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
이건 흔한 아저씨 얘기다.
컨퍼런스에서 그 아재를 처음 만났다. 경제 활성화 무슨 컨퍼런스였는데, 한 기업가가 그를 데려왔고 그를 나에게 소개해주었다. 오, 미디어에서 자주 보던 유명인이구만 생각했다. 그는 한적한 동네에 틀어박혀서 기술과 관련한 글을 쓰고, 취미로 가구도 디자인 한다고 했다. 그렇군요. 갑자기 그가 나한테 셀카를 찍자고 해서-다른 사람들도 많은데 굳이 나를 콕 집어서- 그의 핸드폰으로 셀카를 찍었고, 사진을 보내줄테니 번호를 달라고 했다. 음 나중에 협업할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 번호를 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번호를 줬다.
그 이후로 그 아재한텐 문자가 종종 왔다. 자기가 디자인 한 가구의 스케치를 보내면서 자기 작품 어떠냐, 잘 좀 봐달라. 그리고 어떤 날은 자기가 쓴 기술서적을 보내줬다(읽다가 말았다). 하도 본인 가구 디자인을 나한테 어필하길래, 사진을 쭉 본 나는 "연구하시던 분야 열심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답장했다. 그러면 그 아재는 "ㅠㅠ" 같은 답장을 했다. 그럼 씹었다. 디자이너는 아무나 하는 줄 아세요. 하시던 본업 열심히 하세요. 이게 내 마음이었다.
그러던 어떤 날은 자기가 소고기를 사줄테니 동네로 오라고 했다. 저녁에 모르는 아재랑 밥을... 조금 안 내키긴 했지만 그래도 그 아저씨랑 나누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재미있는 경우가 많았다. 어른이랑 친구하는 건 즐거운 일이니까. 종종 그 사람들이 부리는 오지랖을 듣는 것도 재미있다. 그가 하는 다양한 세상 얘기를 들으면서 꽃등심을 열심히 먹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데 소고기집에서 나와서 그가 나한테 "까나리씨, 마음은 안 그런데 사람들한테 막 툴툴대고 그러죠? 위악이 위선보다 더 나쁜 거에요."라고 했다. 그 말이 마음에 와서 깊이 인식되었다. 위악이 위선보다 더 나쁜 것... 이 말을 그 이후로도 혼자서 몇 번을 되뇌었다. 나쁜 사람인 척 하는 게 좋은 사람인 척 하는 것보다 더 편하다. 처음부터 나쁜 사람, 미친년으로 보이면 쟤는 원래 그런가보다 하니까. 그 편이 항상 더 편했던 것 같고 그래서 나쁜 사람이 되기를 자처해 왔다. 근데 위악이 위선보다 더 나쁜 거라고?
"아.... 어떻게 해야 그만 할 수 있는데요?"
"까나리씨 안에 뭔가가 해결돼야죠. 목표했던 것들."
"근데 저는... 목표한 걸 딱히 못 이루고 산 적은 없는 것 같은데요.."
"그래요. 그렇겠지요. 근데 그거보다 더 큰 게 까나리씨 안에 있을걸요. 그걸 해결하면 괜찮아져요. 나도 그랬으니까."
