아서 점검을 하고 있었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전화해 주셨다. 선생님의 통화 내용 안에는 반장선거에 출마했지만 떨어진 나를 위해서 위로를 건네주시는 말이 많았다. “선생님이 생각하기에는, 그 두 친구들보다 너의 연설문이 더 좋았고 네가 됐다면 선생님은 너랑 행복하게 학급을 이끌어나갈 수 있었는데 매우 아쉽다. 그래도 용기 내서 출마해 줘서 고맙다…….” 등의 말을 건네 주셨다. 선생님 덕분에 나는 죽어있던 자신감을 되찾을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도 반 친구들이 믿고 뽑아 준 임원 친구들이니까 잘하겠지 싶었는데, 반장이나 부반장이나 둘 다 고등학교 가기 전,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생활기록부를 채우기 위해 반장선거에 나온 애들이었다. 시험 기간 자습 시간에 애들이 떠드는데도 불구하고 애들을 제재하지 않고 자신들의 공부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도 딱히 리더쉽을 발휘하여 반 친구들을 이끄는 모습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중학교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졸업을 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 친구들 중에서도 인천생활과학고등학교에 진학한 친구들이 많지만 조리과학과는 나 하나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소심하고 낯을 가리고 자존감이 낮았던 성격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다시 반장선거에 도전하려고 개학도 하지 않은 2월에 반장선거 연설문을 작성하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긴 연설문을 암기했다. 그리고 개학을 한 3월 2일, 나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는데 아직 낯을 가리는 성격인 탓인지 쉽게 말을 걸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내 앞에 있는 친구에게 말을 처음 걸기 시작했고 그 뒤로 모든 친구들과 말을 놓을 수 있었다. 처음으로 말을 걸었어서 엄청나게 떨리고 내가 잘 말했는지 의문도 많이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잘한 선택인 것 같다.
자존감이 낮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성격을 바꾸기 위해서 임시 반장을 시작으로 모든 과목 부장에 도전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게 모두 되어서 신이 났었지만, 아직 처음이라 그런지 친구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면 어쩌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생각도 얼른 떨쳐내고 내 방식대로 나를 내 목표로 이끌어 갔다. 그 뒤로 1학년 반장선거와 전공 동아리 면접도 보고 중학교 때 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못 했던 또래 상담부도 지원하고 면접을 보고. 마지막으로는 학생회 면접도 봤다. 모든 면접의 결과는 합격이었다.
인생의 좌우명이 없었던 내가 이맘때쯤의 처음으로 좌우명을 생각하고 그 좌우명대로 살아갔다. 그때의 내 좌우명은 “일단 하고 싶으면 하되, 그게 실패한다면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된 것이다.”, “할까 말까할 땐 하자”라는 생각을 항상 달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데 고민이 되는 순간이면 “할까, 말까할 땐 해야지~”라고 하고 그 일에 도전했다.
자신이 아무리 자존감이 낮고, 자신을 부끄러워해도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아무리 두려워도 일단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의 목표를 세우고, 그걸 조금씩 실천해 나가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실현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