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버지의 다 죽어가는 트럭을 볼 때마다 자랑스럽게 여기지는 않았다.
토요일 저녁 나는 매일 똑같이 운동 하고 친구들을 만나서 놀고 있었다. 내일은 뭐하지 고민하고 있을 때 아버지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내일 아빠랑 일 같이 가지 않을래?”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마지막 주말이고 운동도 가지 않는 일요일이라 쉴 생각을 했다. 잠시 망설이다가 아버지랑 뭐라도 해서 추억도 쌓고 싶었고 용돈도 받으러 같이 가겠다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6시 30분에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일어났을 때 너무 피곤해서 다시 자고 싶었지만 들뜬 아버지를 보면서 잠을 깨웠다. 아버지의 직업은 인테리어 목수인데 나는 아버지의 일을 머리가 안 돼서 몸으로 때우는 직업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다 죽어가는 트럭을 볼 때마다 자랑스럽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의 자랑스럽지 않은 트럭을 타고 현장으로 향했다. 서울 어느 초등학교 방송실 이었다. 오랜만에 초등학교에 들어오니까 신기했다. 나는 슬리퍼에서 신발로 갈아 신고 마스크와 귀마개, 장갑을 끼고 아버지를 도와드릴 준비를 했다.
8시쯤 일을 시작했다. 원래는 아버지와 같이 일하는 동료분이 계셔야 하는데 지각을 하시는 거 같았다. 나는 아버지께서 동료에게 뭐라고 말씀하실지 궁금했다. 아버지와 먼저 일을 하고 있을 때 동료분께서 도착하셨다. 인상이 굉장히 좋으시고 친해지고 싶었다. 나는 궁금했던 아버지의 반응을 보았다. 오히려 아버지는 동료분을 반겨주셨고 전혀 꾸짖으시지 않았다. 나도 집에서 항상 아버지가 착하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현장에서는 어떤 모습이실지 궁금하기도 했다.
동료분께서는 나를 보자마자 “**이야?”라고 여러 번 물으셨다. 나는 처음 뵙는 분이라서 나를 어떻게 아시는지 궁금했다. 동료분께서 “아빠가 아들 자랑을 얼마나 하는지 지겨울 정도야”라고 말씀 하셨다.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내심 기분이 좋았고, 아버지께서 나를 동료분들에게 자랑을 하신다는 게 너무 좋았다.
나는 첫날이라 무언가를 자르고 다듬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냥 옆에서 아버지께서 시키시는 것만 도와드리고 하면 됐다. 아버지께서 나무판을 자르실 때 판 잡아드리기, 짐 옮기기, 본드 바르기, 못 박기등 어렵지 않은 일들을 했다. 아버지는 아들인 ‘나’를 데려오셔서 그러신지 매우 신나 보이셨다. 덩달아 나도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하다 보니 점심시간인 12시가 되었다. 먼지를 털어내고 귀마개와 마스크를 빼고 밥을 먹으러 갔다. 불백을 먹으러 갔는데 학교와 비슷한 시간에 밥을 먹지만 맛은 전혀 달랐다. 아버지와 점심을 밖에서 먹는 게 18년 살면서 처음인 것 같았다.
밥을 다 먹고 동료분께서는 편의점을 가시고 나는 아버지와 먼저 초등학교로 걸어갔다. 날씨도 너무 좋았고 사람들도 별로 없어서 걷기 좋은 날씨였다. 아버지와 단 둘이 좋은 날씨에 걷는 것도 18년 동안 처음인 것 같았다. 아버지와 말을 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많았다. 많아서 문제였다.
다시 현장에 도착하였고 1시에 일을 시작했다. 오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자르고, 바르고, 붙이고, 잡아드리고, 고정시키고 나는 쉬운 일만 하니까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수평, 길이 등 굉장히 정교하고 한번 망치면 돌이키기 쉽지 않은 일을 하시고 계셨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5시 30분이 되면서 현장을 정리 하였다. 정리를 하고 6시가 되어서야 일을 끝낼 수 있었다. 오늘은 내가 같이 와서 생각보다 많이 일을 진행하였고, 청소도 빨리 끝났다. 아버지와 동료께서 계속 내가 와서 많이 했다고 해주셨다. 나는 예의상 해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웃으며 감사하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의 차에 타면서 10년 이상을 아버지와 지낸 트럭이 너무 자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