말을 마치고 차에 올라탔기 때문에 더이상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이 대화가 인상 깊었다. 그래서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밥을 다 먹었는데 그가 자신의 집에 키우는 고양이를 보러 가겠냐고 물었다.(어른들은 Netflix and chill?도 아니고, 우리집에서 라면 먹고 갈래도 아니고, 우리집에 고양이 보러 갈래 라고 하는구나) 속이 빤히 보였다. 조금 고민했다. 여러 투자자들과 고위임원, 기업가들이 다 엮여있는데, 거기서 젠더 이슈에 엮이고 싶으시진 않겠지. 그 집에 가더라도 내가 빠져나올 구멍은 얼마든지 있을 것 같았다. 진짜 무엇보다 그 때 키우던 강아지가 죽은지 얼마 안 되었던 나는 털동물이 너무 만지고 싶었다. 시간이 9시가 넘었는데 이 사람 집에 들르면.. 집에는 어떻게 가지. 저 집에 어떻게 가요? 하니까 "택시 타고 가세요. 내가 택시비 줄게요." 라고 했다. 콜. 그가 사는 대단지 아파트에 갔다. 털에서 윤기가 좌르르 나는 노르웨이 숲고양이가 들어서는 나를 반겨줬다. 그가 나한테 간식을 몇개 주고 고양이에게 줘보라고 했다. 그리고는 집구경을 시켜줬다. 여기 이건 내가 그린 거고, 이건 선물 받은거고. 그리고는 거실에 있는 원목으로 된 흔들의자 자랑을 했다. 솔직히 자랑할만한 의자였다. 단단한 호두나무로 되어있는데, 못이 하나 없이 순수하게 나무를 깎아서 짜맞춘 고급 흔들의자였다. 연구를 많이 하니 앉아서 머리를 식힐 곳이 있었으면 해서 직접 디자인하고 몇 년에 걸쳐 목공방에서 만들었다고 했던가.
그리고는 테이블에 앉은 나에게 위스키를 따라줬던 것 같다. 사실 잘 기억은 안나는데, 그 때 그 사람이 어떤 이슈로 되게 슬퍼했고 그 얘길 쭉 늘어놨던 기억이 난다. 뭐였냐면, 자신과 친했던 교수가 자살했고 그와 자신이 얼마나 친한 사이였는지. 그 사람의 자살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사람들은 그 교수를 어떤 식으로 소비하고 있는데 자기가 생각했을 땐 왜 그랬는지.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난 자신의 멘토 얘기도 했다. 그 멘토가 자길 얼마나 예뻐했는지. 그리고 그렇게 가까운 사람들이 주변에서 계속해서 죽는다는 것이 자기한테 어떤 슬픔인지, 그런 얘길 했다. 솔직히 너무 부자들 얘기라서 다 알아듣긴 어려웠는데 그 때 당시에 그 아저씨한테선 괴로움이 느껴졌다. 불쌍하진 않고. 그냥, 얼마나 외로우면 나이 차이가 트리플 띠동갑은 날 법한 여자애를 집에다 불러놓고 가까운 사람을 잃은 슬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 다리에 착 붙어있는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맞은 편에 앉은 그 아저씨가 슬쩍 슬쩍 팔이며 손을 터치하는데, 조금 피하는 척 하고 조금은 냅뒀다. 거기서 질색하면서 나오는 것도 웃기니까.
시간이 거의 12시가 됐는데, 내가 집에 가야겠다고 하니 자기가 같이 나가주겠다고 했다. 아 그리고 오만원짜리 두 장을 주면서 택시를 타고 가라고 했다. 택시를 불렀고 그는 택시가 오길 기다려줬다가, 반쯤 엉거주춤하게(완전히는 못하고) 내 허리를 안은채로 인사하면서 “왜 고양이만 예뻐하세요, 다음 번엔 저도 예뻐해주세요” 했다. 웃고 씹었다. 웃기는 개저씨라고 생각했다. 센 척이 아니라, 이 때는 진짜로 그냥 그런 식의 것들에 너무 익숙해서 더이상 아무렇지가 않았다. 에라 서비스다 정도의 느낌이다.
택시비는 얼마 나오지 않았다. 그는 또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난데없이 잘 정돈된, 어디 해리포터 기숙사 같은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여긴 어디에요?" 영국에 있는 도서관에서 찍은건데 자기가 영국에 있는 기업과 협업하고 있는 기술에 관한 책을 쓸거라서 해외에 와있고 어쩌고 저쩌고. 아 그걸 왜 저한테 말하세요.
