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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섭 Nov 09. 2019

거창한 건 멋진 게 아니야, 실현 가능한 게 멋진 거지

김영희-경기 천천고-blog.naver.com/hehe26


속이 뚫리는 시원한 해결방안은 많지 않아, 고려할 게 많거든. 이 빵집들만해도, 경쟁이 너무 싫어, 다 그만두고 싶어. 그렇다고 빵집 문을 닫아, 그럼 먹고 살 수가 없잖아. 프랜차이즈 갑질이 너무 심해, 그래서 가맹 탈퇴 해, 그럼 빵집 운영 어떻게 해. 지금 이 소설 읽으면 '주영'이네, '하은'이네, 아무도 빵 못 구워. 심지어 빵 싫다잖아.(웃음)


현실적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거야. 그게 폐점시각을 맞추는 거고. 


이거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되게 멋진 거야. 존엄한 거. 실행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해서 찾은 거잖아. 거창한 건 멋진 게 아니야, 실현 가능한 게 멋진 거지.

- 본문 중에서..




<현수동 빵집 삼국지>의 주제는 단순하지 않다.     

읽자마자 바로 떠오르는 건 '자영업자의 고단함' '치열한 생존 경쟁'인데, 찬찬히 다시 읽으면 그게 다가 아니다. 작가가 의도한 심오하고 의미있는 주제를 함께 찾아나가는 게 이 수업의 목표.      

프렌차이즈 가맹점에서는(P베이커리, B베이커리) 모든 판단을 본점에서 제시한 기준을 근거로 내린다. 그렇지 않으면 가맹 자격을 박탈당하니까. 제빵사 채용도 맘대로 못한다. 개인 빵집(힐스테이트 베이커리)이라고 상황이 나은 건 아니다. 손님들이 원하는 빵을 만들어야 먹고 살 수 있다. '케이크를 만들려고 제빵을 시작'했더라도 그걸 만들 수 없다. 

여기에서 도출되는 주제는 '의사결정 권한 조차 가질 수 없는 소외된 노동'. 

여기까지만 생각하고 생각을 멈추면 김이 빠진다. '프렌차이즈의 갑질' '생존이 위협받는 현실'을 향해 비판을 쏟아내기는 쉽다. 하지만 달라지는 게 없다. 개선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를 짚지 않는 사회 비판은 의미가 없다. 말할수록 공허해진다.     

장강명의 멋진 지점은 돌파구를 빼꼼 보여준다는 점. B베이커리의 운영자는 P베이커리를 찾아가 '둘 다 살기 위해' 폐점 시간을 합의하자는 제안을 한 뒤(먼저 문 닫으면 손해 볼까봐 자정까지 영업하고 난리도 아니었던 상황.), 뭔가 '다른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을 갖는다. 

숨 막힐 정도로 팍팍한 노동 상황을 극복하려면 개인이 그 안에서 꼬물꼬물 의사결정 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무엇들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 '방안'이 답답하게 여겨질 수 있다. 속 시원한 방책은 아니니까. 하지만 뭐라도 하려면 '효과'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일이 중요한 것 같다. 답답한 현실 속에서 그나마 뭐라도 할 수 있는 틈을 찾는 게 가장 실현 가능한, 현실에 발 딛은 방책 아닌가. 모든 해결책이 속시원할 필요는 없다, 일단 뭐라도 하잔 생각을 하는 게 중요해, 말하는 게 이 수업의 목표.

그나저나, 장강명 진짜 멋지다. 어떻게 이렇게 썼지.

토의 질문을 만들 때엔 '생존을 건' 경쟁 체제가 인물에게 미치는 영향을 직접 찾아내 생각하게 하는 일에 초점을 뒀다. 여기서 무게 둘 지점은 '생존을 건'.      

1. 경쟁은 나쁘지 않다, 문제가 되는 건 그 성패에 생존이 달려있는 사회 시스템. 

