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회의록이나 쓰려고 컨설턴트가 된 게 아니에요."라는 말을 어느 젊은 컨설턴트가 했다고 들었다.
이 말이 회자된 이유는, 사오십대의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과거와 달라진 요즘 젊은 사람들의 소신발언에 여러 생각이 들어서일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인지를 하지 못하나, 각종 미팅을 할 때 회의록은 상당히 중요하다.
회의록은 오늘 이 자리에서 말로 언급된 논의가 명문화되면서 후속 작업을 수행할 때 판단 근거가 된다.
또한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공유 자료로 활용되면서 중요한 소통 수단이 된다.
많은 경우, 회의록은 그 팀의 막내가 쓴다. 막내 입장에서는 귀찮고 번거롭게 생각될지 몰라도 회의록을 쓴다는 것은 고도의 이해력과 논리력이 필요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갑론을박 던지는 말을 모두 이해해야 회의록으로 작성 가능하며, 이를 읽는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논리 정연하게 결론을 잘 유도해야 한다.
회의를 참여하는 사람들은 각 조직의 대표자들이기 때문에 이들이 하는 말은 나름의 노하우와 인사이트를 내포하므로, 회의록을 쓰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회의록을 쓰려고'라는 표현은 이 일의 가치를 스스로 낮게 평가하는 일이며, 이는 곧 자신의 가치를 낮춰버리는 것과 같다.
어떤 일을 할 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고상한 일과 하찮은 일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으나, 대부분 일은 그 사람이 스스로 가치를 높일 수도 낮출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해서'라는 표현은 진부할 수 있으니 '성심껏'이라는 말로 바꿔보려고 한다.
하찮아 보이는 일도 '성심껏'하면 '가치 있는 일'로 바뀐다.
고상해 보이는 일도 대충 하면 '하찮은 일'로 바뀐다.
회의록도 어떤 마음으로 쓰느냐에 따라 프로젝트의 가장 귀한 자산이 될 수 있다.
과거에 팀 리더를 할 때도 회의록은 내가 직접 썼었다. 내가 주최한 회의이기도 했고 많은 전문가가 참여하여 속사포같이 회의가 진행되다 보니, 다른 사람이 쓰면 녹음을 해서 다시 들으며 회의록을 쓸 판이었다. 손과 입과 사고가 비교적 빠른 편이어서 내가 회의 진행을 하더라도 다른 이 들이 발언할 때는 바로 워드에 기록을 하는 것이 더 빨랐다. 회의를 마치고 나면 대략 70~80%의 회의 내용이 작성이 되어 있어서 이를 다듬고 결론과 action item까지 뽑아 마무리했다.
회의록을 쓰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다시 회의 내용을 되짚으며 모호한 부분을 찾게 되는데 당사자를 찾아가 재 확인 과정에서 나의 지식도 축적되고 일도 명확해지는 점이었다.
그 당시 나의 회의록은 꽤나 인기가 좋았고, 고객 중 한 분은 그 회의를 참석하지 않았음에도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본 것' 같다고 했다.
회의록 관련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B 이사였다.
당시 고객사 아키텍트와 인프라 담당자들 간 워크숍이 이틀간 진행되었다. 참여자는 해당 분야 베테랑 들로 20여 명이다. 당시 컨설턴트로는 나와 B 이사 둘 밖에 없었는데, 해당 워크숍에 참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혹시 진행과정에서 도움을 줄 부분이 있다면 발언을 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참석했더니 고객사 내 미팅이므로 따로 회의록을 작성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워크숍이 시작된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나는 자리를 떴다. 브레인스토밍 형태의 워크숍인데다 거의 인프라 중심 미팅이라 내 전문분야와 거의 거리가 멀어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았고, 지나치게 내용이 깊었다. 게다가 해야 할 다른 일도 있어 B 이사만 참여하기로 했다.
이틀간 엄청난 양의 논의가 진행된 워크숍을 참여한 B 이사는 요청한 것도 아닌데 회의록을 정리했다. 워낙 내용이 방대하여 20여 페이지에 달했는데 그 정신없이 진행된 회의 내용을 토픽 별로 주요 쟁점을 정리한 다음, 30개 주요 과제를 뽑아 결론을 냈다.
회의 참석자들에게 송부하고 나니, 이를 본 고객사에서는 기함을 했다. 워낙 많은 이야기가 오갔기 때문에 참석자들도 차마 정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회의록에 정리된 내용은 보고서로 다시 만들어져 CIO보고로 올라가게 되었고, 이후 B 이사는 안면이 없던 고객분들까지도 호의를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