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성을 압도적으로 넘어선 마케팅적 묘책
할부는 인간이 고안해 낸 창의적이면서도 잔인한 지불 방법 같다. 이 역시도 인간의 심리를 지독하게 잘 이용하는 마케팅적 사고의 산물 같다.
빌딩, 집 등과 같은 큰 금액의 무언가를 산다고 할 때 할부는 분명히 필요하다. 할부가 필요한 상황 혹은 레버리지나 세금 등을 잘 알고 활용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할부 거래는 그러한 필요성과 이유를 떠나 어떻게든 판매하기 위한 하나의 마케팅적 묘책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할부는 현재 가질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을 탐하게 만든다. 당장 가질 수 있기에 엄청난 흥분감과 도파민이 분비되며 미래의 어려움은 아주 작고 빠르게 스쳐갈 뿐이다. 눈 앞에 내가 원하고 욕망하는 엄청난 것이 있기에, 강한 시각적 자극이 실제로 직면하게 될 미래를 가려버린다. 또, 옆에서는 계산기를 두드리며 해당 금액이면 충분히 지불 가능할 것이라고 희망적인 미래를 슬쩍 보여준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그것을 얻게 된다.
한동안 우리는 충분히 지불 가능한 수준의 합리적이고 만족스러운 소비라 생각하며 그것이 주는 만족감을 황홀하게 듬뿍 느낀다. 하지만 적응의 동물인 우리는 이내 곧 자극에 익숙해지며, 만족감은 시들시들해진다. 반대로 매 월 부과되는 청구서의 부담은 점점 커진다. 우리는 청구서에 묶여버린 채, 다른 것들을 포기하게 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다른 도전을 할 수 없게 된다. 또한, 미래를 위해 자산 증식에 필요한 저축과 투자는 곧 청구서를 지불하는 데 사용되며 미래는 점점 더 어두워진다. 우리는 결국 무한한 기쁨을 줄 것만 같았던 우리의 소중한 그것을, 눈물을 머금으며 예상보다 훨씬 낮은 금액에 판매하게 된다.
외제차의 경우, 시즌이 있다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왜 인지는 모르겠으나 특정 시기에 신차가 마구 팔리는 시즌이 있다고 하며, 이내 곧 중고차 물량이 확 풀린다고 한다. 할부의 무거운 짐을 버티지 못해서 팔게되는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할부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을 감당 가능해 보이도록, 미래의 리스크를 훨씬 낮게 평가하게 하며 구매를 부추긴다. 그리고 차의 할부가 5년, 10년까지도 나왔다고 한다.
누군가는 이에 대해 카푸어라고 비난하고 조롱하겠지만, 이왕이면 좋은 차를 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또한, 우리 인간은 매우매우 불완전하고 비이성적이다. 어찌 우리가 합리적으로만 행동하고 소비할 수 있을까? 사실은, 이러한 충동 구매를 할 사람들을 더 부추겨서 구매하도록 만드는 지극히 잔인한 ‘할부’ 방법이 비난받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떻게 해서든 소비를 부추기며, 뒤에는 목줄을 들고 앞에서는 웃으며 다가가는 꼴이랄까나.
결국 모든 부담, 비난, 책임은 구매자에게 돌아간다. 결국 결정한 것은 당신의 선택이라고, 누가 칼을 들고 협박했냐고, 허영심에 취해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 아니냐고, 어리석은 결정인 것을 몰랐냐고 등등 비난을 받는다. 매 월 찾아오는 청구서는 덤이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교묘하게 모든 책임으로부터 벗어나면서도 가능성을 부여한다는 이러한 ‘할부’라는 방식이 미소를 짓고 있다. 그리고 ‘사람’, ‘한 사람의 인생’보다는 ‘판매 실적’, ‘매출’을 중요시하는 이 사회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판매한다. 그 이후의 삶이 고달프건 ‘알 바 아닌데~’하며 말이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불완전하고 비이성적이며, 때로는 잘못된 결정을 한다. 특히, 미래의 리스크에 대해서는 잘 판단하지 못하며 현재의 기쁨 등을 더 우선시한다. 무언가의 잘못도 아니며 단지 인간이기에 그렇다. 그런만큼 우리의 이러한 면은 서로가 보듬어주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것을 이용하여 어떻게 해서든 팔고 한 사람을 고달프게 하며 나몰라라 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위협을 인지시키고 충동적인 결정이 아니라 좀 더 현명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말이다. 물론, 누군가는 충분히 여력이 되어 할부를 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없을 수 있고, 누군가는 좀 더 이성적으로 잘 생각하며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각기 다른 특장점을 갖고 태어난만큼 모두 다르다.
결론적으로 나는 할부가 정말 감당 가능한 수준의 소비를 이끌어내도록, 정말 필요한 지불 방법으로만 잘 작동하도록 무언가의 장치 혹은 경각심을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할부의 위험성과 잔인함을 충분히 잘 파악하기 어렵기에 말이다.
제도적으로 금액에 따른 할부 기간을 더 보수적으로 한정한다거나, 수입/자산/부채에 따라 할부 가능한 액수를 보수적으로 정한다거나 함으로써 말이다. 혹은 미래에 대해, 기회비용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무언가의 가이드, 콘텐츠 등을 통해서라도 위험을 인지하게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현대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게 생활할 수 있지만, 할부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궁핍하고 어렵게 생활하게 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