'경쟁에서 지는 것=재기 불능, 그냥 망함, 죽음'이라는 등식이 더이상 성립할 수 없는 제반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조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변해가는 개인을 향해(폐기해야할 모카빵에 생크림을 넣어 재활용하는 ‘하은’ 엄마라거나, 밤 늦게까지 문을 열고 있는 상대 빵집 창에 돌을 던져 부수고 싶다 생각하는 ‘주영’이라거나.) 손쉽게 손가락질 하지 않길 않길 바랐다.       

2. 수업이 '사회 비판' 자체로 의미를 가졌던 시기는 애저녁에 지났다. 

비판적 메시지가 실린 작품을 읽을 때엔 불만과 푸념을 털어놓는 일로 수업이 끝나지 않게 공을 들인다. 비판(나아가 분노 폭발)의 장은 이미 엄청 많다. 포털 사이트 댓글 창이라거나 SNS라거나 인터넷 커뮤니티라거나. 오지게 많다. 옛날처럼 불만 털어놓을 곳을 찾지 못하던 시기가 아님. 너무 많아서 문제다. 

지금 필요한 건 '그래서 우린 무엇을 하지?'라며 대안을 생각하는 공간이다. 현실에 발 딛고 사는 인간으로서, 그렇다고 이상을 포기하진 않고 대안을 생각하는 연습을 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게 수업시간에 할 일이다. 그건 배워야 할 수 있다.     

교실을 배설의 공간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 목표     




-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란 말이 딱 맞아. 현실 상점들의 경쟁도 누구 하나 월등히 우월한 존재가 있는 것 아니거든.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다들 ‘살려고’ 경쟁 하는 거야.

- 생존을 걸고 하는 경쟁이라 이게 끝없이 반복될 거란 것도 짐작할 수 있어. 누가 하나 망해서 나가도 비슷한 상점이 또 들어 올 거야. 또 경쟁 시작되는 거지.

- 어떻게 보면 ‘누가 살아남는가’는 능력이나 노력의 결과가 아니야. 상점에서 일을 봐줄 가족 수가 많다거나, 갑자기 복권이 당첨되어서 여유 자금이 생긴다거나, 아님 갑자기 체력이 좋아져서 하루종일 가게 봐도 끄떡 없어지거나, 프랜차이즈에서 내놓은 신제품이 갑자기 히트한다거나. 그때그때 상황에서 여건이 조금이라도 좋은 사람이 살아남는건데. 생계 걸린 일이 그렇게 운으로 결정돼도 돼? 그건 좀 이상하잖아.

- 무한 경쟁 사회인데, 그런데 누가 살아남는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도 없어, 그냥 막 살려고 일단 무조건 경쟁하는 거야. 

그럼 독자는 질문하게 되지. 뭐야, 이래도 되는 거야? 사회가 이래도 돼? 목숨 걸고 경쟁하고. 운으로 결정되고. 원시시대도 아니고, 문명 사회가 이래도 되나?     

인성이 추락하는 모습은 세 빵집 운영자 모두에게서 발견된다. 

다른 빵집에 대한 헛소문을 퍼뜨리고, 밤 늦게까지 영업하는 집에 돌을 던지고 싶단 맘을 먹고, ‘그 놈들 다 망하게 할 거야’라며 독한 의지를 다지고.

‘하은’ 엄마는 B 베이커리와 힐스테이크 베이커리가 생기기 전엔 남은 빵을 푸드뱅크에 기부할 정도로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빵이 남아 입게 되는 손해에 벌벌 떨게 될 정도로 벼랑끝에 선 경쟁 상황임을 강조했다.      

“말이 반토막이지, 수입이 절반으로 줄면 얼마나 겁이 나겠어. 200만원 벌 던 게 100만원이 되는 거야. 가게세 빼고 나면 재료값도 안나와. 그럼 생활비는 있겠어? 이거 진짜 무서운 거야.”     

