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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지 Jun 06. 2022

10억 벌기 두 번째로 어려운 방법

IT에세이

프로젝트 참여한 지 3주 차가 되었다.


토요일 새벽에 노트북에 앉아 일하고 있으니 션이 놀다가 집에 들어와서 놀란다. 아직도 일하고 있냐고..

갑자기 그님이 오셨는지 일에 필에 꽂혀 진도를 좀 빼고 싶어서 하다 보니 금요일 밤을 넘겨 토요일 새벽까지 않아 프로젝트 분석/진단 결과를 계속 쓰고 있었던 건데, 그 중간에 션이 집에 온 것이다.


사무실에 출근하지만, 재택근무환경도 신청해 놓은 터라 어디서건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 두긴 했는데 그렇다 보니 이렇게 오밤중에 일을 하는 경우가 잦다.


그래도 첫 주, 둘째 주는 프로젝트 주간회의에서 하는 이야기들이 반 정도 이해를 했다면 셋째 주가 되면서 거의 다 이해가 된다.


그 사이 공부를 많이 하긴 했나 보다. 기술적으로 다 파악한 게 아니면서 둘째 주에 프로젝트 진단하고, 셋째 주부터는 회의에서 나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아무리 IT를 오래 했어도, 그 많은 환경, 설루션, 기술들을 모조리 알 수는 없다. 그 와중에 프로젝트 진단을 해야 하니 공부량이 상당하다. (전문가들에게 선생님 노릇도 해야 하니)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특정 운동을 많이 하면 그 부위 관절이 상하고 연골이 닳을 텐데, 이렇게 평생 뇌를 혹사하면 뇌도 닳는 거 아닌가 하는.. 실제로 몇 해 전 S프로젝트에서는 하도 머리를 혹사해서 지구가 자전을 멈추듯, 새벽까지 일할 때면 뇌가 작동을 멈춘듯한 멍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이때는 매주 프로젝트 진단을 해야 해서 일주일에 적어도 하루는 새벽까지 머리를 쥐어 짜냈고 이 기간이 1년, 2년 길어지다 보니 생긴 현상이다.


그저 일만 했다면 뇌를 풀가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문장 하나로 프로젝트가 어떻게 하면 제대로 굴러갈지를 고심하다 보니, 뇌의 여러 부위가 다 같이 노동을 해서 그랬을 것이다. 이전에는 몸을 혹사하는 것에 대한 반성을 했다면 이때는 뇌를 혹사하는 것에 대한 반성을 했다.


그래도 과학자들은 뇌가소성이 있다고 하니 '뇌가 닳는 건 아니겠지? 나중에 뇌를 많이 써서 연골이 닿아 제기능 못하듯 그런 일 생기는 거 아니겠지?' 그런 엉뚱한 생각도 했다.


7월까지는 이렇게 일에 몰입할 일이 많을 거 각오하고 덤비고 있는 중인데 이제 슬슬 이 프로젝트 이해도가 올라가고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이 어떤 성격과 유형인지 보이기 시작한다. 급기야 두 번째 프로젝트 진단 결과 작성 중인데 "너무 재미있다"는 말이 툭 튀어나온다. 프로젝트 진단을 제대로 하려면 프로젝트 참여자에 대한 성향 분석도 들어가야 하는데 눈에 보이기 시작해서다.


나도 호기심 많은 스타일이다 보니 재미있어하는 게 많긴 하다. 책, 여행, 옷, 그림, 만들기, 등등. 다른 사람과 차이라면, 내가 재미있어하는 중 '일'도 큰 비중 차지하고 있다. 어떤 것이건 쉽기만 하면 이리 재미를 못 느낄 것이다. 일에서는 특히나 어려운 고비가 많다 보니 하나씩 해결해 가다 보면 엄청난 '성취'가 느껴져서 이리 신바람을 느낀다.


션은 자기가 집 나서기 전과 새벽에 들어왔을 때 그 자리 고대로 앉아 일하는 엄마 보더니

"엄마 세상에서 10억 벌기 두 번째로 어려운 방법이 뭔지 알아?"라고 한다.


