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깡지 Jun 01. 2022

사람은 성선설, 산출물은 성악성에 근거하여 바라보기

IT에세이

IT컨설팅을 할 때,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사람 상대'하는 일일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숙제가 떨어져도, 일이 많아 야근을 해도, 그 일이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고 나의 성취감을 만족시켜주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다. 이 기간이 길어지면 체력이 떨어지고 예민해질 수 있지만 업종 특성상 늘 이래 왔고, 이를 또 견디는 사람이 IT컨설턴트로 남아 있다.


비록 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도, 프로젝트를 하나씩, 둘씩 하다 보면 점차 내성도 생기고 자신도 컨설턴트에 맞게 변모한다.


하지만 IT컨설턴트는 나 혼자 산출물 뚝딱 만들고 끝이 아니라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


고객과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헤아려야 하고, 부족한 면을 채워줘야 하고, 방향도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중압감이 크다.

끊임없이 '사람'과 대화하고, 관찰하고, 그 속에서 '맥'을 잘 짚어내야 하므로 항상 레이더를 켜 두고 살아야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상대를 배려해 주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해 줬다가는 전체 프로젝트 진행에 지장을 준다.

소위 말해서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지만, 때로는 이들의 아픔에 눈을 잠시 감고, 문제를 드러내고 공론화해야 할 일이 종종 생긴다.


이 과정에서 많은 IT컨설턴트들이 상처를 입는다.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해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공격'으로 받아들이게 되니 바로 반격이 들어오는데, 일단 머리수로도 상대가 안되고 공격성의 정도도 차이가 크다.


IT컨설턴트들은 태생이 원래 그러한지, 설득을 해야 하는 업무 특성 때문인지, 말을 조심스럽게 젠틀하게 한다.


프로젝트 전체 참여자 중 컨설턴트 비중은 5%도 채 되지 않는다. 어떤 방향성이나 문제를 제시하려고 하면 이를 따라야 하는 사람들은 수십, 수백 명이 될 수도 있다. 당연히 이들의 목소리와 불만은 입으로 거칠게 나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큰 상처를 몇 번 입거나, 마지막 자존심인 자신의 업무 능력까지 의심을 받는 경우가 생기면 업계를 떠나게 된다. 10년 후에도 이 일을 할 자신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PMO나 관리팀의 팀 리더의 역할을 맡는 사람 이외에는, IT컨설턴트 현직에서 오래 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비록 컨설팅 회사에 남아 있더라도, 컨설팅 회사 생리상 진급을 하게 되면 현직에서 일하기보다 영업, people manager의 역할을 겸하게 되니 '현직의 일'에서는 점차 손을 떼게 된다.


IT컨설턴트 첫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부터,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우리에게 일 시키는 사람'의 시선을 느끼게 되다 보니, 더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프로젝트는 하나의 '생태계'라고 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속에서 여러 동식물이 서로 조화롭게 균형을 맞추며 살아야 생태계가 유지된다. 사자의 수가 적다고 해서 사슴 떼를 보고 움찔하고 겁을 먹는다면 생태계를 파괴된다.

역할이 '쓴소리'담당이라면 쓴소리 해야 하고, '방향성 제시'라면 손가락으로 가야 할 방향을 가리켜야 한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내가 바로 보고 있는 건지 의심할 수도 있고 자신이 없을 수도 있다.

이럴 때는 끊임없이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물어봐야 한다. 그저 단편적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섣불리 말을 했다가는 '컨설턴트들이 뭘 알아' 소리만 듣는다.


나는 사람을 볼 때는 그들의 '선한 면'을 우선으로 본다.

무언가 이해 안 가는 행동이나 말을 할 때, 때로는 그것이 나의 마음에 상처가 되거나 나는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그 사람에게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내가 성인군자도 아니고 그들을 모두 포용하고 사는 건 아니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잘 맞는 사람으로 재 구분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일'로는 할 말을 소신 있게 하는 편이며, 겁이 없다. (없어도 아주 없다.) 감정은 쏙 빼고 이성으로 토론을 하기 때문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말의 기술'인데, 이건 아무리 다듬어도 부족하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할 때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 건, '사람' 그 자체이다.

