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탐구: 전시가 없을 때 큐레이터는 뭘 할까

국내최초 AES+F 미술관 전시로 알아보는 전시 관련 행정업무(ㅠ)

by 까나리

매 전시가 그랬지만(내 얘기 한정임. 모든 큐레이터가 이런 건 아니다), AES+F의 개인전은 유난히 서둘러서 진행했던 것 중 하나였다. 원래는 독일 사진가인 토마스 루프(Thomas Ruff, 1958~)의 순회전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오픈 6개월 전에 갑작스럽게 취소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관람객들은 큐레이터와 미술관이 전시 하나를 열고 나면 계속 쉰다고 생각하기가 쉽지만, 국제전 같은 경우는 1년을 넘는 시간을 두고 진행해도 시간이 모자라다. 그러니 보통은 두 개의 전시를 저글링 하면서 하나를 먼저 열고, 열고 나면 또 다음 전시 준비를 하는 식이다.(이걸 열고 나면 또 그 다음 전시가 생겨나는 마법.. 영원히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런 상황에서 6개월 전의 전시 취소 통보는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다. 국제전을 위해서 사용되는 작품의 항공 운송료가 물론 국가와 지역에 따라, 또 몇 개의 국가를 거치냐에 따라 다르겠으나 일반적으로 5천만원 이상이 훌쩍 넘어간다. 정부기관은 이 경우 반드시 입찰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입찰 공고를 띄우는 순간부터 낙찰, 낙찰된 업체에 부적격성은 없는지를 확인하고 계약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만 (최소한으로 잡았을 때) 약 3주 정도 걸린다. 일반적으로 입찰공고를 올리고 개찰을 하는 것은 학예연구사가 아니라 관련 광역/기초 시도청의 예산을 집행하는 담당주무관이 진행하기 때문에, 이 사람과 의견을 조율하고 공고문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넉넉히 한 달 정도의 시간을 잡아야 한다.


한 번에 낙찰이 되면 다행이다. 금액을 너무 짜게 잡거나 도저히 단가가 맞지 않으면 어떤 운송사도 응찰하지 않을 때가 있고, 운이 없으면 유찰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다시 처음부터 공고문을 올리고 개찰을 해야하기 때문에 길게는 2달 이상이 소요되기도 한다. 왜 이렇게 행정과정에서 소요되는 시간을 썼냐면... 그래서 전시 6개월 전 취소는 몹시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운송과 제반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만 2달, 직전 전시를 철거하고 다시 원래 상태로 복구, 그리고 새로 오픈할 전시를 위한 전시장 공사까지 "작품이 놓일 물리적인 공간을 확보하는 데만" 최소한으로 잡아서 1달이 걸린다.


AES+F의 경우 전시가 열리던 시점이 코로나19 확산이 한참 가장 심각할 때였다. 지금은 그 시절이 전생같이 느껴지는데, 모든 외국인의 입출국을 금지하고 특수한 사정으로 입국해야만 하는 경우에는 관련 부처의 허가를 일일이 얻어야 하던 때가 있었다... 이렇게 되면 항공기 운항편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사람 뿐만 아니라 화물운송(보통 카고 플레인이라고 부른다)의 금액도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거의 부르는 게 값인 수준이다. 돈이 없고 시간이라도 많으면 해상운송을 할 수 있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전시 오픈 6개월 전에 원래 예정된 전시가 취소되고 급하게 독일에 있는 갤러리에 컨택했고, 운이 좋게도 작가들이 흔쾌히 오케이를 했기 때문에 간신히 전시를 위한 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배 운송은 언제 도착할지 모른다.. 코로나 시국에는 두달이 걸릴지 세달이 걸릴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해상운송도 못한다...(이렇게 쓰고 있지만 당시에는 스트레스로 매일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름이 학예연구사인데 왜 연구를 못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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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시국의 고군분투. 아티스트 토크를 위해 초청한 갤러리대표님과 작가2인이 모두 외국국적자이므로 문체부와 질병관리부, 보건소 전담공무원에게 동선과 PCR검사 사항을 보고했다.