이참에 ‘노동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해보고 싶었다. 우린 왜 일을 하나, 무엇을 기대하나, 단지 먹고살 돈 버는 것으로만 노동의 가치를 이야기할 수 있나.

내가 직업인으로서 발전하는 걸 느끼고,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게 노동의 중요한 의미인데, 그걸 놓으면 ‘존엄한 노동’ ‘가치 있는 노동’이라 부를 수 없는 게 된다는 이야길 했다. ‘생존’도 간과할 수 있는 노동의 목적이지만, 그게 유일한 목적이 되어선 안된다고. 생계 유지에만 초점을 두고 일을 하게 만드는 시스템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거란 이야길, 작가가 끊임없이 하고 있는 거라고.      

먹고 사는 데 지장 안 느끼려고 다 공무원 되려고 하는 사회도 확실히 이상한 거야.”     

학생들에겐 수업 틈틈이 강조했다. 

“엄청 답답하지, 이 세상이 왜 이런가 싶고. 하지만 사회 비판에만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하면 너무 공허해. 그래서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지, 대안을 이야기 해야지. 이 소설이 멋진 건 후반부에서 대안을 말하거든. 그게 너무 멋졌어. 내용도, 방식도. 너희한테 소개해주고 싶어서 굳이 함께 읽은 거야. 전반부를 읽고선 막 분노 폭발해서 ‘헬조선,극혐’ 싶겠지만. 우리, 거기에서 그치면 안된단 생각을 꼭 하자.”

“빵집 사장님들 다투는 모습, 변해가는 모습 보면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날 수 있어. 먹는 걸로 장난치는 모습 보고 진짜 싫다 싶을 수 있고.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일을 용서할 순 없어. ‘하은’ 엄마의 행동은 비판 받을 일이야. 하지만 동시에 구조적 문제도 함께 바라봐야 해. 그 사람의 인성 문제가 100%가 아니란 것도 동시에 생각 해야 돼. 무엇이 이 사람, 혹은 이 현상을 이렇게까지 몰아갔나. 그래야 제대로 ‘이해’하는 거야.

아, 얘들아. ‘이해’랑 ‘용서’는 달라. 이해한다고 ‘하은’ 엄마가 한 일이 갑자기 해도 되는 일이 되는 거 아니야. 하지만 모든 게 그 사람 잘못이 아니라는 건 알게 되지.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일 수 있을 테고. 전체를 보려는 노력이 필요해. 

그건 반드시 상대만을 위한 일도 아냐, 결과적으로 보면 세상이 나아지는 거니까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해. 이해를 위한 노력은.”     

극심한 경쟁, 본사의 횡포 속에서 살 길을 찾는 가맹점주들의 움직임이 나타난다. 본사가 시키는 거 다 따르고, 살아 남아야 하니까 맹목적으로 서로에게 달려들던 점주들이 '내 의지를 발휘할 수 있는 지점'들을 나름대로 찾기 시작한다. 크, 멋져. 


"널리 알려야 하는 소설이다"라는 생각을 한 이유가 담긴 부분이라 수업을 할 때 흥분을 좀 했다. 너무 멋지잖아, 얘들아. 장강명 작가는 진짜 천재야.

"지금 '주영'이 말한 장소, 샌드위치랑 김밥 파는 노점이 있다는 곳은 광흥창역이잖아. 그것도 이 동네 전체를 다 담은 게 아니란 말이야. 일부지. 그럼 얼마나 경쟁자가 많겠어, 전체적으로 보면. 그러니까 할인 판매하고, 매장 문 닫는 시간 늦추고 하면서 경쟁하는 게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되지 않는다는 거야. 경쟁은 끝이 없으니까."     

