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많이 하는 게 좋다는 말은 다 개 뻥

by 까나리

오늘은 그동안 아무한테도 못해본, 재수없어 보일까봐 함부로 이야기 할 수 없었던, 내 속에 있었던 취약함과 피해의식에 대해서 그냥 여기다가 털어놔볼까 한다. 써보면 나도 달라질 수 있을까. 내 이야기 너무 많이 하고 싶지 않은데, 그것을 줄곧 피해왔는데, 자꾸자꾸 털어놓고 싶어진다. 친구들 생각은 어떠냐고 물어보고 싶어진다. 사실 글을 원래는 못 쓸 것 같았는데 그래도 정리되지 않은 거라도 써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다. 이런 식의 정돈되지 않은 글은 한 번도 시도해본 적이 없다. 이건 이것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연애는 많이 해보는 게 좋다고들 한다. 이거는 다 개 뻥이다. 아니 개 뻥은 아니고, 사람마다 많이 다른 것 같다. 적어도 나는 이 말을 믿고 20대 중후반 무렵부터 짧은 연애를 지나치게 많이 했고 그 과정에서 자아가 조금씩 왜곡되었기 때문에, 차라리 연애를 많이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나는 좀처럼 후회를 하지 않는 성격인데도 그 때 허비했던 시간이 아깝다. 그 시간에 건강한 걸 좀 더 많이 먹고, 책을 좀 더 많이 읽고, 좋아하는 운동을 하나 더 찾았으면 어땠을까. 근데 그 때는 몰랐다. 시발 걍, 이런 게 인생이다.


하튼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최근이다. 생각해보면 너무 많은 사람과 연애를 하고 그것이 끝나는 과정에서 나에 대한 상대방의 비난을 듣고.. 그러면 나는 정말 내가 문제인가? 하고 생각해보는 과정에서 자아정체성의 많은 부분이 흔들렸던 것 같다. 어떤 관계를 맺고 끊는 과정에서 반드시 뭔가를 학습해야 한다는 나의 강박적인 성향도 한 몫을 했겠다만. 예를 들어, 누군가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너를 보고 있기 너무 불안해”라는 말을 들었다 치자. 그러면 나는 자꾸 자꾸 그 말을 곱씹으면서 ‘나는 누군가를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인가?’, ‘어떻게 해야 상대방이 불안하지 않게 느낄 수 있지?’ 하면서 계속 그 틀 안에 나를 가둔다. 남한테 불안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셀프 가스라이팅인 셈이다.(그리고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남성들은 상황이 자기들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남 탓을 하고 빠져나가는 것에 굉장히 익숙하다.) 그 과정에서 이상하게도 원래의 내 모습은 잃어버리고 어딘가가 조금 비틀린다.


그 다음 예시로, “너는 감정기복이 너무 심해”라는 말을 들었다 치자. 그러면 연인이니까 솔직하게 표현했던 나의 감정들을 그 다음 번에는 숨기기에 급급해진다. 그렇게 바쁘게 숨겼던 감정들은 점토 같은 걸 꾹꾹 밀어넣은 다음에 어떻게든 밀봉해놨던 지퍼락 봉지마냥, 어느 순간이 되면 못견디고 삐져나온다. 차이라면 여기서 삐져나온 거는 이제 더이상 점토의 형태는 아니고 갑자기 화산에서 뿜어나온 용암 같다고 해야하나. 그러면 나는 나를 또 미워하기 시작한다. 감정기복이 심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또 왜 그랬지. 이래서 사람들이 나를 질려하나. 그 다음 연애에서도 이런 식으로 누군가가 나를 떠나갈까. 이쯤에서 다들 눈치 채셨나요? 예시라고 말했지만 다 실제 제 얘기입니다. 이렇게 써놓으니까 마치 간단하게 <개소리는 무시하자>, <생긴대로 살자>라는 말로 요약이 가능할 것 같은데 이것이 20대 중후반부터 서른 초반 즈음에는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애초에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겠는데 무슨. 생긴대로 사는 것도 좋고 다 좋은데 그래서 내가 어떻게 생겼는데요.


돌이켜보면 좀 더 어렸을 때 나는 남성에게 인기라는 게 항상 많았기 때문에(정확히 이 부분을 사람들한테 오해 살까봐 말을 할 수가 없다) 오히려 낡고 나이먹은 지금 편안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인기가 많은 게 좋은 것이냐? 이것은 그냥 남성들이 나를 성적으로 적당한 먹잇감으로 보았다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나도 그게 권력인 줄 알았고. 잠깐 인기가 사전적으로 뭔 뜻이냐 궁금해서 찾아보니 ‘어떤 대상에 쏠리는 대중의 높은 관심이나 좋아하는 기운’이란다. ‘좋아하는 기운’이라고 하니 새삼 생각난건데, 직업적 특성이기도 하고 성격상 관찰력이 높고 상대방이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를 금방 파악하는 덕분(?)에 남자들이 나에게 호감이 있는지를 나중에는 10분 정도만 봐도 금방 판별할 정도가 됐다. 그리고 언제부턴가는 어차피 남자들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건 섹스를 통한 욕구충족 말고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A와 헤어지고 그 이후 그들과는 진지한 대화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잘생기고 고추 큰 사람”만 원한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그 후에는 나에게 호감을 보이는 사람한테는 적당히 맞장구 쳐주고 몇 번 섹스를 하고 또 헤어지기를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나도 상처 받았다.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남자를 계속 만났는지 지금은 영 모르겠다. 아니 모르는 것 맞나? 그냥 사람이 만지고 싶고 하루가 끝나면 수다가 떨고 싶고 또 가끔은 퇴근하고 동네에서 만나서 맥주 마실 사람이 필요하고 그랬던 것 같다. 이 모든 것들을 <나를 사랑하세요!> 같은 소리로 퉁치는 것도 싫었다. 이거랑 그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근데 ‘지금은 영 모르겠다’는 소리도, 지금은 나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아껴주는 애인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거다. 나를 바꾸려 들지 않고, 가만히 관찰하고, 거기에 어떤 말도 얹지 않고, 내가 필요로 할 때만 말해주고 그런 사람. 내가 “야, 나는 고 나서 구야.”라고 하면서(진짜 쎈 척 쩔었다.. 개창피하다) 집에 들여다가 샤워하고 얌전하게 청바지까지 다시 입고 온 애를 벗겼는데 “누나 저는 자기 전에 만남 추구에요… 그러니까 이거 전에 사귄걸로 해야돼요..”라고 했던 애. 내가 좋다고 느끼는 조건을 쓰긴 썼는데 이건 그냥 나랑 잘 맞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다른 사람과도 잘 맞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냥, 별 생각 없이, 딱히 재고 따지는 것 없이 사랑을 받아보게 되니까 그렇게까지 애 쓸 필요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발 이거 나를 사랑하는 거랑 상관 없는 거 맞잖아요. 누가 나를 안 재고 안 따지고 사랑해줘야 가능한 거 맞네. 쓰고보니 배부른 소리로 귀결이 됐는데 다음 번엔 내 속에 있는 피해의식(바꿔말하면 선민의식)으로 초점을 바꿔서 써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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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