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의 파편 Jul 31. 2024

다양성에 대한 가짜 존중 - 2. 양면성, 그리고 회고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빛과 어둠, 주입된 사고

https://brunch.co.kr/@kkang9413/15다양성에 대한 가짜 존중 - 1. 정답이라는 착각

다양성에 대한 가짜 존중 - 1. 정답이라는 착각



이어서 말하자면 나는 다양성을 중요시하고 존중하려 했으나 어느 정도의 정답은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당연히 어떤 때에는, 이러한 것이 도움이 되고 정답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물론 대다수가 혹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현대 사회에서 유리한 특성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무조건적인 정답은 절대 아니다.

긍정과 부정으로 예를 들면, 만약 현대 사회가 지금처럼 안전하지 않고 굉장히 위험했더라면, 부정적인 것이 조심성을 키우고 여러 행동들을 억제하며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특성은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다고 여겨졌을 것이다. 서점에 가면 '너무 긍정적으로만 보는 나, 100일 부정 습관 만들기' 등과 같은 서적들이 베스트 셀러로 있을 수도 있고 말이다.



이처럼 어떤 특성이건 간에 상대적이며 상황에 따라 유리하기도 하고 불리하기도 할 뿐이다. 항상 옳고 유리한 절대적인 정답은 없다. 하지만 이 점을 간과한 채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믿어버리면, 은연히 상대를 존중하지 않게 만들게된다. TMI로 이전 연애를 돌아보면 나 역시도 상대가, 좀 더 긍정적이었으면 좋겠고, 감정기복이 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표정, 표현, 반응 등 어떤 방식으로든 표출이 되었던 것 같다. 돌아보면 그 때는 긍정의 기운과 감정 컨트롤에 꽤나 많이 신경을 썼던 것 같다.


그리고 가끔은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돕기 위해, 도움을 주기 위해, 뭔가 액션을 취하기도 했던 것 같다. 물론 의도 자체는 상대가 조금이라도 덜 고통받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그러한 의도가 좋게만 전달되겠는가. 나의 미성숙한 전달과 소통방식은 분명 상대로 하여금, 존중받지 못한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아무리 잘 전달하더라도, 이것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봐주며 존중하기 보다는 ‘부정적인 것은 안좋아. 근데 나는 부정적이야. 나는 이 점을 고쳐야 해. 나는 잘못되었어’ 라는 생각이 들게끔 만드는 것 같다. 또한, 실제로 긍정적으로 바뀌고 싶다고 하더라도, 갑자기 하루 아침에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점을 잊은 채, 은연히 그거 그렇게 어렵지 않은 건데? 이렇게 하면 되는데? 하는 뉘앙스를 풍길 때도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이전 글에서 말한 감정기복, 감정적인 것에 대해 말해보자면, 나는 이전 상대로부터 행복에 전염이 되기도 하고 더 증폭된 행복을 만끽하기도 했다. 하지만, 밝은 부분만을 품고 어두운 부분, 단점들은 품어주지 못한 것 같다. 좀 더 성숙했더라면, 어두운 부분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여유를 갖고 너그럽게, 충분히 그것들을 품고 배려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누구든, 어떤 특성이든 간에 빛과 어둠이 있지만 미성숙한 나는 그러한 양면성을 보지 못한 채, 가끔은 빛은 은연히 느끼면서 두드러지는 어둠만을 보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는 연애 뿐만 아니라 다른 관계들에서도 분명히 은연히 발현되었을 것 같다.

우리가 양면성을 지닌 여러 특성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좀 더 너그럽게 바라본다면, 분명히 좋은 것은 증폭시키고 좋지 않은 것은 현명히 억제시킬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대다수가 안좋다고 생각하는 특질들에도 분명히 빛이 있고, 좋다고 생각하는 특질들에도 분명히 어둠이 있다. 나는 나만의 생각과 판단을 잃은 채 타인의 기준으로 잣대를 삼아버렸던 것 같다.


우리는 제각기 다르고,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단지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좀 더 좋고 유리할 수 있는 것들로, 옳고 그름은 없다. 단지 다른 특성다양성 그 자체이다.

또, 양면성을 떠나 단지 우리는 모두 다 다르다. 누군가는 좀 더 똑똑할 수 있고, 누군가는 좀 더 끈기가 있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또 키가 클 수도, 누군가는 미적 감각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선택한 것도 아니고, 인생에 있어 이것들만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아주 우수한 유전자와 특질들을 물려받아 다 뛰어날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조금은 부족하다고 여겨질 수 있다.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해서 우리가 존중받지 못해야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도 있다. 우리는 아주 취약하고 언제든 사라지며 찰나를 살아가는 동등한 인간일 뿐이다. 여러 특질들은 단지 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뿐. 만약, 운이 좋다면 감사해하며 타인들을 더 잘 헤아리며 존중하고, 그러한 행운을 나누는 것이 역할이다.


되돌아보면 자기계발서와 여러 성공 관련 콘텐츠들을 계속해서 찾아보며 그것에 나의 뇌와 마음이 절여진 것 같다. 뛰어난 사람들의 여러 인싸이트와 혜안이 들어있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기에 진리인 양 그대로 흡수해버린 것 같다. 하지만 일상은 모든 순간이 성공과 관련이 있지는 않다. 때로는 아주 비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때로는 사랑에 빠지며 무한한 비이성의 세계에 들어가기도 한다. 모든 것을 성공과 성장 등으로만 볼 수 없고, 그러한 삶은 일단 내가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러 가지 것들을 읽고 나의 것을 펼치고 확립하지 않았기에 책만 읽은 바보가 되어 행동하고 판단했던 것 같다. 좋은 지 안좋은 지, 정말 합리적인 지, 적용할만한 지, 어떻게 적용할 지 등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요약했던 것 같다. 책의 내용과 책이 말하고자 하는 부분에 한정해서만 얘기했을 뿐, 그것을 세상 밖으로 더 넓히며 이런 저런 질문들은 하지 않았다. 책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가 분명히 있었다. 나만의 생각과 철학, 내가 뽑아낸 더 큰 인싸이트, 경계와 한계, 양면성, 인생, 사람 등으로 더 확장했다면 좋을텐데 말이다. 책의 내용을 더 뛰어넘는 더 넓은 범위를 포괄하는 나만의 것들이 훨씬 더 만들어질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결국 나의 인생은 나의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앞으로는 책을 읽더라도 책과 저자의 권위에 눌리지 않고 그것을 초월한 채 나만의 것들을 적극적으로 확립해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