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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찾다 Apr 16. 2021

[헤비컨슈머] 착한 예능, 착함을 강요받을 필요는 없다

모순된 욕망, 혹은 논리적인 본능

 두 달 전 즈음, 한창 클럽하우스를 들었다. (지금은 잘 듣지 않는다. 역시 들어주기가 힘듦을 느꼈다. 어쨌든.) MBC PD님이 진행하셨던 한 방에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을 최애프로그램으로 꼽았다. 사실, MBC <무한도전>의 종영 이후로, 자신의 최애 프로그램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잘 보지 못했는데, 그래서 더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또 놀라왔던 것은 그들이 해당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이유가 모두 같기 때문이었다. '소소하고 선한 재미', 클럽하우스를 듣는 약 30분 동안, <유퀴즈>의 이런 매력 어필을 들어야 했다. 유퀴즈 역시 코로나 19의 영향을 피해 가지 못하면서 전환점을 맞이해 포맷을 약간 바꾸게 되었는데, 그들은 무엇이 더 호인지 나뉠 뿐, 좋아하는 의견은 같았다. 공감하는 바다. 나 역시 끊임없이 <유퀴즈> 클립을 유튜브에서 찾아본다. 요리할 때, 밥 먹을 때, 이렇게 무난하게 날 웃게 해 줄 프로그램은 흔치 않다.   


 하지만, 한 편으로 들으면서 느꼈던 것은, 언젠가부터 우리는 이러한 예능 앞에 '착한', '선한'이라는 표현을 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극적인 예능은 그 자체로 나쁜 예능이 될 확률 역시 높아졌다.


 우리나라에서 소소한 힐링을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했던 때를 뇌피셜로, 추억으로 되돌아본다면(헤비 컨슈머인 내 기준이다^^), 아무래도 나영석 PD의 tvN <삼시세끼>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때 이후로 귀농을 했다가 후회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뉴스가 들릴만큼, 당시에 해당 콘텐츠는 심플하면서도 센세이셔널했다. 단순히 한 장소에서 세 명의 배우가 화장기 없이, 번지르르한 옷 따위 없이 상추를 따고, 염소를 돌보고, 하루 종일 무엇을 먹을지 고민한다. 물론, 이전부터 해외에서는 다큐 같은 리얼리티한 콘텐츠가 인기를 끌었다고 하지만,  한국 예능에서는 <삼시세끼>가 큰 변화로 가져왔다. 그리고, 그렇게 소소한 기쁨을 주는 힐링 예능의 흐름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나영석 PD의 최근 작인 <윤스 테이>부터, 본업을 벗어나 동네 슈퍼를 운영하고, 이웃들과 정을 나누는데 충실한 두 배우의 모습을 담은 유호진 PD <어쩌다 사장>, 모두 아직 이런 흐름에 있는 거라 생각한다.


삼시세끼부터, 윤스테이까지, 많은 프로그램을 성공시킨 나영석 PD의 힘이다. 그리고 각 프로그램들은 어느 정도 비슷한 성향을 띤다.


'조인성'으로 유입했던 시청자들은, 프로그램 성격상 좀 더 잘 드러나는 '차태현'의 친밀함에 반한다. '차태현'이 가지고 있는 소소한 멋은 그 어떤 배우도 이길 수가 없을 것 같다


 모두가 느끼겠지만, 소소한 재미를 주는 예능이 유행하면서, 가끔은 어떠한 프로그램이 예능인지 교양인지 구분 지을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났다. 장르의 경계가 흐려진 것이다. 사실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된 현상이기도 했다. 한창 관찰 예능이 유행하기 시작할 때 즈음, 나중에는 모든 예능이 다큐멘터리처럼 현실적으로 그리고 느보다 느린 템포로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해당 프로그램이 예능인지 교양인지 구분해보자.

1) JTBC <차이나는 클라스>

2) tvN <알쓸신잡>

3) MBC <선을 넘는 녀석들>

4)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5) MBC <돈스파이크의 먹다 보면>

6) SBS <짝>


2,3,4는 예능, 1,5,6은 시사교양이다.

물론 내가 편성 PD도 아니고, 전문직 제작자도 아니지만, 참으로 기준이 애매하다(?). 기준이 없다(?) 싶다. 이런 경향으로 출연자들 역시 다양해졌다. 개그맨이나 가수들 역시 많은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선미네 비디오가게>처럼. 그리고 배우들이 예능에 출연한다. tvN <여름방학>, <윤스테이>, <어쩌다 사장>처럼. 앞으로도, 이러한 착한(?) 예능의 힘은 계속될 것이라 보인다.


 자, 이제 나쁜(?) 예능 이야기를 해보자. 하지만, 나는 착한 예능도 좋아하지만, 나쁜 예능 역시 좋아한다.(프로듀스 101 같은 사태를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모순적 이게도, 한때 열심히 활동한 국민 프로듀서로서 마음 찢어진다.)

