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의식을 어떻게 버리는데

내 말을 왜 들어주지 않아? 내가 권위가 없어서 그래?

by 까나리

내가 경험한 세계엔 모두가 계급이 있었다. 그래서 모두가 윗자리로 올라가고 싶어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 말을 좀 들어달라고, 내 말에 무게를 싣기 위해서, 내 말에 권위를 얻고 싶어서. 이게 다 피해의식이다. 내가 뭔가가 되어야 누군가 내 말을 들어줄 거라는 마음.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아주 작은 존재야."

나도 안다. 나한테 누가 관심이 있다고. 그런데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숨이 막힌다. 마치 나한테 '너도 니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인정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예를 들면, 미술계 사람들은 자주 자조적으로 "개나 소나 창작을 한다"는 말을 한다. 이런 말을 해도 우리 언니는 "선민의식 좀!!!!"이라고 한다. '누구나'로 단어를 바꿔서 쓰란다. 개나 소나 한다는 말 자체가 선민의식이라고. 야 나도 그 정도는 알아. 언니한테도 못하면 뉘한테 하노? 너조차 내가 미술사 대학원을 가겠다고 했을 때 의심했잖아. 내가 큐레이터가 마침내 돼서 티비에 나오고 신문에 나오니까 "너 진짜 그걸 했네. 대단하네."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선민의식은, 다시 말해 피해의식이다. 오늘의 글은 이것에 대한 얘기가 될거다.


우리 아빠는 어릴 때부터 아팠다. 엄마는 결혼할 때도 아빠가 아픈 걸 몰랐다. 정확히는 시가의 누구도 엄마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우연한 계기로 아빠의 병명을 엄마가 알게 되었고, 엄마는 분노했다. 그런데도 누구도 아빠가 아픈 것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았다. 돌아온 건 "너네 아빠 아픈 레퍼토리 그거 지겨워죽겠다!"였다. 아빠가 장남이고, 그 이유로 2주에 한번씩 엄마가 우리를 포대기에 들쳐매고 차도 없는 시절에 버스를 갈아타며 시가에 갔어야 했는데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장례식장에서 친척들이 싸웠던 기억이 난다. 별로 많지도 않은 재산 분배 문제로. 아빠한텐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았다. 친척들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2000년대에 언니가 행정고시를 패스했다. 아빠가 아프고 엄마가 난리를 쳐도 누구도 관심조차 주지 않더니, 언니가 <사무관> 이름을 달자마자 친척들한테 앞다퉈서 전화가 왔다. 이씨 집안 잡지에 무슨 글을 써달라는 둥, 보험 가입을 하고 카드를 만들어 달라는 둥, 어쩌고 저쩌고. 그 때 생각했다.

아, 내가 뭔가가 돼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는구나. 어쨌든 힘은 그 타이틀에서 오는 거구나.

그동안 아빠의 퇴직이 다가왔고 아빠는 나이가 들수록 회사에서 발작하는 일이 잦아졌다. 사람들이 아빠가 쓰러졌을 때 응급실에 보내놓고는, 아빠 약통을 검색해봤다. 병명을 알고는 수군거렸다. 좁은 동네에서 누구네 아빠 아프대, 하면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언니는 사무관이 되자마자 빚이 있는 아빠 때문에 1억짜리 마이너스 통장을 뚫었다. 이걸로도 빚이 다 해결되지 않았다.


2010년대엔 우리집이 개인회생을 시작했다. 일수꾼에게까지 돈을 빌린 아빠가 자살하고 싶어해서다. 일수꾼은 명문대에 다니는 우리들에게 찾아오겠다고 협박했다. 사정을 들은 변호사가 그 정도의 금액이면 회생을 할 정도로 큰 돈은 아닌데.. 친척들이나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보면 어떠냐고 했다. 그럴 친척이 있었으면 여기까지 안 왔겠지. 나는 대학원을 포기하고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IT 회사에 취업을 했다. 집을 팔았다. 가족들은 여기저기로 찢어져서 생활했다. 엄마는 다른 사람의 집에서 아기를 봐주고, 김밥집에서 김밥을 말고, 마트에서 소동물을 판매하는 일을 했다(엄마는 가끔 작은 수족관의 물 위에 둥둥 떠서 죽은 물고기들이 꿈에 나온다고 했다). 달마다 500만원이 넘는 돈을 법원에 내는 걸 3년간 했다. 길고 긴 시간이었다. 간신히 회생이 끝났다.


그 사이에 나는 악착같이 석사를 졸업하고, 큐레이터가 됐다. '뭔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내 욕망이 됐다. 아빠의 빚은 다 갚았지만 나에게도 빚이 있고, 언니에겐 아직 1억이라는 빚이 남아있다. 이것 때문에 언니는 회사를 관두고 싶어도 관두지 못한다. 언니는 정부가 보증해줘서 저리에 1억을 빌린 거니까. 우리는 아빠의 병을 위해 많은 돈을 들여야 했다. 아니다, 지금도 들이고 있다. 언니는 종종 나에게 이것에 대해서 투정을 부린다. 다른 누가 아파서 어쩔 수 없이 돈을 벌고, 자긴 관둘 수 없고, 돈 벌다가 자기가 아파졌다고. 그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이건 사실상 빚의 대물림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내가 큐레이터라고 하면 막연히 집 잘 살고 오냐오냐 자랐으니까 대학원까지 가서 미술 공부도 했겠지, 라고 말한다. 넌 그래도 니가 좋아하는 일 하잖아, 라고 말한다. 아닌데요. 개털인데요. 하고 싶은 거 해도 좆같은데요. 나라는 인간 자체가 없어보이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감사하게 생각한다. 익숙하게 웃어넘긴다. 그래도 마음 속에서는 화가 난다.

'야, 내가 무슨 개고생을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니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해.'


여전히 나는 인생은 사다리가 아니라 정글짐이라고 믿는다. 누군가를 짓밟지 않고, 누군가의 엉덩이만 쳐다보지 않고, 여기로 갔다가도 필요할 때는 옆으로 빠졌다가, 함께 그렇게 살 수 있는 게 인생이라고 믿는다. 아니, 믿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영영 사다리 제일 아래에 있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테니까.


동시에 나는 다들 무언가가 되어야만 관심을 가져줬으면서, 세상이 왜 이제 와서 나한테 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라고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나 편리할 대로 그걸 해석한다. 그래 나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제발 나한테 관심 좀 꺼줘, 라고 생각하면서도 내 말을 누가 들어주길 원한다. 시발 모순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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