"이번에 우리 아파트 상가에 저렴이 치킨집이 문을 열었어(실제로 그렇다. 우리 엄마가 엄청 좋아하심.). 후라이드 치킨은 6,500원이고 간장치킨, 마늘치킨 같이 양념된 건 8,500원에 팔아(애들이 '오오오, 어디에요?'라고 반응함). 사람이 엄청 붐비는 거야. 포장 대기 줄도 서고 난리도 아니야. 그런데 같은 상가에 치킨집이 벌써 두 개나 들어와 있었거든. 큰일이 난 거야. 그래서 이번에 한 집이 '후라이드 치킨 6,000원'이라고 현수막을 걸었어. 이런 경쟁에선 '이윤이 얼마가 남나'가 중요한 게 아니거든. 일단 저 가게 기세를 눌러 놓으려고 손해를 봐가면서 파는 거야. 망해서 나가면 더 좋은 거고. 

그런데 이 소설에 따르면, 그런 방식이 해결책이 될 순 없다는 거야. 경쟁상대가 그 가게만 있는 게 아니거든. 엄청 맛있는 떡볶이집이 생길 수도 있고, 편의점에서 더 싼 치킨을 팔 수도 있는 거고. 손해보는 무조건 경쟁 말고, 다른 방안을 찾아봐야해. 그리고, 얼마나 힘들겠어, 남는 것도 없는데 언제까지 해야할지 모르는 경쟁을 살 깎아 먹어 가면서 하는 게."       

"'주영'의 대사는 아주 중요해. 가게가 망할지 안 망할지는 얼마나 빵을 잘 굽는지, 얼마나 노력하는지에 달린 게 아닌 것 같대.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 거야. 내가 무슨 행동을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겠다, 예측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갈아넣는 경쟁을 하는 건 안되는 거잖아. 그게 누굴 위한 거야."     

"대안으로 문닫는 시각을 합의하자고 했어.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방안이야. 잠은 편히 자야지. 이전까진 자기가 몇 시에 퇴근해서 몇 시에 자게 될지 가늠할 수 없었거든. 인간 기본 욕구가 뭐야, 식욕, 성욕, 수면욕이잖아. 기본적인 욕구 충족도 못 하고 산 거야. 얼마나 비참해."      

"어떤 경쟁을 하건 자기를 중심에 놔야돼. 이 경쟁은 결국 '나'를 위한 거잖아. 그걸 잃으면 안돼."     

"B베이커리, P베이커리가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하겠다고 여긴 이유가, 치열한 경쟁 상황 하나일까? 이 사람들 자기 의지로 할 수 있는 거 하나도 없어. 아무것도 못하잖아. 자기가 잘못한 거 아닌데도 사과하러 다니고('주영'이네는 쿠폰 적용을 잘못해서 고객 항의를 산다. 아버지가 본사 지침을 따라 고객의 집으로 찾아가 굴욕적인 사과를 한다. 일을 잘못한 건 가맹점이었지만, 본질적인 원인은 쿠폰을 남발하는 방식으로 이득을 취한 본사에 있다.).     

인간을 존엄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본인 사고로 내린 결정대로 삶을 이끌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야. 의지대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거. 상황이 여의치 않더라도, 의지를 발휘할 수 있는 지점을 최선을 다해 찾아야 해. 본사 규정 샅샅이 훑어서 '아, 폐점시각은 내맘대로 할 수 있어' 찾아서, 적어도 그건 내 맘대로 하는 거야. 내가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아는 건 진짜 중요해."

"소설에서 '주영'이 가게 문 닫는 시각 맞추잔 제안 하고 자기가 뭔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단 생각 하잖아. 이 소설에서 등장인물이 유일하게 긍정적인 감정 느끼는 장면이 이거야. '주영'이는 빵집 오픈 했을 때에도 별로 안 좋아했거든.(웃음) 그러니까 작가가 이 장면을 정말 의미있는 부분, 독자에게 강조하고 싶은 부분으로 설정했단 의미가 돼."      



애들한테 진짜 말하고 싶은 건, '대안의 속성'.      

 '고작 가게 문 닫는 시간 맞추는 걸 대안이라고 말하는 거냐'고 생각할까봐. '고작'의 가치를 무게 두어 설명했다. 그 '고작'들이 모여 세상을 바꾼다고. 적어도 내 숨통은 틔워준다고.      

