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2280억을 버린 이유

이야기. 판타지고전. 허생.

by 김병섭



상평통보 1냥은 오늘날 돈의 가치로 따지면 대략 5만원, 은 1냥은 상평통보 4냥이므로 20만원. 이것에 근거해서 허생이 벌어들인 돈1)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그럼 허생이 이만한 돈을 번 것은 왜일까?

그리고 그 많은 돈을 한 푼 남김 없이 다 써버리고

빈털터리로 집에 돌아갔는가?

그가 세상에 나선 것은, 그의 10년 글공부를 7년에 멈추게 만든 것은

정말 아내의 돈 좀 벌어 오라는 잔소리 때문이 아니었단 말인가? 정말?


아니다. 정말이다.

그에게 돈은 목적이 아니었다. 수단이었다. 다른 모든 활동이 그러하다.

"아.. 이제 나의 조그만 시험이 끝났구나."

그랬다. 이 모든 것이 시험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조그만 시험>을 위해 이 모든 활동을 이끌었다.


그의 10년 독서 계획은 조선사회 양반이라는 지식인 계급이 마땅히 수행해야 할 지적 노동의 필요를 보인 것이다. 변씨에게 빌린 돈으로 안성과 제주에서 국내상권을 독점하여 돈을 번 것은 조선의 유통경제를 비판하고 나라살림에 무지한 조선의 양반계급을 비판하기 위해서이다. 빈섬에 들어가 장기에서 큰 돈을 번 것은 나라에 도둑이 발생한 근본 원인을 밝혀 해결하면서 국제무역의 필요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완수한 후, 그는 자신의 <조그만 시험>이 끝났다고 말한다.


그 시험은 무엇을 가늠하기 위한 것이었던가?

그는 자신의 능력을 시험한 것이다. 그는 책읽기로 자신이 지적노동을 충실히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임을 강변했다. 국내상권에서 큰 돈을 버는 것으로 나라의 살림을 살필 만한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증명했고, 빈섬의 부흥을 통해서는 한 개 지역 정도는 충분히 건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보였다. 거기에 북벌이라는, 국가의 모든 힘을 쏟아도 승리를 단언할 수 없는 그 위험한 모험에 대해 허생이 계책을 제시하면서 은연 중 보인 것은, 그가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그가 증명해 보이고자 했던 것은 조선사회, 양반계급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지닌 능력, 그 우월한 힘이었다. 허생은 조선사회에서 본래 양반계급이 마땅히 보여야 할 탁월한 지식인의 모습을 또박또박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불행히도 허생은, 이로 인해 자취를 감춘다.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에는 조선의 양반계급은 돌이킬 수 없도록 타락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허생은 너무도 ‘위험’한 ‘스승’이었다.


허생- 지금도 위험한 스승

그러나 이것이 허생이 세상에 주는 유익이자, 그가 세상에 주는 해악이다. 그의 주장과 실천은 조선을 개선하는 것일 뿐, 근본적으로 조선의 계급질서를 넘어서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능력을 조선사회가 받아들였다 해도, 그래서 양반계급이 능력 있고 탁월한 지식인으로 변모했다 해도, 심지어는 북벌에 성공해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해도, ‘신분질서’라는 조선의 기틀은 변하지 않는다. 18세기 조선사회에서 그는 누구를, 무엇을 위한 지식인인가? 그의 능력은 오늘 우리에게 얼마만큼 유익한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지식인은 어떠한 사람인가? 학생들과 함께 고민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마련한 글쓰기 주제는 다음과 같다.


“허생이 사라진 후 그가 북벌은 물론 조선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라고 여긴 이완대장은 지리산 작은 마을에 은거하던 허생을 찾아내 왕에게 조선의 영의정으로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라며 추천한다. 왕은 신중한 선택을 위해 허생과 관련한 주변인물들에게 의견을 물어 결정하기로 한다.

허생의 주변인물(허생의 부인, 안성과일상인, 제주도말총상인, 빈섬 안내한 뱃사공, 빈섬에 정착한 변산도둑, 변산도둑의 안해, 허생의 돈으로 재기한 농민, 허생을 따라 빈섬을 나온 글 아는 자, 허생에게 돈을 빌려 준 변씨, 이완대장, 이용후생 학파의 선비, 현 조선의 영의정, 사대부 집안의 한 아들 등.) 중 한 명을 선택하여 그 사람의 입장에서 허생의 영의정 취임에 찬성 혹은 반대하는 의견을 제시하되, 소설의 구체적인 상황과 합리적인 상상을 바탕으로 서술하시오.”


허생을 우리 시대에도 되살리고 싶은 진정한 지식인이라고 여길 수 있을까? 허생의 근원적인 한계는 조선의 계급사회를 인정하고 양반계급의 권력독점을 전제했다는 것이다. 그 전제를 우리는 얼마나 인정할 수 있을까? 옛이야기에 대고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이란 없다. 오랜 세월의 풍화에 남은 이야기에는 우리가 쉽게 메울 수 없는 광활한 틈이 있다. 이 광활한 틈이 고전의 매력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논리적으로 상상하기>이다. 마음껏 상상하되 이야기의 틀을 충분히 고려할 것. 당대 사람들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할 것.


그러다 그 많은 대화를 마친 후,

내내 무겁게 남는 질문.


"나의 삶은 허생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나?"





출처: https://dasidasi.tistory.com/entry/허생의-목적?category=413154 [교사가 지치지 않는 국어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