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아서 산책하기 딱 좋겠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나, 엄마, 그리고 외할머니. 이렇게 세 모녀는 자주 만남을 가진다. 우리 세 모녀는 다른 집들보다 사이가 더 돈독하다-나의 주관적인 생각- 그런 것 같다. 서로에 대해 거리낌 없이 말하고 늘 일상을 공유한다. 보통 같이 장을 보거나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떠는 그런 만남. 수다의 주제는 언제나 ‘나 뭐 했다.’이다. 어제는 어땠고, 이번 주는 무엇을 했고, 이번 달에는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 이런 식의 대화가 오고 간다.
우리는 카페에 음료 하나씩을 시켜놓고 자리를 잡는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아서 산책하기 딱 좋겠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이번 주에는 주유소 기름값이 왜 이렇게 비싸냐는 엄마의 이야기와 이번 달에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걱정과는 달리 결과가 좋게 나와 다행이고, 다음 달부터는 다이어트를 시작해야겠다는 할머니의 말까지. 서로가 서로의 말에 반응해주고 조언해준다. 이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남들에게는 사소한 수다 타임처럼 보이겠지만 나한테는 이 시간이 최고의 시간이다. 서로의 일상을 나누어 주는 것. 공유하는 것.
이 대화에서 주로 나는 들어주는 입장인데-엄마와 나는 맨날 얼굴 보며 이야기 나누지만 할머니와 엄마는 만남의 텀이 있기 때문-그러다 보니 엄마와 할머니의 대화를 유심히 듣게 됐다. 엄마는 나와 있을 때는 털어놓지 않는 고민이나 스트레스 받았던 일들을 할머니 앞에서는 속 시원하게 털어놓는다. 또 할머니는 그 이야기에 공감해준다.
어느 날에는 엄마가 할머니 앞에서 눈물까지 보이면서 말을 했다. 무슨 고민거리를 털어놨는지는 자세히 듣진 않았지만 아무튼 그랬다. 처음이었다. 엄마의 처음 보는 그 모습을 보고 내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엄마도 엄마 나름대로 고민이 있고 나한테조차 말 못 할 고민이란 걸 가지고 있는 사람이구나. 늘 완벽하고 어른스럽던 엄마가 고민을 가진 소녀처럼 보였다. 엄마의 일거수일투족 다 알고 싶어 하는 나로서는 나에게 말해주지 않는다는 게 물론 서운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좋다. 엄마의 그런 모습은 할머니 앞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 내가 엄마랑 대화할 때는 내가 말하는 이가 되고 엄마는 듣는 이가 된다. 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 엄마는 주로 리액션을 담당한다. 그런데 엄마와 할머니의 대화에선 엄마가 말하는 이가 되고 할머니가 듣는 이가 되는 것이었다. 이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내가 이 만남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할머니와 대화하는 엄마의 표정은 꼭 나를 보는 것 같아 신기했다. 리액션을 바라며 밝게 상기된 얼굴로 엄마한테 일과를 전하는 내 얼굴이 엄마 얼굴에도 똑같이 남아있었다. 엄마는 나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딸이구나. 또 할머니는 우리 엄마를 딸로 둔 엄마이구나. 나도 모르게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이런 생각까지는 안 들었는데 고등학교에 올라오다 보니 나도 이제 철 좀 들기 시작한 건지. 엄마의 눈물을 봐서인지 엄마의 엄마, 엄마가 딸일 때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나, 엄마, 그리고 엄마의 엄마. 이렇게 세 모녀는 또 만남을 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