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
이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나는 작년 중학교에서의 마지막 체육대회가 있기 한 달 전쯤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날 나는 유독 들 떠 있었다. 체육대회 때 입을 반티가 도착해서 기뻤고, 도착한 반티가 예뻐서 마음이 설렜다. 나는 반티가 너무 입어보고 싶었던 나머지, 바지의 기장이 긴 일본 전통복 같이 생긴 그 옷을 입고 ‘계주를 할 아이들이 이 옷을 불편해 하지 않을까’ 하는 반장으로써의 실험을 구실로 교실 밖 복도를 달려보기로 했다. 기장이 길어 넘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쳤지만 나는 그런 걱정보단 순간의 재미가 중요했다. 그때 나는 알아야 했다.
아이들이 임의로 그어놓은 선에서 마치 육상선수 같은 모습으로 출발 준비를 하던 내가 “시작!” 하는 소리에 달리기를 하던 그 때이다. 발을 땅에 세 번 채 딛기도 전에 갑자기 시야가 바뀌더니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이미 나는 바닥과 한 몸이었다. 달리기를 시작하자마자 넘어진 내가 넘어진 채로 2m 가량, 바닥을 매끄럽게 쓸며 슬라이딩을 한 것이다. 앞에서 보던 친구들, 옆에서 같이 뛰던 친구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내 꼴을 보고 바닥을 뒹굴며 웃기 시작했다. 아픔보다 창피함이 앞선 내가 멋쩍게 웃고 있던 그때, 누군가 내 손을 보고 경악하기 시작했다. 의아해진 내가 내 손을 내려다보았고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유X브나 페X스북에서나 볼 법한 기이한 현상이 내 손가락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설명하기도 어려운 그것을 굳이 설명해 보자면, 나의 오른쪽 새끼손가락의 두 번째 마디 부분이 왼쪽으로 90도 꺾여 옆에 있던 약지 손가락을 올라타고 있었다. 웃기고도 이상한 상황에 나는 그때까지도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다른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사진을 찍고 있던 와중, 정신없던 상황에 미처 느끼지 못했던 고통이 내 손가락의 가장 끝부터 스물스물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손가락이 내 의지로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그제 서야 심각성을 깨달은 나는 결국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응급실에 있던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들은 대게 내 손을 보고 경악하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생각보다 심각했던 내 손가락의 상태에 나는 평생 동안 해 본 적도 없었던 수술을 하고 철심을 네 개나 박았다. 퇴원을 한 뒤에도 계속 깁스를 하던 나는 하필 오른손을 다치는 바람에 친구들이 밥 위에 반찬을 올려주고, 글씨도 써줘야 하는 희대의 민폐덩어리였다.
이 일을 겪고 내가 뼈저리게 느낀 것이 하나 있다. 만약 내가 하려던 것에 대한 불안한 감정이 들었을 땐, 그 일을 멈춰야 할 때가 있다. 도전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닌 순간의 재미를 위해 하려던 일에 관해서 말이다. 좋지 않은 결과가 조금이라도 예상이 가는 일이라면, 그때는 하던 것을 멈추고 멀리 돌아가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다. 지금도 나는 그런 일이 생기면 괜히 나의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시큼 거리는 게 꼭 그 일을 그만두라고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