"대안이라고 생각하기엔 좀 멋없지. 뭐야, 김빠져 싶지 않아? 상황을 속시원히 해결하진 않잖아.

얘들아, 근데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학생 여러명이 끄덕끄덕). 실제 사회를 들여다보면 속이 뚫리는 시원한 해결방안은 많지 않아, 고려할 게 많거든. 이 빵집들만해도, 경쟁이 너무 싫어, 다 그만두고 싶어. 그렇다고 빵집 문을 닫아, 그럼 먹고 살 수가 없잖아. 프랜차이즈 갑질이 너무 심해, 그래서 가맹 탈퇴 해, 그럼 빵집 운영 어떻게 해. 지금 이 소설 읽으면 '주영'이네, '하은'이네, 아무도 빵 못 구워. 심지어 빵 싫다잖아.(웃음)

현실적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거야. 그게 폐점시각을 맞추는 거고. 

이거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되게 멋진 거야. 존엄한 거. 실행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해서 찾은 거잖아. 거창한 건 멋진 게 아니야, 실현 가능한 게 멋진 거지."     

대기업의 목표(큰 돈의 법칙)는 '최대한의 이윤 창출'. 가맹점 개수를 늘리고 무난하게 점포들을 운영하는 것이다. 가맹점주의 목표는 '생존'. 목표가 다르다. 

따라서 가맹점이 본사가 제시하는 영업 지침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절대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다. 무조건 '거대 기업은 악이다, 벗어나야 해'가 아니라, 도움을 받더라도(기업 노하우를 전수 받는 건 아주 중요하니까. 탈주를 할 순 없다.) 나를 그 기업의 부속품처럼 여기지 말라는 말.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찾아 숨 쉴 구멍을 만들라는 의미.      

"제빵기사 문제를 생각해봐. 가게가 잘되려면 능력 좋은 제빵사가 일을 해야 하잖아. 그런데 본사가 가맹점으로 보내는 제빵사는 10주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야. 본사에서 보내주는 생지 데우는 정도로만 일을 하면 된다는 거야. 누가 다루기 쉬울까, 3개월 기본 교육 받은 사람이야, 30년 빵 구운 사람이야? 본사 입장에선 내가 시키는 것 잘 하는 사람을 파티셰로 보내는 게 맞아. 빵 맛도 안 변하고. 괜한 요구도 안 하고. 

가맹점 입장에선 맛있는 빵을 팔아야 좋잖아. 하지만 제빵사 채용도 제대로 못해. 내 가게인데. 다른 매장이랑 똑같은 맛을 내는 빵을 팔아야 하니까, 조금이라도 튀면 안되는 거야.

결국 본사가 바라는 건 가맹점의 성장이 아니야. 무난한 맛을 내는 가맹점 개수가 많아지는 거지."     

"큰 돈, 그러니까 본사가 바라는 건 본사의 이익을 최대화 하는 거야. 집중 관리 업체 선정해서 뒤를 봐준다고 하지만, 결국 '하은'이네 가게는 수익이 늘지 않잖아. 심지어 본사 신제품 홍보하는 사람된 것 같단 생각 하잖아. 신제품 싸게 팔면 '하은'이네 가게가 버는 돈은 별로 많지 않은데 본사에선 신제품이 호응이 높은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으니까 무조건 이득이지."     

"그럼 작은 돈, 가맹점이 본사가 제시하는 솔루션, 법칙들을 무조건 따르는 게 옳은 거야? 목표가 다른데?

생각 하라는 거야. 무조건 다 "우리에게 좋겠지" 하지 말라고. 그리고 그 와중에 내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는 지점들을 자꾸 찾아서 존엄성을 지키라고."      

"이 정도로 참혹한 경쟁을 하고 있어이거 정말 누굴 위한 거야?“     

마무리 문제. 세 빵집이 겪고 있는 경쟁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다시 확인한다.      