뭐냐고 물으니 "엄마처럼 일하는 거"라고 해서 빵 터졌다.


첫 번째 어려운 방법은 뭐냐고 하니, "리만가설 풀어서 상금 타는 거"라고 해서 두 번째도 뿜었다.


그래, 이렇게 안 해도 내가 버는 돈 보다 더 많은 돈 버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어쩌면 나도 '일'을 매개체로 다른 대외 활동, 나의 브랜딩을 통해 더 많은 수익을 얻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미련스러운 방법으로 우직하게 일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갈수록 좋은 현상이 생기고 있다. 나, 나의 동료, 우리 회사가 일종의 골목 맛집 스타일이었다면 방문한 분들의 입소문이 점차 힘을 발휘하고 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각 업체들의 영업력은 상당히 중요하다. 고객과 끈을 놓지 않으려고 최신 기술, 업계 동향을 파악해 와서 알려주는 등과 같이 말이다. 프로젝트 하나 띄우기 위한 준비작업도 엄청나다. 그렇다 보니 프로젝트 수주하는 건 많은 시간, 노력, 비용이 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린 고객들이 서로 입소문 내어 준다. 그 레벨이 점차 높아져서 임원진 레벨에서 서로 맛집 소개하듯 좋은 말씀들을 전달해 주신다.


이 때문에 타 컨설팅 업체로부터 견제를 받는 경우도 많지만, 그럴 때면 솔직히 기가 막히긴 한다. 규모에서 말도 안 되는 차이인데, 이리 견제받아야 하나 하는..

뭐 이런 일 생겨도 실력에서 금세 승부 나고, 때로는 방해공작 있어도 사람들 마음 잡아두면 별로 타격도 없다. 결국 일에 진심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대하면 그게 세상에 둘도 없는 무기가 되니까. (군주론 읽으면서 급 공감 한 이유가 시대가 바뀌었다 해도 사람들의 행태는 바뀌지 않아서이고, 사회가 장밋빛이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션이 말한 '10억 벌기 두 번째로 어려운 방법'으로 몸 바쳐 일하는 중인데, 과거 한 때 나도 '이리 일해서 일개미로 나의 한평생 보내는 거 아닌가' 잠시 생각한 적이 떠오른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훗날 돌이켜 봤을 때, 나의 찬란한 젊음을 사무실에서 보냈다고 한탄하지 않을 자신이 슬슬 생긴다.

프로젝트 끝날 때 일종의 쫑파티 하고 헤어지는데, 아주 가끔 (그들은 나를 알지만) 나는 잘 모르는 분들이 명함 주고 가면서 이런 말 할 건네줄 때가 있다. "이렇게 일을 재미있어하는 사람 처음 봤다"라고.. 머리 쥐어뜯는 날, 이불 킥 하는 날도 많으나 결국 프로젝트가 잘 되도록 애쓴 과정이었고, 내 일처럼 프로젝트하다 보니 다들 그리 느끼는 것 같다. (어쩌면 초반에는 날 보며 왜 저렇게 까지?라고 생각했을 듯)


주중 하루 중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 씻는 시간, 이동 시간 빼면 거의 대부분 일하는 시간일 텐데 이 시간을 대충 보내거나 재미없게 보내면 내 인생의 대부분이 무미건조할 듯싶다.

누구는 대부분 시간 일하는 내 삶이 무미건조해 보인다고 할 수 있겠지만..


가족과 보내는 시간도 중요하다. 여건상 이 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으나, 이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일을 하는 의미가 없어진다. 일에서 자아성취도 있을지 몰라도 돈을 버는 이유가 가족과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도 있으니 말이다.


어차피 일과 가정에서 절대 시간의 균형은 지키기 어렵다. 하지만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시간의 질'로 어느 정도 보완이 가능하다.


'10억 벌기 두 번째로 어려운 방법'으로 일하고 있다는 말은 돈을 떠나 장인정신으로 일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장인들에게 중요한 건, 작품성이다. 돈을 거기 따라오는 것이고. 비록 어려운 방법이지만, 내 마음이 행복하니 '마음의 10억 벌기로 가장 쉬운 방법'이 아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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