이 때 정말 다행이었던 건, 작가와 스튜디오가 워낙 베테랑이어서 테크니션이 사전에 전시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도면을 그려 넘겨줬다는 점이다. 나는 이 전시를 위해서 100평이 넘는 전시장을 사용했는데, 이 전시장의 어디에 어떤 작품을 어떻게 놓을 것인지, 예를 들어 벽면의 컬러는 무엇으로 할지, 프로젝터는 어디에 몇개를 둬야 하는지, 스크린은 공중에서 띄울 것인지 바닥에 세울 것인지 기타 등등을 모두 내가 결정해야 했다면 절대로 제 시간에 전시를 오픈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작가 스튜디오가 베테랑인 경우에는 전시할 공간에 작품이 가장 돋보일 수 있는 형태를 그들이 구상해오고, 우린 이것대로 실행만 하면 된다.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운송 입찰을 올리고 한 번에 업계에서 이름있는 운송사에 낙찰이 되었다! 앞선 글(https://brunch.co.kr/@kkanarisauce/31)에서 2전시장의 Inverso Mundus 시리즈 사진만 올렸었는데, 3전시장에 전시되었던 <Angel-Demon> 시리즈는 러시아 모스크바의 개인소장가에게서 빌린 조각작품들이었다. 아이들과 관람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던 시리즈 중 하나였다. 꼬리가 달리고 날개도 달린, 기저귀도 한 천사와 악마가 기묘하게 합쳐진듯한 형상의 조각상들.


KakaoTalk_20231229_225307958_10.jpg ⓒAES+F. Photographed by 1207스튜디오


왜 힘겹게 전시에 수반되는 행정적 절차를 다 썼냐하면, 이 조각상들을 옮겨와서 해포하는 과정에서 또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운송사를 지정할 때, 해외운송의 경우 해외에서 파트너사를 끼고 일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말인 즉 한국에 있는 운송사 직원들이 직접 러시아까지 가서 포장을 하고 크레이트를 짤 수는 없으니까, 한국의 운송사가 자신들이 알고 있는 해외운송사들 여러군데에 컨택 해서 단가가 맞는 곳을 선정하고, 외국에서의 작품 포장은 그 파트너사가 한다는 뜻이다. 근데 러시아에서 포장할 때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저 조각상들 중 하나의 머리 부분 도장이 긁혀있었다. (알 수 없다. 보험처리를 위해서는 귀책사유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에 한국운송사가 보내준 사진을 모두 받아봤는데 한국 안에서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아마도 단가를 맞추느라 고용한 해외 파트너사에서 포장을 좀 대충 한 거라고 추측할 수 밖에 없었다. 그저 눈물을 흘린다..) 보험처리도 보험처리인데 작가 소장도 아니고 개인소장가의 작품을 빌린 데다가, 전시 오픈은 얼마 안 남았고 그 전까지 복원처리를 완료해서 다시 전시장 안까지 운송해야 오픈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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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작품이 운송되어서 전시장으로 들어온 직후에는 대충 이런 모습이다. 아주 엄격한 미술관들의 경우 작품이 들어가는 크레이트의 나무 종류까지 지정하기도 한다.


너무 바쁜 와중에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물론 좋았겠지만, 당황해봤자 남는 것은 없으므로(다 울었니? 이제 할 일을 하자) 빠르게 운송사와 작가 스튜디오측 매니저에게 알리고, 복원처리를 해줄 컨서베이터를 알아본 후에 작품 보험을 가입한 보험사에도 상황을 알린다. 그 사이에 운송사에서는 컨서베이터 사무실까지 갈 인력을 따로 빼두고, 헐떡대면서 컨서베이터 사무실까지 작품 운송을 마치고 나면 컨서베이터가 납품 기한을 맞추기 위해 밤을 새워서 복원 처리를 한다.(나는 그동안 작가 스튜디오에 죄송하다고 빌고 보험사와도 협의를 한다. 보통 미술작품 보험을 담당하는 담당자는 별도로 있어서, 보험사에서 담당자를 지정해준다.) 전시 오픈 전에 작품이 전시장까지 잘 들어오면 완료가 된 것이다.


KakaoTalk_20251018_220342571_01.jpg 디테일 컷. 그냥 봤을 땐 까만 페인트 도장 같지만, 이렇게 미세하게 반짝거리는 재료로 겉면 도장이 되어있어서 곧바로 복원처리를 하지 않으면 한눈에 보아도 눈에 띄는 손상이었다.


이렇게 우당탕탕 3전시장까지 디스플레이가 완료되었다. 쓰고보니 또 길어져서 다음편에서 마지막화를 이어 연재하기로 한다. 이 전시가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것은, 정말 많은 트러블과 정말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오픈을 잘 했고 지금까지도 작가들, 스튜디오 매니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라는 것이 예상대로 스무스하게 흘러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앞서 쓴 것처럼 큐레이터는 작품과 전시만 다루는 게 아니라 많은 업체와 작가들 같은 이해관계자들과의 의사소통을 리딩하는 사람이다. 이 과정에서는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생긴다. 이 전시의 경우는 특수하게 그 정도가 좀 심한 편이었다. 당시에는 모든 과정에 너무 지쳐있었지만 지나고나서 하나 하나 떠올리며 기록해보자니 미화돼서 재미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그래도 다시는 미술계로 안 돌아가)... 전시는 끝나고 작품은 철거된다. 그래도 내 곁에는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이 남는다. 그 사실은 언제나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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