"'하은'이 힐스테이트 베이커리 '할아버지', '할머니' 대화에 끼고 싶다고 말하잖아. 대화에 끼고 싶다는 건, 그 집단을 동경한다는 거야. '하은'이는 지금 '할아버지'랑 '할머니' 부러워하고 있어. 가게 망해서 나간 사람인데. 

망했다는 건, 이제 더이상 생사 걸고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잖아. 

얘들아, 생각해봐. 망한 사람을 부러워한다는 게 말이 돼? 엄청 역설적인 거야. 그만큼 '하은'이는 지금의 경쟁 상황이 고통스러워."      

"이 소설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주영이와 하은이가 만나 가게 문 닫는 시각을 합의하는 거야. 그 장면에서 자기가 전과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고 여기잖아. 

경쟁 업체들이 너무 많이 생기니까 자영업을 하기가 힘들어. 가맹점이면 본사 푸시도 받고, 갑질하는 손님들도 많고 장난 아니잖아. 이런 상황에서 삶에 애착을 갖고 뭐라도 하려면 내 의지와 능력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일들을 찾아야 해. 주변에 흩뿌려 둬야 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그냥 생존하려고 사는 사람 아니고, 본사 수족처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고, '나'라는 사람 자체로 살아가고 있다는 실감을 할 수 있게. 

현실이 너무 팍팍하지, 엄혹하고. 하지만 우리가 이걸 벗어나서 살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작가는 내손으로 어떻게 저떻게 할 수 있는 일들을 최대한 찾으라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어."      

"공무원 시험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매달리는 건 진짜 이상한 거야. 다들  왜 그렇게 공무원을 하고 싶어해? (애들이 "안정적이라서요"라고 답함.) 안정성도 직업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은 못해. 하지만 그게 전적인 기준인 건 확실히 이상하잖아(여러 명이 끄덕끄덕.). '공무원학'이라는 전공이 있는 것도 아니야. 다 각자 하고 싶어 하는 공부, 일하고 싶은 분야가 있었는데 공무원으로 몰리는 거야. 꿈이랑 관심사 다 포기한 거지. 

'주영'이 아버지 봐. 퇴직하셨는데 퇴직금 다 털어서 빵집 오픈하셨어. 노인 복지 정책이 탄탄하면 이렇게 연세 들어서 다시 사업장을 열 생각을 하지 않았을 텐데. 앞으로 살아야 하니까 계속 일을 하시는 거야, 문제지. 재취업 하긴 힘드니까 자영업을 택하시는 거고. 

대한민국이 자영업자 비율이 아주 높은 나라래. 그런데, 이게 문제가 경기 영향을 많이 탄다는 거야. 경기 안 좋아지면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잖아. 그럼 장사하시는 분들도 지갑을 닫겠지. 악순환이야, 경기가 나빠지면 더 나빠지고 더더 나빠지고. 

직장 생활 몇 십년 하다가 개인 사업장을 열려면, 당연히 노하우가 없잖아. 내가 62세 되어서 교사 그만두고 빵집을 열어, 당연히 빵 못 굽지. 맛없어서 나도 못 먹지(웃음). 그럼 프랜차이즈 도움 받는 거야. 노하우 전수 받아야지.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본사에 실리는 힘이 커지는 거고. 본사가 안 도와주면 가맹점들은 장사 못하잖아. 그럼 횡포 부릴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거야.       

지금 고작 본문 4줄 옮겨놓고 한국 사회 문제 찾으라고 했는데, 이렇게 많은 말들이 나왔어. 엄청 심각하잖아(웃음). 진짜 헬조선이네(웃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해. 

"이런 문제들을 개인이 다 감당하는 게 옳은가". 

그냥 꾸역꾸역 그 와중에 생존만 생각하고 사는 게 아니라. 그리고 해결책을 생각해야 해. 하지만 그 방안은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어야 하고. 우리나라가 마음에 안 든다고 다른 나라로 이민 가거나 산 속에 들어가거나 할 건 아니잖아. 

