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보. 피카츄. 인형뽑기.

이거 그때 받은 거 보답이야!

by 김병섭

783일 그렇게 길었다면 길었고, 짧았다고 하면 짧았던 우리의 연애가 그렇게 끝이 났다.

2년 전 5학년 내 잼민이 시절 처음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상대는 내 2학년 때부터 친구였던 베프 OOO이였고, 정말 초딩 연애 상상 그 자체였다. 그때 그 시절에는 정말 진지했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창피하고 쥐구멍에 숨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은 초등학생. 그것도 처음 여자와 손을 잡고, 가까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거 같은 그런 느낌을 받는 초등학생.. 장난도 잘 못 치고 아직 여자인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을 때라 더 민망하고 쑥스러운 그런 기분이 들었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데이트라는 개념도 없었던 그런 때라 학교에서 보면 인사하고 다른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서 노는 것이 데이트라고 생각했었을 때였다. 그러다가 하루는 그냥 같이 내 여자친구인 OOO과 같이 집 가고 있었던 날 중 일어난 일이었다.

그날도 너무 설레고 부끄러웠지만 같이 가서 좋았다. 길을 걷다가 인형 뽑기 기계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시절에는 인형뽑기가 한창 인기라서 학생들이던 어른들이던 다 인형 뽑기 기계 앞에서 돈을 날리고 있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한번 해 보기로 했다. 먼저 내가 해봤는데 친구들이랑 할 때도 못한다고 놀림 아닌 놀림을 많이 받아서 잘 집중해서 해 보았는데 역시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여자친구가 웃으며 놀렸다. 설레고 쑥스러웠던 연애 였지만 전부터 친구였어서 놀리는건 잘 하는 그런 연애였었다. 다음으로 여자 친구가 자기가 뽑아주겠다고 하며 했는데 바로 천원에 뽑아 버렸다.


친구는 앞에서 자랑하고 있었고 나는 옆에서 축하해 주며 박수를 쳐 주었다. 비교적 지금과 다르게 초등학교 땐 소심했던 성격이었고, 내 여자친군 나랑 반대로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남자 같고 멋졌다. 그 인형 잠만보 인형을 뽑고 난 뒤 몇 번 보더니 나한테 “너 주려고 뽑은거야. 가져” 라 했고 나는 좀 벙 찌며 얼타며 고마워.. 이러며 잘 받았다. 그러고 집에 데려다 준 뒤, 그 인형을 보며 생각을 했다. ‘나도 인형 주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줄 수 있을까..’


내가 인형을 잘 뽑는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기도 했다. 또 나도 보답해 주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매일 학교가 끝나면 그땐 학원이나 그런 것들도 아예 다니지 않아서 학교 끝나면 친구들과 놀기 일쑤였는데, 애들한테는 집에 빨리 들어가야 한다고 하고 친구들이 잘 안다니는 그런 중학교 형들이나 고등학교 형들이 다니는 그런 곳으로 갔다. 좀 무서웠지만 그땐 친구들한테 들켜서 놀림 받는 게 더 싫었었다.


정말 매일 매일 5천원 이상을 쓰며 내 용돈을 다 그 인형뽑기 기계에 받친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많이 후회스럽고 부끄러운 짓들이 많지만 그래도 그때 내 선택에 대한 내 마음은 변하지 않고 그 인형뽑기 기계로 갈 것 같다. 용돈을 너무 많이 한 번에 확확 쓰다 보니 부모님한테 혼나기도 하였고 다른 어른 분들한테 받은 용돈들도 다 인형뽑기 기계로 써버리니 나도 정말 지치고 힘들었었지만 그래도 뽑아주고 싶었던 마음으로 계속 시도한 끝에 결국 피카츄 인형을 뽑게 되었다. 정말 마음속으로 너무 행복해서 감사합니다를 몇 번을 외쳤는지 모르겠다.

그 피카츄 인형을 들고 학교에 가서 주는 것도 정말 일이었다. 내 친구들은 주변에서 연애하는 관계가 우리밖에 없으니 좋다고 맨날 놀리기만 하였고 그 초등학생 특유의 그런 말투 때문에 더 부끄러웠고 신경 쓰이던 부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인형을 가방 안에 잘 넣고는, 집에 데려다 준다고 조용히 말한 뒤 같이 집에 가던 도중에 내가 “이거 그때 받은 거 보답이야!” 그러며 줬다. 여기까지가 내 이야기다.


이 잠만보 인형을 보게 되면 그때 기억이 너무 생생하게 난다. 그때의 감정들. 부끄러움과 설레임, 창피했지만 행복하고, 웃음 짓게 만드는 그런. 이건 좀 변태 같지만 그 인형에서 그 친구에 향이 나는 것 같아서 좋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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