밥을 함께 먹건, 차를 마시건, 회의 시작 전 농담을 하건, 우연히 가까운 자리에 있건,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눈다.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에서 진척이 늦어져서 문제가 심각할 때,

누구는 전체 진척이 OO% 지연입니다라고 하는 경우가 있고,

또 누구는 전체 진척이 OO% 지연인데, 이중 A팀의 Task가 전체 지연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한걸음 더 나아가 '그런데 A팀의 핵심인력이 부모님 상으로 일주일 이상 부재중이며, 초기 예상과 달리 현행 시스템의 복잡성이 커서 인력이 부족한 상태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일부러 일을 안 하고, 못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있다'라고만 하면 사람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분명히 시스템을 만들고, 코딩을 하는 프로젝트인데도, 문제를 파고들면 마지막엔 어김없이 '사람 문제'가 된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관심을 계속 가져야 하고, 이상하거나 궁금할 때는 발로 찾아가야 한다.

반면, 산출물은 성악설에 근거하여 본다.


사람의 마음도 의도가 선하더라도, 능력이나 태도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작성한 산출물(프로그램 소스 포함 모든 아웃풋)을 있는 그대로 믿었다가는 큰일 난다.


실수를 해도 용납이 되는 업종이 있는 가 하면, 단 하나의 오차도 없어야 하는 업종이 있다.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현실세계의 건물이나 다리를 건설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잘못 만들어 오픈하면 '사고'가 생긴다. 뉴스에 가끔 통신마비, 거래 불가능 등의 사고가 그 예이다.


물론 벽돌 하나 비뚜룸하게 쌓고, 어떤 방구석의 도배가 좀 주름진다고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틀어진 벽돌 따라 그 위에도 틀어진 채 벽돌이 쌓인다면, 주름진 도배의 원인이 그 속에 흐르는 배관의 문제라면, 부실공사로 이어진다. 하나하나 정해진 규격에 맞춰 똑바로 마무리해 나가도 예상 못한 변수가 툭툭 튀어나오는 게 '프로젝트'다.


앞서 생태계라고 비유했는데 갑자기 태풍이 불기도 하고, 가뭄이 오기도 하는 것처럼. 이럴 때 미리미리 준비를 해 가면서 진행을 해야 대응방안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산출물을 볼 때는,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을 찾아내는 데 집중한다.


신기한 점은 사람으로 접근하여 산출물을 보는 것과, 산출물을 먼저 보고 사람을 찾아가 보면 이 둘 사이에서 어김없이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문제가 되는 산출물을 발견하여, 해당 팀과 작성자를 탐문해 보면, 이들이 작성한 모든 산출물이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어딘가 책임을 회피하고 말을 잘 바꾸는 사람들의 산출물을 열어보면 어김없이 대충 작성해 두고 다 했다고 말한다.


<IT 보고서를 잘 만들고 싶다면>에서 보고서 1장을 위해 10장의 back data가 필요하다고 말했었는데, 이렇게 산출물들을 다 싹싹 분석하고 분석해서 사실을 기반으로 한 구체적 증거와, 그 원인을 사람에게서 다시 찾아 부연 설명을 하게 되면 어느 누구도 반박은 커녕, 고마워한다.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주변을 둘러보기 어렵다. 자기 눈앞에 주어진 일을 처리하기에도 바쁘다. 그럴 때 다른 관점으로 자신들의 문제점을 봐주되, 자신들의 처지를 이해해 주면 스스로 자생할 힘도 얻게 된다.


이 과정에서 또 하나의 팁은, '잘하는 사람', '잘 만든 산출물'을 발굴하여 널리 알리는 일이다.

이 분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 일을 넘어서서 나와 연관된 일까지 모두 챙기면서 성심껏 일하시는 성향으로 산출물만 봐도 티가 난다.


성인이 되고 나면 '칭찬'을 받을 일이 없다. 다른 칭찬 필요 없이 'Best practice'로 소개만 해도 이 분들의 자긍심은 올라간다. 아울러 이 분들의 산출물을 본 다른 사람들 중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이 정도 해야 하는구나'를 느끼시는 분들도 생긴다. 많은 경우 어느 수준까지 몰라서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귀찮아서 대충 하는 경우도 많지만 -.-*)


참 재미있다. IT컨설턴트로 산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인데, 세상을 이해해 가는 과정과 다를 바 없어서.

'관찰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나를 돌아보게' 해 준다.

책 속의 많은 내용이 프로젝트 안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어서 더 신기하다.

프로젝트는 생태계이기고 하고, 하나의 사회, 하나의 국가이기도 한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개발방법론은 아무 잘못이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