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에는 아빠와 오빠들이 큰 봉투를 가지고 서 있었다
‘오늘은 내 생의 최악의 생일이야….’ 내가 중학생 때 우리 엄마가 병원에서 입원했을 때 있었던 일이다.
집에서 막내로 태어난 나는 생일과 크리스마스와 같이 평소와 다르게 특별한 날이 있으면 항상 부모님과 오빠들의 관심을 첫 번째로 받아 축하와 선물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중학생 때도 어느 날과 다름없이 똑같은 일상이 시작되었다.
그날은 친한 동생이 우리 집에 놀러 오는 날이었다. 그 동생과 같이 밥 먹고 놀고 있었을 때 우리 엄마가 불러 간식을 먹으러 나오라고 하였다. 우리는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나갔는데 우리가 빨리 안 나와 부르러 왔었던 엄마와 친한 동생이 부딪쳤다. 친한 동생과 부딪쳤을 때 평소에 다리 힘이 약하고 뼈가 약했던 우리 엄마는 넘어져 발가락 골절되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우리 엄마는 병원에 입원하여 병원에서 두 달 정도 생활하게 되었다.
엄마를 제외한 우리 가족 중 막내이자 유일한 여자였던 나는 엄마의 병원 생활을 함께하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도 가지 못하고 온라인 수업을 하며 엄마와 함께하였다. 나는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싫지만은 않았다. 병원에서 수업하고 조금 지나면 셋째 오빠가 와서 나랑 한 시간 정도 교대를 하였다. 하지만 교대하여도 나는 쉴 시간이 없었다. 왜냐하면, 새벽부터 일하러 나가시는 아빠와 오빠들, 아침부터 서둘러 준비하여 학교에 가야 하는 셋째 오빠…. 그래서 나는 셋째 오빠와 교대를 하고 집에 가서도 빨래를 널고 개야 하는 등 거의 모든 집안일까지 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나는 엄마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참고 견뎌내 힘든 티를 내지 않았다, 내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기 전까지는….
엄마가 입원하여 병원 생활하는지 3주째 되는 날 결국 내 생일이 되었다. 아침부터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축하 메시지가 아주 많이 왔었다. 하지만 나는 기쁘지 않았다. 주변에 사람 없이 생일을 보냈던 적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장이라도 집과 학교와 같이 사람이 많은 어디라도 뛰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찼었지만 나 없이 혼자 한 발짝도 걸을 수 없었던 엄마를 생각하며 꾹 참아보았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오늘은 내 생의 최악의 생일이야….’
우리 엄마는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내 눈치를 보는 것이 싫어 애써 기쁜 척하였다. 결국, 내 생일의 하루가 끝나가는 저녁이 되었다. 그때 아빠에게 엄마와 로비로 내려오라고 전화가 왔다.
나는 아무 기대 없이 로비로 내려갔다, 1층에는 아빠와 오빠들이 큰 봉투를 가지고 서 있었다. 큰오빠가 봉투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는데 즉석 미역국과 조각 케이크를 꺼냈다. 알고 보니 가족들은 내가 신경 쓰여 준비한 최선의 축하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것을 알고는 나는 정말 가족들의 큰 사람과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평소에 집에서 무뚝뚝하고 표현을 잘 안 하고 표현이 없는 나는 가족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부끄러워 애써 감동의 눈물을 참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