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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깐 KKan Jan 27. 2019

'창궐'과는 다른 조선 좀비극

<킹덤 시즌 1>, 2019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가 아니었다면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을 조선 좀비극, <킹덤>의 첫 번째 시즌이 공개됐다. 야귀 분장과 엑스트라 증명사진이 있던 엔딩 크레딧을 제외하곤 만족할 게 없던 <창궐>과 같은 소재인 넷플릭스 드라마. 좀비물에 각별한 애정을 가진 입장에서 <창궐>은 참을 수 없는 영화였다. <부산행>의 흥행에서 한국에서의 좀비물의 가능성을 보고 배경의 특이성만 욱여넣은 느낌이었으니까. 이 영화의 배경이 왜 조선이어야 하는 이유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영화의 기본이어야 할 재미도 없었다. 인물들의 개연성 없는 행동과 앞뒤가 맞지 않는 흐름은 작가가 파업을 한 게 아닐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킹덤>은 이런 점에서 <창궐>을 압도한다. 연출의 자연스러움과 타당성 있는 전개는 6부작으로 구성된 하나의 시즌을 단숨에 몰아 보게 만든다. 이유 있는 행동과 공감을 일으키는 과하지 않은 감정선은 이야기를 놓을 수 없게 만든다. <킹덤>은 조선의 맛도 잘 살렸다. 조선을 배경으로 했을 때에만 보여줄 수 있는 요소도 적재적소에 활용한 것. 한옥 마루 밑에 엉겨붙어 숨은 괴물들, 죽창과 짚을 활용한 갖가지 방어수단들은 여느 좀비물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장면들이다. 다소 길게 촬영된 몇몇 장면에서는 늘어지는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숨 쉴 틈 없는 긴장감을 완화시키는 역할로 보아줄 만하다.



조선 궁중의 실내외 건축과 의복도 다른 시대극들에 견줘도 뛰어난 편이다. 회당 제작비가 넷플릭스 드라마 사상 미국 외 지역에서 최고 수준이라던데, 그 값을 고스란히 느끼게 하는 부분이 많았다. 문화나 당시 지배적인 사상의 요소, 지형의 특수성을 잘 살려둔 장면도 끊이지 않는다. 유교 사상과 전란 이후 고통 받는 조선인들의 모습에 당황스럽기도 하겠지만, 서양인들의 눈에 한국적인 것들을 보여줄 수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이지 않나 싶다. 조선과 유사한 허구의 시대, 허구의 가문, 허구의 이야기이므로 정확한 고증을 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한국의 개성을 느끼기에는 더할 나위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아쉬운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주지훈과 배두나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 고위 관료로 위엄을 보이는 류승룡과 허준의 캐스팅은 훌륭하지만 중전에 대한 실망감이 크다. 아름다움의 기준이야 조선의 것과 오늘이 다르니 그러려니 하고, 딱히 아름답다고 언급한 적은 없으니 불편할 것이 없지만, 중전의 연기만큼은 참고 보기가 어렵다. 류승룡과 나란히 나오다 보니 더욱 도드라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거의 모든 배우들에게서 현대물과 혼재된 듯한 어색한 대사를 피할 수 없다는 점도 아쉽다. 심지어 배두나도 피해가지 못하는 듯하다.



결정적으로 역병 환자나 괴물 정도로 언급되는 킹덤의 좀비들은 좀비물 마니아들이 보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이 점만큼은 <창궐>이 훨씬 낫다. 미쟝센을 완성하는 짜임새 좋은 액션 연기들도 좋지만, 액션 하나하나와 표정을 의식하고 연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큐 사인을 받고 각을 잘 맞춰서 진영을 이루고 달리고 있는 좀비의 모습이 보인다. 매뉴얼이라도 있는 듯한 되살아 나는 몸짓들도 어색함을 더한다. 대신 피부와 분장과 뜯어 먹힌 연출은 훌륭하다. 덕분에 쫓기고 놀라는 공포감은 없지만 고어함은 비교적 강렬한 편이다.



던져 놓은 떡밥을 적당히 회수하고 적당히 궁금증을 남기며 첫 시즌이 끝났다. 여기서 끝이 나면 어쩌냐는 분노를 일으킬 만한 애간장 타는 엔딩. 서비의 마지막 대사는 또 다른 의문점과 함께 왕좌의 게임을 연상시킨다. 다행히 두 번째 시즌은 이미 제작이 확정되었다니, 이어 볼 수 있는 날을 기다리는 일만 남긴 했다. '겨울이 오고' 있는 마당이니, 왕좌의 게임처럼 1년 주기로 다음 겨울에나 돌아오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따름. 무력한 시청자로서 기다림은 감당할 테니, 킹덤이 인기와 수익을 충분히 올려 안정적으로 제작되고, 나아가 한국에서 더 좋은 작품들이 계속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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