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잘못한 일을 알았다면 고치면 된다
근본,
지구 아니 우주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있었을 장엄하고도 위대한 단어이다.
국가, 개인, 사회, 음식, 여가 등 모든 곳에서 빠지지 않는 단어 근본이 제일 많이 쓰이는 곳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 해충계이다. 해충계에서 근본은 팀, 선수, 팬 심지어 구장 안 잔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곳에서 대입된다. 그 중에서도 선수에게 붙은 근본은 이론까지 정립될 정도로 정형화 되어 있다. 근본론이라 불리는 이 글은 야누자지의 테크트리라는 제목으로 DC 갤을 통해 전파되었다. 이 글의 내용은 해당 4가지의 조건에 한 가지라도 부합한다면 이 선수는 근본이 없는 선수라는 것이다. 아니, 애초에 근본이 뭐 길래 축구선수에게까지 붙는 것인가? 이는 수 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므로 생략하겠다. 왜냐, 근본이 없다라는 표현은 굳이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만큼 위대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근본론의 조건은 4가지다.
1. 겉멋에 들었는가?
2. 돈에 환장했는가?
3. 최소 4살 연상의 가슴 큰 여친(여자에 미쳤나? 라는 뜻이다)
4. 튜터 선생.
축구 선수를 위 4가지의 조건에 대입했을 때 하나라도 포함이 된다면 그 선수는 싹이 노란 것이다. 첼시의 칼럼 허드슨-오도이라는 선수에 대입해보자. 1번 조건에선 전형적인 흑인 스타일임으로 합격이다. 그러나 두 번째, 주급 인상을 요구로 계약을 끌었으므로 불합격, 성추문이 있었으므로 3번도 불합격, 이미 싹이 노랗다는 증거이다. 실제 이 근본론의 주인공인 아드낭 야누자이는(현 바스크 빌바오 위성구단) 나름 괜찮게 풀린 케이스지만 처음 기대치에 비하면 많이 아쉽다.
그러나 위 4조건들을 보면서 축구선수가 아님에도 뜨끔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필자본인도 뜨끔했다.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21세기 인류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핵심은 근본론이 모든 인류에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80세 로인부터 3살 아기까지 근본론에 대입해보라. 예외는 있을 수 있다. 영어문법처럼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 자신이 실패한 이유와 연관될 것이다. 자신이 잘못한 일을 알았다면 고치면 된다. 성찰을 후 실천하라고 밖에 안하는 도덕책과 달리 근본론은 그 성찰의 방법을 제시한다. 잔소리만 하는 엄마와 달리 그저 수비하가 목적이었지만 스스로를 성찰하게 한다. 게다가 근본론의 마지막 문장을 봐보자.
“그래서 이 야누자이란 새끼는 없다.... 근본이라는게....”
크.. 이 얼마나 문학적인가? 김소월의 시를 읽었을 때 드는 의문감 따위는 없다. 그저 필자에 대한 찬양심만 생겨날 뿐이다. “학교란 없다... 근본이란게...” 이 얼마나 아름답고 장엄한 표현인가? 국어 책에 실어도 손색이 없다 생각한다. 실로 엄청난 문학적 장치 아닌가? 각설하고 그저 비방의 목적이었지만 실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가치있는 글, 근본론이다. 지금 나도 글을 쓰면서 오늘은 집가서 꼭 시험공부 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해준다. 중국은 없다... 근본이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