그러고는 저번엔 내가 그의 동네까지 갔으니, 이번에는 우리 동네에서 저녁을 먹자고 했다. 이번에도 조금 고민했지만 그리 오래 하지는 않았다. 이전 글에서도 썼지만 어른이랑 대화하는 건 생각보다 재미있다. 또래가 줄 수 없는 인사이트들을 얻게 되는 경우도 있다. 밥을 먹으면서 또 아저씨의 신세한탄을 한참 들어줬다. 자기가 얼마전에 칠순잔치를 했는데 어쩌고.
“세상에 내가 칠순이라니. 까나리씨 눈엔 칠순이라고 하면 어떻게 보이세요.”
(우물우물) 할아버지요.
“그쵸? 아 내 인생 망했다.. 끝났다…”
아니.. 님이 망한거면 다른 사람은 우째요? 님은 집에 좋은 흔들의자도 있고 차도 좋은 거 타시잖아요. 거 흔들의자 공방에서 만들 때 들어가는 나무값이 얼만데.
“저는 인격적으로 좋은 사람은 못 되잖아요. 막 훌륭한 누구 스님이나 이런 사람들 보면 막, 고기도 먹으면 안되고 수양도 해야되고 섹스도 하면 안되잖아요. 근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란 말이에요. 나는 그냥 돈만 많이 벌고 싶었어. 그게 다였단 말이에요.”
먹으면서 생각했다. 자기 객관화가 생각보다 잘 되어 있으시네. 근데 저런 말은 나한테 왜 한담. 어이쿠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나와버림. "그쵸 뭐, 그런 스타일은 아니시죠."
어른들의 좋은 점은 이런 말을 해도 타격이 없다는 점이다.
한탄이 계속된다… (살짝 피곤)
"아니, 제가 디자인을 한다고 했었잖아요. 그걸 못 한지 꽤 됐어요. 왜 그런지 알아요?
내가 너무 슬픈데, 슬퍼죽겠는데, 그게 내 내면의 그 슬픔을 다 담아내지를 못해요."
아니 그래서 내가 연구만 하시라고 했잖아요. 내가 괜히 그런 말을 한 줄 아나. 그 아저씨가 했다는 가구 디자인을 보면, 분명히 감각이 있다는 건 알겠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가구인데 납작하다. 다면적인 측면도 없고, 그것을 파고들어서 어떤 것을 느껴볼 생각도 들지 않는다. 나는 이런 건 아마추어의 취미일 뿐, 좋은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연한 거다. 통상 작가들은 그런 표현을 위해서 평생을, 매일을, 매 시간을 바친다. 어떤 사람들은 충분히 좋은 걸 만들고도 더 좋은 걸 만들지 못해서 앓다가 죽는다. 남들이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전 재산을 바칠만큼 사랑하고 가지지 못해 안달하는 것을, 취미로 몇 년 했으면서 그런 걸 만들 수 있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다. 그래서 하던 연구 열심히 하시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간의 대화를 통해서 나는 이 사람도, 이렇게 나이 먹고 언변이 능한 사람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괴로움을 느낄 수는 있지만 세심하게 들어야 알 수 있고, 대체적으로는 중언부언하는, 말이 표면에서 떠돌고 있는 느낌. 그것은 감정을 곱씹어보고 되새김질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의 언어였다.
"그건 그냥 계속 그렇게 살아서 그런 거 아니에요?"
얌전히 스테이크를 씹던 그가 정색을 하고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지금 제가 얄팍하게 살아서 그렇다는 거죠?”
"네."
“무서운 말을 웃으면서 하네요.”
"그게 그렇게 쉽게 되면 전부다 디자이너 하게요. 그 사람들은 평생을 바치는데."
한동안 식탁 위에서는 말이 없었다. 내가 어른들이랑 대화하면 재미있어 하는 부분은 이런 것들이다. 또래 남자애들과 이렇게 대화했다간, 바들바들 사시나무마냥 떨면서 나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을 할 것이다. 반면 어른들은 맹랑한 꼬맹이구나, 하고 만다.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저 담배 한 대만 필게요. 하고 불을 붙였더니 그가 편의점에서 오렌지 주스를 사서 들고 나와서 담배를 피는 내 앞에 쭈그려 앉았다.
