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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지 Mar 13. 2022

기다렸다! 50대 시작

나를 알아가는 순간들


드디어 50대 진입!

물론 만 나이로는 생일이 지나지 않았으니 만 48이겠지만, 만 나이 따로 챙기며 숫자로 젊어지려는 거 귀찮고 의미 없다. 

2022년 1월 1일 부로 50대 하기로 했다. 멋있잖아, 50대.






작년 정말 뜻깊은 한 해를 보냈다. 우리 인생에서 큰 변화가 올 때가 있다. 취업, 결혼, 임신, 출산이 대표적이다. 이 중에서 단연코 출산이 나의 인생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다줬다. '엄마'라는 역할이 갑자기 생겼는데, 만만치 않다. 그렇게 점차 워킹맘으로 익숙해져 가다가, 다시 찾아온 변화는 션이 제주로 학교를 옮긴 해였다.

션은 중1, 나는 40대 중반인이었던 이 시기부터 션은 사춘기를 거쳐 '독립적인 자아'를 형성해갔고, 나 역시 워킹맘에서 '나'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5,6여 년이 지나고 보니, 션만큼 나도 성장한 느낌이 강했다.

그래도 여전히 반쪽짜리 성장으로 '나의 미래'보다 '나의 현재와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갔다.     


그러다  2021년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굳이 나이에 의미를 부여할 이유는 없으나, 본의 아니게 잊지 못할 49세 한 해를 보냈다.

계기는 션이 입시 준비 본격적으로 하면 멘털이 힘들어질 것 같으니 엄마가 제주에 왔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었다. 무작정 가기에는 고민해야 할 거리는 많았지만 일단 결론부터 내리고 방법들을 찾았다. 매주 서울/제주 오가며 출근하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었지만 의외의 선물을 받게 되었고, 생각보다 재미있으며 작은 성취를 반복하게 되었다.


■ 시골 아낙 감성 (2월~)


이제껏 생긴 모습과 생활패턴은  도시녀, 커리어우먼이라고 했고,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내 취향은 알고 보니 시골 아낙이었다. 

내가 북적북적한 도시보다 한적한 시골에서 사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그간 일터에서 너무 치열하게 살아서 반대급부가 작용했을지도 모르겠으나, 하루 종일 아무도 만나지 않아도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앞으로도 일을 할 거고, 션이 6월 졸업하면 이제 제주 올 일 없이 서울 사무실에서 내내 살겠지만, 시골 아낙 감성이 나라는 사실을 깨달아서 참말 좋았다.



■ 요리 도전 (2월~)


그리고, 인생 최대의 새로운 도전을 했다.

항상 야근을 하고 산 탓에, 평생 담쌓고 살았던 요리를 시작했다. 아들 녀석 굶길 수 없으니, 인터넷 뒤져서 레시피 수첩에 옮겨적고 일주일 식단 짠 다음, 예쁘게 담아내는 것까지 시도해봤다. 여러 음식이 동시에 끝나야 하는 게 너무 어려워 처음에는 여러 음식 만드는 시나리오를 5분 단위로 적어놓고 시작했다. 요리하는 동안 온 신경이 집중되어서 옆에 누가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했다.  


요리에서 재미를 찾고 싶어서 플레이팅에 신경을 썼더니 훨씬 재미가 있었다. 션의 리액션이 너무 좋아서 결국 '고래를 춤추게 했다' 맛도 모양도 신경 쓴 션만의 1인 밥상이 쭈욱 이어졌고 어느 순간 요리가 좀 쉬워졌다.

생각보다 요리에 소질이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던 한 해였다.



■ 올레길과 둘레길 (4월~8월)


제주 올레길과 서울 둘레길도 완주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꼈다. 운동은 꽝이지만, 걷는 건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래도 맨날 사무실에 갇혀 살아서 걸어본 적은 없었고 기껏 동네 한두 블록 정도 걸었으려나.

올레길 걸으며 처음으로 장거리 도전해 본 건데, 운전을 못해서 중간에 돌아올 수도 없고 해서 그냥 걸었더니,  한번 걸을 때 18~20km 정도 걷게 되었다. 그러면서 슬슬 걷기나 등산에 취미를 붙이게 되었다.  