애들아, 현실을 인식하는 거랑 수용하는 건 달라. 현실의 특성, 문제들을 인식하면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고민할 수 있어. 인터넷 뉴스 댓글창 들어가서 읽다보면 공허해질 때 있지 않아? 비판만 있고 대안은 없어서 그래."      

"2번에서 대안을 생각해보자고 했는데, 우리가 쓴 내용들 보면 거의 거창하잖아. 사회 안전망 만들고, 갑이 횡포 부리면 벌 주는 법 만들고. 그건 개인이 어떻게 못하잖아. 그럼 또 무력해지는 거야, 정책 차원으로만 생각하면.

내가 장강명 작가를 멋지다고 생각한 이유는 그 와중에 '힘 없는' 우리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이야기 하거든. 인터뷰 본문 완전 좋지 않아? "우리가 겪는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결국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맹목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기, 꾸역꾸역 생존만 바라보며 살지 않기, 내 의지를 반영할 수 있는 부분을 최선을 다해 찾아보기. 이거야."       

"<현수동 빵집 삼국지> 읽을 때 제일 충격적이었던 장면이 뭐였어? 모카빵에 생크림 넣어서 재활용 하는 장면 아니야? 막, '이제 흰 가루 올라간 빵 안 먹어야지' 싶지 않았어(웃음)? 

만약에 '하은' 엄마가 한 일이 뉴스에 나왔다고 생각해봐. 'P베이커리 점주, 유통기한 지난 빵에 생크림 넣어 판매'. 답글창 어떻겠어, 난리 나겠지. 다들 '하은' 엄마 엄청 욕할 거야. 답글 수 막 몇 만 넘고 그럴 걸. 

물론 '하은' 엄마가 잘못한 것 맞아. 용서할 순 없어. 하지만 그런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 이유까지 동시에 고려되어야 해. 100m도 안되는 거리에 빵집 세 개가 생겨서 목숨걸고 경쟁하잖아. 본사에선 있는 빵 얼른 다 팔고 새 빵 받으라고 압박 주고. '하은' 엄마가 원래 나쁜 사람은 아니야, 남은 빵 푸드뱅크에 기부했다며. 그런 사람이 빵을  재활용하게 된 거면 상황이 얼마나 엄혹한 거야. 

'하은' 엄마만 비난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야. 이게 개인의 도덕성만 따져서 될 게 아니거든. 목숨 걸고 경쟁해야하는 골목 상권의 상점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대기업 본사의 갑질을 막을 방법은 없는지 이런 지점들을 같이 생각해야 문제가 나아지지.

이해하는 거랑 용서하는 건 달라. '하은' 엄마가 이런 선택을 한 이유를 이해한다고 해서 '아, 그런 사연이 있었네요. 그럼 무죄입니다.'는 아니야. '하은' 엄마, 잘못한 거 맞아. 하지만 이 사람의 사연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 혼자 잘못한 거 아니잖아. 

한 명을 악마처럼 만들어두고 욕하는 건 되게 쉬워. 내가 되게 우월한 사람인 것 같고 기분 좋거든. 하지만 그 잠깐의 쾌감 말고 다른 남는 게 없어. 상황이 나아지지 않잖아. 모든 국면을 다 봐야해. 그게 소설이 하는 일이야. 그 사람의 사연을 알려주는 일. 진실을 알려주는 일. 

작가는 그냥, 재미있게 읽으라고 소설 쓰는 거 아니야. 좋은 소설은 결국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자, 나와 함께 소설을 찬양하자(웃음)."     

"이제 우리 이야기로 돌아가자. 너희가 하고 있는 경쟁도 장난 아니잖아.(웃음) 남의 경쟁 말고 우리 경쟁도 이야기 해야지. 우린 어떻게 '숨 쉴 구멍'을 만들까?

