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지 않을 낭만, 따를 수(隨)의 수행(2)

망설임 없이 함께 ‘하기’―박영숙의 사진작업

by 까나리

박영숙(1941~2025)은 작품 속에서 호명된 여성으로 살아가기를 거부하고, 직접 무언가를 수행함으로써 고정된 주체성에서의 강력한 탈주를 시도한다. 1세대 여성주의 사진가인 그의 작업은 분열된 정체성과 이를 하나로 묶는 수행성을 잘 보여주는 다른 예시다. 그의 이런 시도는 ‘되기’보다는 ‘하기’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미 가지고 태어난 것,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그로 인한 재생산과 엄마 되기, 돌봄의 주체되기 같은 일은 보편적인 존재론에 가깝다. 반면 ‘하기’는 직접 어떤 사건 속으로 들어가 참여하고 관계자들과 얽히면서 그 체험을 강조한다. 이처럼 ‘한다’는 주체의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는 단어일 뿐만 아니라, 어떤 역할이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행성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미친년 하기, 마녀 하기, 여신 하기... 박영숙의 작업은 숱한 ‘하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박영숙의 여성 해방주의적 작업은 <마녀>(1988)에서 시작되었는데, 그는 이 작품을 김혜순 시인의 시 <마녀 화형식>을 읽고 마녀로 불리며 희생된 여성들을 위로하고자 만들었다고 했다. 김혜순 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남자 평론가들이 늘 나를 ‘마녀’ 계열로 분류하는데, 조금만 실험적이면 초현실로 규정하고 본다. … 나를 포함해 한국의 숱한 여성 시인들은 ‘유령’의 목소리로 시를 쓴다고 볼 수 있다”고 언급한 적 있다.(3) 1979년 전두환 계엄 때 출판사에 다니던 김혜순은 교정보던 책의 검열 이후 형사에게 뺨을 맞고 <마녀 화형식>을 썼고, 대학 졸업 후 잡지사에 사진기사로 다니던 박영숙은 항상 웃고 있는 여성사진을 표지로 내미는 선배에게 반발했다가 “저 사람은 아이 둘을 키우는 가장이니 네가 그만둬야 하지 않겠냐”는 말과 함께 직장에서 잘렸다. 김혜순은 타의적으로 마녀가 되기보다 형체 없는 유령 ‘하기’를, 박영숙은 기꺼이 마녀 ‘하기’를 선택한 셈이다. 이처럼 <마녀> 이후 박영숙의 작업은 계속해서 파편화된 정체성을 수동적으로 무언가가 된 것으로 보기보다 주체적인 ‘하기’로 끌어들인다.


박영숙의 ‘하기’가 폭발적으로 드러난 가장 잘 알려진 작업이 <미친년 프로젝트>다. 거대한 이데올로기 앞에서 소수자의 목소리는 항상 미끄러진다. 부당한 것에 맞서 목소리를 낼 때, 억압에 저항할 때, 스스로의 욕망을 기꺼이 드러낼 때 누구든 쉽게 ‘미친년’이 된다. 더하여 ‘미친년’이라는 단어에는 규범에서 벗어난 사람에 대한 두려움도 일부 담겨있다. 그는 1990년대부터 함께 작업해 온 윤석남, 이혜경 같은 여성주의 동료들을 사진의 피사체로 삼았다. 단순히 수동적인 피사체로 삼은 것이 아니다. 5·18 민주화 운동 때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떠올리며 ‘아들이 어디에 있을까, 살아는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초점 없는 눈으로 고등어를 손질하다 말고 허공을 응시하는 사람, 화초에 물을 주다 말고 정신을 놓은 사람, 자신의 아기처럼 베개를 끌어안고 있는 사람, 폭식증을 앓고 있는 사람... 이 모든 미친년들을 ‘하기’ 위해 수없이 사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과 토론하고 장면에 대한 해석을 엮었다.


