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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지 May 30. 2022

나의 저녁시간을 반납해도 억울하지 않았던 이유

IT에세이

"가이드 대로 작성하고 나면 팀별로 취합해서 보내 주세요"




프로젝트를 할 때 자료를 취합받을 때면, '오늘까지 정리하고 배포해야 내일 사람들이 일을 시작할 수 있을 텐데' 라며 늦은 밤 또는 새벽까지 무리해서 일을 할 때가 간혹 생긴다.


가장 대표적인 일이 '가이드와 템플릿을 만들어 배포할 때', '사람들이 작성해서 제출한 자료를 취합할 때'이다.


작업들 간 선후관계가 있을 경우, 먹이사슬처럼 물고 물려서 맨 마지막 작업을 맡은 사람들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선행작업이 지연되어 덩달아 착수 지연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인풋으로 받은 산출물의 품질이 낮다면 이를 활용하기 어려워 후속작업도 역시나 낮은 품질로 이어지게 된다.


이런 예는 프로젝트에서 비일비재하다.

거창하게 프로젝트 주요 산출물까지 논할 필요도 없이, 일반적으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경우가 '자료 취합'의 예이다.


얼마 전 프로젝트에서 어떤 자료를 받아 본 적이 있다. 누가 봐도 여러 사람이 작성한 자료를 그냥 merge만 했다.

전체 양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취합한 사람이 한 번만 훑어보면 받은 자료들이 성의가 없이 작성된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냥 기계적인 cut & paste 만 해서 한 파일로 만들고 그것을 관련팀들에게 공유를 했다.


대부분 사람들 입장에서는 '취합'은 단순하고 귀찮은 일로 여긴다. 자신이 작성한 문서도 아니니 품질에 대한 책임도 없다. 그래서 이런 일은 늘 발생한다.


사람들은 일을 할 때 '나의 업무 효율'을 먼저 생각한다.

이왕이면 적은 시간, 적은 양의 일을 하고 싶어 하며, 나와 상관없는 일을 굳이 떠맡아서 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특히 work & life balance를 강조하고, 저녁 있는 삶을 추구하는 분위기에서는 '내 일'만 깔끔하게 끝내고 바로 사무실을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으나,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저절로 '프로젝트의 효율'을 먼저 따지게 된다.

해야 할 일이 나만 하면 되는 독립적인 일이라면 당연히 나의 업무 효율에 따라 일정에 맞춰 일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혼자가 아니라 서로 엮고 엮이는 작업이다.

특히 나의 작업이 여기저기 영향을 크게 미칠수록 프로젝트 효율에 맞춰 나의 일정을 앞당긴다.


다시 취합의 예를 들어보자.

각자 작성한 자료를 오늘 취합을 한 다음, 이를 내일 배포하여 사람들이 다음 작업을 하는 계획으로 넘어갈 경우이다.


오늘까지 자료를 받게 될 경우 아무리 3시 마감을 외쳐도 많은 사람들이 퇴근시간에 맞춰 자료들을 준다. 그렇다고 일의 순서에 따라 나도 시간이 되었다고 퇴근한 후 다음날 출근하여 오전에 작업하게 되면, 이를 받아볼 사람들의 작업 착수 시간은 오후가 된다. 많은 사람들의 오전 반나절이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대신 오늘 내가 늦게까지 남아서 자료를 다 취합하고 정리한다면, 내일 사람들이 출근하자마자 후속 작업을 바로 시작할 수 있다. 나의 선택은 당연히 '다수의 작업의 효율'이다.

오늘 나의 저녁은 사라지겠으나, 전체 프로젝트는 정상으로 굴러간다.


프로젝트 내에서는 어디선가 구멍이 뚫리면 돌고 돌아 우리 모두의 재작업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결국 나에게도 피해가 돌아온다. 오히려 이때는 눈덩이처럼 커진 문제가 되어 더 수습하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건 희생도 뭐도 아니다.


이 단순해 보이는 취합 작업을 이왕이면 제대로 하려면, 내가 작성하지 않았어도 받은 모든 데이터를 일일이 검증해야 한다.

가이드대로 작성을 하였는지, 혹여 내용상 문제가 없는지, 누락은 없는지 다 확인하고 체크를 해야 한다.

일의 내용을 세세히 몰라도, 가이드를 숙지하고 사람들이 작성한 내용을 훑어보면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보인다.


이렇게 10분이면 될 단순노동이 몇 시간짜리 내용을 파고드는 일로 바뀌게 된다.

취합 자료에는 검토 결과 이상한 내용, 수정이 필요한 내용을 코멘트로 달아서 다시 작성자들에게 보낸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용상 문제가 될 요인은 대면으로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예상 못한 리스크를 추가 발견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일을 하다 보면, 비록 그날의 나의 저녁은 사라질지 몰라도 얻는 소득은 상당하다.

먼저 프로젝트 전체적인 이해도가 깊어지고 업무 숙련도가 올라간다.

티 안나 보이는 작업이나, 확인 과정에서는 나의 전문성을 띤 이야기를 하게 되니, 소통하게 되는 사람들에게 '신뢰와 인정'을 얻게 된다.

프로젝트를 할 때 컨설턴트가 사람들 상호 신뢰와 협조가 얻게 되면, 날개를 달고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감동은 사소한 데서 받는 법이다. 신뢰는 작은 수고스러움이 쌓여 생긴다. 

나의 전문성은 그 위에 살포시 올려놓으면 된다.


ps. 쓰고 보니, '하찮은 일'도 성심껏 하면 '가치 있는 일'로 바뀐다고 적었던 앞 포스트와도 통하는 듯하다.


컨설턴트의 마음가짐이라고 부제를 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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