빵집 사장님들 이야기할 땐 그런갑다 했는데, 우리 것 만들어보자니 '에이, 뭘-' 싶지. 그거 생각한다고 상황이 달라지나 싶고.      



실제로 그래너희 죄진 거 아니야그것만 인식해도 훨씬 좋아질 걸.

나 이번에 깨달은 게 있는데. 들어봐.(웃음)

내가 이번 방학에 엄청 놀고 다녀서 3kg이 쪘어.(웃음) 그런데 전 같았음 3kg이 뭐야, 100g만 쪄도 벌벌 떨었거든. 자기 혐오하고, '내가 어떻게 살을 뺐는데 찌우냐, 이 바보야.' 하면서. 그런데 이번엔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왜지, 뭐가 달라진 거지, 생각을 했는데. 전엔 내가 살찌면 변명을 하고 다녔거든. "나 어제 회식해서 좀 부었어" "지난주에 좀 많이 먹어서 그런데 다시 뺄거야" 이런 식으로(많은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특히 여학생들이.). 그런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단 걸 안 거야. 이건 내 몸의 특성인데. 다른 사람 앞에서 위축되어서 변명하고 설명할 필요가 하나도 없는데. 내가 싫었던 건 살찐 내가 아니라 남들 앞에서 괜히 쭈그러지는 나였구나, 인식하게 됐어(여러 명 끄덕끄덕). 

그러고 나니까 너희 생각이 드는 거야. 우리반 애들이랑 상담을 하면, 꼭 성적 이야기 나올 때 애들이 쭈그러들거든.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컨디션이 안좋았어요" "지금은 학원 다녀요" 라고 변명을 해. 죄진 거 아닌데. 

죄 아니야, 성적이 높고 낮은 것도 특성이야. 물론 시험 잘보면 좋지, 그걸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그거 못 본 게 나쁜 짓 한 것도 아니잖아. 죄인처럼 반응할 필요 없어. 

'그렇게 생각한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잖아요. 공부 잘하면 좋은 대학 가는 거 맞잖아요' 싶지. 맞아, 그것도 맞는데. 자기가 스스로를 변명거리로 생각하고 아니고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거든. 적어도 스스로를 한심해하지 말자고. 

날씬하면 좋지, 나 지금 작년에 입던 옷 다 작아져서 골치야(웃음). 그 옷들을 다 살 순 없으니까 살 빼야지 하고 있는데(웃음). 하지만 내가 한심하지 않아. 내가 안 부끄러워. 직접 경험해보니 차이가 상당히 커. 전엔 나를 싫어했거든, 조금이라도 살이 찌면. 

그것만으로도 너무 좋아, 나를 한심히 여기지 않는다는 건. 지금 통통해졌지만 그래도 좋아.      

자기가 자기를 싫어하는 건 너무 슬프잖아. 그럼 누가 나를 좋아해줘. 적어도 너희가 너희를 한심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것만으로도 많은 게 달라져. 해봐(웃음).     

아, 그리고. 곧 추석인데. 친척들 만나면 '성적 잘 나오냐' '뭐 될거냐' 이런 질문 받잖아(단체로 시무룩). 그때 죄진 사람처럼 답하지 마. 상처 주는 말 들으면 '저 사람은 나한테 중요한 사람이 아니야. 진지하게 들을 이유가 없어.'라고 생각하면서 자기를 보호해. 친척들이랑 척지란 말은 아니고(웃음).      

나를 귀하게 대해주는 사람, 같이 있으면 내가 좀더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여기게 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거든. 존중해주지 않는 사람의 반응에 흔들리지 말고 자신을 지키란 말이야. 진짜 안 되겠다 싶으면 '저 사람 곧 나랑 연 끊을 사람이야' 이렇게 생각해. 패륜 아니야(웃음). 어르신께 불손하게 대하진 말고, 마음으로 안녕 해(웃음).     

실제로 그래. 너희 죄진 거 아니야. 그것만 인식해도 훨씬 좋아질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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