‘하는’ 과정을 통해서 행위자는 서로에게 서로를 조금씩 내어주고, 그 세상 속에서 삶이 변용된다. 주체와 타자, 이 고정된 정체성이 해체되는 곳에서는 새로운 가능성이 피어오른다. 이런 박영숙의 사진은 단순한 묘사와 재현을 넘어 미친년 ‘한다’에 가깝다. 육아와 집안일로 집에 갇힌 몸, 화폐 속의 주인공이 된 몸, 꽃밭에 드러누운 몸.. 모든 미친년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나아가 기꺼이 그 상황 속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박영숙은 실제로도 삶 속에서 다양한 현실적 행보를 보였다. 여성미술연구회 회원, 여성주의 잡지 『if』의 발행, 여성사진작가협회의 창립에 이어 그는 2007년 사진 전문 갤러리인 ‘트렁크 갤러리’를 직접 열고 관장으로 재직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새하얗게 칠해진 정방형의 미술관에 작품이 들어오는 순간, 작품의 맥락은 잘려나간다. 사람들이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공공성을 부여했으나 결국은 미술관도 하나의 권력 기관이기 때문이다. 작품을 올리고 글을 쓰고 주제를 선택하는 모든 순간에는 미술관을 둘러싼 내외부적 권력이 작동한다. 그래서 이 모든 일들에는 신중한 의견들이 더해지고, 그동안에 작품이 가지고 있던 꽉 찼던 맥락의 일부분은 소거된다. 화이트 큐브가 비판 받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전시장 밖으로 뛰쳐나간 이유도 여기에 닿아있다. 그가 사진작가 육성을 위해 상업갤러리를 직접 연 것도 이런 줄기 속에 있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이 대다수였던 때에 다양한 사진가들이 나타나기를, 또 그에 걸맞는 다채로운 해석이 나올 수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박영숙 삶의 행보는 한 인간 안에 존재하는 복수성을, 나아가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 속에도 내재된 복수성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 복수성은 각기 다른 정체성을 반복적으로 가지면서 생기는 불연속적인 수행성으로 이어진다. 수행성을 가지는 주체는 ‘된 것’의 정체성에 머물지 않고, ‘되는 중인 것’으로 변환하면서 끊임없이 이행 상태에 놓인다.


한편, 물체가 고정된 정체성을 넘어 끊임없이 전환 중이라는 인식은 다른 존재, 즉 비인간 존재와의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 박영숙의 근작인 <그림자의 눈물>(2019)은 그동안 여성의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웠던 작품들과는 다르게 자연만을 찍은 작품이다. 그는 2017년 김혜순 시인과 함께 곶자왈을 방문해 이 곳을 찍어야겠다고 말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4) 가시덤불 숲이라는 뜻의 제주도 곶자왈에 작가가 모아왔던 결혼식 드레스, 바늘, 립스틱 같은 소품들을 배치해 찍었다. 여성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각인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이미지를 중심에 놓았던 것과는 다르게, 화산활동이 여전히 진행 중인 바위 위에 자라난 구불구불한 가시덤불과 나뭇가지 속에 오브제가 스며든다. 박영숙은 이를 두고 ‘곶자왈에 살았던 마녀의 흔적’이라고 했다.


그림자의눈물6.PNG 박영숙, <그림자의 눈물 6>, C-print, 180x240cm, 2019. ⓒPark Youngsook and Arario Gallery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고 버려져 일견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땅에 놓인 마녀의 오브제들을 상상해본다. 인간의 흔적과 자연이 교차하고 스며드는 장소에서, 마녀는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다른 비인간 물질과 접촉하며 재구성된다. 오랫동안 혼자로 지낼 수밖에 없었던 존재, 외로움과 고독이 함께 하는 인식의 대상이었던 마녀에게도 비로소 친구가 생긴다. 그렇게 새로운 관계가 생겨나고, 관계 속에서 인간과 비인간은 계속해서 서로에게로 스며든다. 박영숙에게 <그림자의 눈물>은 마침내 인간 종, 마녀라고 불리던 존재에서 벗어나 인간과 비인간의 존재를 이어붙이는 실천적인 ‘하기’의 장이다. 나아가서는 타자의 몸으로 침투하며 얽히고 관계 맺을 수밖에 없는 관계적 주체에 대한 자각을 시각언어로 구현한 수행적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3) 조선일보 김혜순 인터뷰, <마녀라니요, 차라리 우리는 유령입니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16/2017081600124.html

(4) 디자인프레스 박영숙 인터뷰, <사진가 박영숙이 더이상 여성을 촬영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https://m.blog.naver.com/designpress2016/221995256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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