"전자담배도 아니고 연초를 피시네요?"
"네. 님은 안피세요?"
"네. 저도 좀 줘보실래요?"
새 걸 꺼내주려고 했더만, 내가 피던 걸 달란다. 참나. 그냥 줘버렸다. "자, 집에 갈까요? 했더니 근처 강변을 조금 걷잔다. 시간은 8시가 조금 넘었다. 음.. 그럽시다. 천변 입구에서 냅다 날더러 "나 손 좀 잡아주세요."란다. 할배 보소.
"제가 왜요? 싫은데요."
그냥 내 손을 가져다가 팔짱을 낀 뒤에 자기 손을 잡고 트렌치 코트 주머니 안에 넣었다. 손에 벌레 달라붙은 것 마냥 600헤르츠로 털어제낄까 하다가, 그래.. 오늘 대화의 서비스다.. 생각하고 말았다. 이런 것에 당황하기에는 나는 너무 많은 일을 겪고 낡아버렸다. 낡는 게 나쁜 건 아니다. 아주 편리하다. 걸으면서 무슨 얘기를 했던 것도 같은데 머리 한구석에서는 '이 사람이 나에게만 이랬을 리는 만무하고, 그냥 아무한테나 해보고 하나만 걸리면 된다였겠구나. 그리고 이 사람의 언변과 사회적 위치에 넘어간 어린 여자들이 많았겠구나.' 그런 생각만 했다. 한편으로는 조금 슬펐다. 아재요, 선 안 넘고 있었으면 우리 어쩌면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나는 아재랑 친구가 하고 싶었거든요.
자, 여기까지가 내가 가진 기억의 전부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너는 거길 왜 가?' 식의 경멸하는 표정도 싫고, 내가 말 한 게 전부가 아닐 거라는듯한ㅡ마치 그 뒤에 뭐가 더 있었을 거란듯한ㅡ시선도 싫다. 무조건적으로 노인네를 호색한으로 보는 시선도 싫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꺼내놓지 않는거다. 아니 근데 궁금한 걸 어쩌라고요. 때때로 나는 그냥 궁금함에 사로잡혀서 어떤 선택들을 한다. 아오 서비스다, 라고 생각할 수 있을만큼 낡아버린 것은 그 궁금함이 불러온 위험들을 어떤 식으로든 지나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에게 나이 든 남성의 친구들이 없느냐? 그렇지 않다. 얼마 전엔 10년도 전에 알게 되었던 IT회사의 각 부문별 헤드들을 만났다. 지금은 CTO이거나 실장인 분들. 오랜만에 그들에게 연락을 하는 데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나를 기억할까? 아니나다를까 그들은 날 기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내 요청에 응했고 만나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 때도 그들은 친근하고 다정했다. 단순히 이런 걸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긴 시간을 건너서 언제든지 응할 수 있다면, 대화 같은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내게는 그게 친구로 느껴진다.
자, 이제 이건 더이상 남자 어른 사람이 선을 넘어서 친구가 될 수 없다던가, 아니면 남성과 여성간의 우정이 가능한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종종 나와 카테고리가 아주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아니면,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동물은 어때? 로봇은? 여기서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의 말이 생각났다. 이 부분은 막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에 나왔던 부분이다. 래리 페이지는 초인공지능을 원하는데, (당시만 해도 디지털 회의주의자였던) 일론 머스크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초인공지능 기술이 인류에게 안전해져야 한다고 이야기 하자, 페이지가 일론한테 "당신은 종차별주의자(speciesist)다. 탄소가 아니라 실리콘을 기반으로 한다는 이유로 어떤 생명체를 열등하게 보고 있다"고 놀렸다는 거다.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종을 뛰어넘어서… 우리는 친구가 될 수도 있을까.
Image credit: NASA/Bill Ingal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