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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깐 KKan Apr 10. 2017

시간으로도 아물지 않는 상처

<맨체스터 바이 더 씨>  (2016)

상처받은 사람들은 원인이 되는 사건을 겪는 순간부터 과제를 받는 느낌이다. 어떻게든 극복해야 하고 언젠가 회복해야만 하는 무거운 짐이 던져지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아직도 슬픔에서 허우적대는지, 아니면 자신의 예상보다 일찍 혹은 늦게 감정의 늪에서 벗어났는지 관찰한다. 관심이고 애정일 수도 있겠지만, 정작 상처 입은 당사자는 딱지를 앉힐 새도 없이 상처를 들추게 될 뿐이다. 부담스러운 시선들 밖으로 달아난다고 해도 과거와 완전히 단절되지 않는 한 상처는 아물지 못한다.




 

건물 관리 잡역부로 온갖 잡다한 문제들을 고치며 생계를 이어나가는 리. 자신을 향한 그 어떤 관심에도 반응하지 않고 타인과의 최소한의 상호작용만 남겨두고 건조하게 살아간다. 고쳐야 할 건 마음 어딘가에 있을 듯한 그에게, 맨체스터 바닷가에서 전화가 한 통 걸려온다. 심장병을 앓고 있던 형의 부고. 그를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 속에서 리는 잊고 싶었던 기억을 되짚는다. 그의 앞엔 가족이라는 인생의 전부를 자신의 실수로 깡그리 잃은 곳에서, 다시금 가족이 되어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놓인다. 일그러짐도 거의 없는 리의 표정은 그가 지닌 상처의 깊이를 짐작하게 한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라는 흔하게 받아들여지는 말이 무색한 리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건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히 기억을 붙잡는다. 시간의 치유는 슬픔을 되살아나게 하는 모든 기폭제를 살균하듯 없애야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조금씩 무뎌질지언정 그 속도가 지나치게 더디다면 그래도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 고작 단 한 번 비친 리의 웃음에서 아주 희미한 희망이 보일 뿐. 노인이 되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리는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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