 어쨌든, 착한 예능이 있으면, 그 반대의 성격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흐름 역시 리얼과 관찰 일상이 유행하면서 벌어진 현상이라고 나는 분석한다. 많은 프로그램들은 어쨌든 그래도 각자의 콘셉트 등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리얼함과 일상을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사소한 언어나 사소한 행동까지도 그 연예인 성격의 전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리얼리티가 너무 강조되다 보니, TV  속 연예인의 모습이 그 사람의 일부가 아닌 그 사람 자체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예능이 더 이상, 마냥 예능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특정 연예인이 관찰 예능이나 토크쇼에서 말실수를 한 두 번 한 이후로, 계속 그 연예인은 그런 식으로 욕을 먹고 소비된다. 근데, 나는 가끔 이렇게 묻고 싶다. 우리도 살면서 술자리나 큰 자리에서 텐션 변화가 생기면 말실수를 하고 집에 와 후회하며 이불킥하다 잠든 적이 있지 않은가. 마냥 사소한 단어나 표정으로 해당 연예인을 욕할 수 없다. 또한, 방송 메커니즘상 '선한 예능'과 '선한 예능인'만 존재할 수는 없다. 결국 누군가는 희생하면서 방송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실 고백하건대, MBC <라디오스타>의 김구라를 좋아한다. (주위에 김구라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당당하게 밝히지 못했다. 물론 김구라씨가 실수할 때도 있지만, 가끔은 과도하게 욕을 먹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답은 없다. 점점 더 현실적으로 표현되는, 표현될 프로그램 안에서, 결국 이를 최종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은 시청자의 몫이며, 제작진 역시 점점 더 세세한 검수를 해야 한다.


 나는 나쁜(?) 예능과 함께, 드라마 이야기를 하고 싶다. 굳이 또 선과 악의 경계를 나눠보자. 선한 드라마라고 한다면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과 SBS <스토브리그>의 흥행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굳이 꼽자면, 악한 드라마(?)로는 JTBC <스카이캐슬> <부부의 세계>, SBS <펜트하우스>를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2010년대 초반, 한창 조롱받던 TV 막장 드라마들이 이제는 보다 메인으로 빛을 발하고 있다. 해당 드라마들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과 파급력은 대단하다.

 물론, 예전 막장 드라마와의 차별점이 있다. 모두 현실의 악을 담고, 예전보다도 자극적인 스토리를 영상적으로 과하게 표현하지만, 안정된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퀄리티를 높인다.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와 점을 찍고 습관까지 고쳐가며 전남편을 다시 유혹하는 작품에 낄낄대던 우리는, 이젠 그 작품을 집필한 작가를 '순옥킴', '갓순옥'이라 부르며 애정한다.

시즌3까지 제작될 예정이라는 펜트하우스는 최근 시즌2 12회차에서 시청률 29.2%를 기록했다.


 어떻게 보면, 점점 선함을 강요받는 예능과는 정반대의 행보다. 픽션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과몰입하여 해당 드라마를 보지만, 해당 사건이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범위에 있는 일이며, 내 근처에서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것을 안다.(물론 현실이 더 심하다는 말이 있지만, 당장 내 바로 주위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날 일은 없다. 한 0.01% 정도?) 자극적인 드라마가 지속적으로 높은 시청률을 얻는 것에는, 사람들이 아직 '자극적인 요소'에 대한 끌림을 버리지 못한 것임은 분명하다. (나 역시, 펜트하우스를 어느새 VOD로 챙겨보고 있다.) 심지어 <스토브리그>는 다른 방송국에서 제작이 보류되었던 극본이 SBS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들었는데, 이를 생각하면, 애초에 제작부에서도 러브스토리나 큰 자극적 요소 없는 착한 대본에 대한 경계심이 있었을 것이라 보인다. <스토브리그>가 어쨌든 성공한 것을 보면, 최근 드라마들도 예능처럼 크게 선한 드라마, 악한 드라마로 나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근데,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많은 미디어를 소비하면서, 나는 아직 배고프다. 가끔씩 예전의 악한 예능들이 그립다. 단순 일상 관찰 혹은 쿡방 같은 프로그램이 아닌, MBC <뜨거운 형제들>, Mnet <비틀즈 코드> 같은 어이없는 웃음을 주었던, 신박한 포맷의 프로그램들이 그립다. MBC <라디오스타>가 재미없어졌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물론 바뀌어야 했던 부분들도 있었지만, 많은 부분이, 선한 예능으로 성공했던 게 아니었던 해당 예능에까지 과도한 기준을 요구했던 수용자들의 몫도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봐야겠다. 가끔은 영화처럼, 드라마처럼, 예능의 몇몇 출연진들을 '악역'을 맡은 사람들로 봐주었으면 좋겠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착한 예능, 나쁜 예능이라고 단순히 말하기 보다, 착한 (역을 맡은) 예능, 나쁜 (역을 맡은) 예능이라고 하고 싶어지는 요즘이다.


<뜨거운 형제>들을 거실에서 혼자 보며 웃다, 소파에서 떨어졌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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