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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깐 KKan May 20. 2017

아버지를 닮은 영웅의
장엄한 장례식

<로건> (2017)

'울버린' 시리즈는 흥미를 잃은 지 오래였다. <엑스맨> 시리즈에 울버린이 등장해도 내 관심은 그를 향해 있지 않았다. 걸핏하면 화를 내는 것도 나를 보는 듯해 싫었다. 손등에서 튀어나오는 '클로'로 무지막지하게 싸우는 모습도 심심했다.  다른 뮤턴트들의 마법 같은, 심지어 종종 예쁘기까지 한 능력들에 비하면 멋없게 느껴졌다. 울버린은 무리 중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해결사'이지만, 주류보단 비주류에 애착을 갖는 내가 동경하기엔 너무 주인공스러웠다. 무엇보다도 2013년의 <더 울버린>은 울버린에게서 마음을 거두게 한 결정적 한 방. 캐릭터의 매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재미의 실종 덕에, <로건>조차 관심 밖이 될 수밖에 없었다.



로건의 마지막을 담은 <로건>에는 '울버린'이라는 타이틀이 달려있지 않다. 힐링 팩터로 치유하고 재생되어 왔던 뮤턴트 '울버린'은 로건이라는 이름의 한 인간이 되어 생의 끝을 걷는다. 영화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 과거로 돌아가 멸종을 막았음에도 영화 속에 남은 뮤턴트는 찰스와 로건, 칼리번. 울버린과 같은 세대에 살던 뮤턴트들은 찰스의 잘못으로 사라진 듯하다. 성공적으로 센티널을 막아냈던 엑스맨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내막을 자세히 알 순 없지만, 유전자 조작을 통한 식생활의 제어로 더 이상의 뮤턴트는 자연출생되지 않게 되었음은 알 수 있다. 울버린의 힐링 팩터가 제기능을 못하게 된 것도 이로 인한 균형 파괴로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보통의 인간처럼 피 흘리고 죽어가는 로건은 너무나도 어색하다. 노쇠해진 그의 무력함은 비로소 그를 돌아보게 만든다. 너무 강해 보였기 때문에 애정을 품기 어려웠던 그는, 갑자기 약해져 버렸다. 그가 이렇게 갑작스레 떠나버리고 나니 그간 주지 못한 관심이 미안하게 느껴진다. 떠나서야 비로소 팬이 되게 만드는 비극적인 매력의 영웅. 이번 영화에서 로건은 아들이자, 아버지. 특히 뮤턴트의 새 길을 열어줄지도 모를 '로라'의 아버지가 된 로건은 무척 인상적이다. 로건의 마지막이 더 슬픈 건, 그의 모습에서 보통의 아버지가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늙고 병들지 않는 영웅인 줄 알았지만 그렇지 못함을 깨닫게 되고 결국 헤어져야 하는 평범한 아버지들 말이다.



자신을 지켜주려 했던 사람들을 죽게 만들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는 죄의식을 평생 안고 살아온 로건. 그는 가족을 얻길 바라지 않았다. 로라는 찰스와 함께 앉아 본 옛 서부영화의 총잡이 영웅, 셰인의 대사를 잊지 못한다. "사람을 죽이면 고통 속에 살게 돼. 되돌릴 방법은 없어. 그게 옳든 그르든 낙인이 되어 지워지지 않지. 이제 어머니한테 가서 괜찮을 거라고 전하렴. 이제 이 계곡에 총성은 없을 거라고." 로건은 셰인의 낙인을 지녔지만, 그는 결국 가족을 얻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런 기분'이었음을 깨닫고 떠난다. 울버린, 그리고 프로페서의 장엄한 장례식과도 같은 영화. 울버린을 보낸 느낌보단 로건을, 로건을 보낸 느낌 보단 휴 잭맨을 떠나보낸 느낌이 더 짙으니 호숫가에 묻힌 두 엑스맨과 더불어 휴 잭맨에게 가장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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