봄에 제주 올레길 완주하고 여름에 서울 둘레길까지 완주했다. 새로운 재능을 찾은 셈이겠다.



■ 내 사랑 책 (6월~)


서울/제주 오가는 출퇴근 시간이 길다 보니 책을 좀 더 가까이했는데, 애당초 뭐하나 시작하면 진득하게 그냥 하는 성격이라 매일 한 권의 책을 읽고 리뷰를 쓰게 되었다.


원래도 책을 좋아했지만 점점 더 좋아하게 되었고, 좋은 책을 너무 많이 만나서 얼마나 충만한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사람들 만나기 힘든 시기에 '책'은 소중한 나의 친구가 되어 줬다. 이전에는 한 달에 3~5권 리뷰를 올렸던 것 같은데, 7월 무렵부터는 매일 리뷰를 올리게 되었고 2021년부터 블로그에 리뷰한 책이 300권이 넘었다.

한 권 한 권 정성을 다해  리뷰를 쓰다 보니, 오히려 나에게 남는 게 더 많았다. 어려운 책은 따로 공부해서 쓰기도 했다. 나를 뒤돌아 보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지적 성장, 교양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 달리기 (10월~)


난데없이 추석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1분 뛰면 숨이 차던 내가 두 달 만에 10Km를 1시간에 달릴 수 있게 되었다. 12월까지 3달간 주 2,3회 꾸준히 달렸다.

요리, 운동, 운전은 내가 제일 못하는 거였는데, 이중 2가지인 요리와 운동을 결심이나 계획 없이 얼떨결에 시작했고, 나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나가고 있다. 평생 못했던 걸 이리 하게 되다 보니 앞으로 어지간한 건 다 잘해 낼 거 같다.



■  블로그 (20년의 기록, 쭈욱 계속된다)


블로그 기록은 션 태어나면서부터 있다. 이렇게 징하게 블로그에 글 써온 사람 별로 없을 듯싶다.


갈수록  나 자신에 대한 메뉴가 늘었다. 처음 션 육아일기로 시작한 블로그였으나 세월이 가면서 내 이야기도 하나씩 껴들게 된 것이다. 30대를 뒤돌아 보니, 변변한 내 사진 한 장 없었고, 40대도 비슷했다. 모조리 션 사진만 그리 찍었다.

사실 일에 집중한 세월이기도 했고..

48,9세가 되어서야 내 사진, 내 생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이에서 나로 초점이 맞춰지면서 자연스럽게 '깡지의 홀로서기'가 되었다.


아이가 크고 나면 둥지 증후군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해서 나도 어찌 되려나 했는데,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좋아하는 취미생활에,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이 마구 생겨 그런 증후군 따위 올 틈이 없다.  

그리고 션파와는 더 대화가 깊어져서 좋다. 이래서 친구 덜 찾나 보다.


■ IT 프로젝트


내 본업 IT컨설팅도 올해 하고 있다. 이거야, 뭐 내 평생 해온 일이고 여전히 재미나게 하고 있다. 내 분야에선 나름 무림의 고수라 자신하고 있고..

드디어 올해 28년 차가 된다. 언제 은퇴할지 잘 모르겠다. 일거리 떨어지면 자연스레 은퇴하겠지.

가장 애착을 가지는 본업을 너무 성의 없게 써버렸네, 이 이야기는 <하다보니 IT28년 차> 시리즈를 통해 앞으로 이야기할 기회는 많을 테니  여기서는 짧게 끝내자.


이렇게 나의 40대 마지막은 나도 예상 못한 행보를 했다. 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1월에 끝이 나고 아직 후속 일을 찾지 못해  잠시 쉴 수 있어서 다행이다. 맨 위에도 적었으나, 새롭게 맞이하는 50세가 너무 기대가 된다.

앞자리가 바뀌면 마음이 싱숭생숭할 텐데, 난 그렇지 않고 괜히 신난다. 작년 한 해만 해도 저리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50대가 되면 또 얼마나 신나는 일이 또 찾아올까 싶어서.  션이 처음 제주로 갔던 6년 전만 해도 '내가 뭘 좋아하지?', '뭘 하고 싶은 거지?' 했었는데, 갈수록 하고 싶으게 점점 많아진다. 그래서 더 신이 나는 건가?


은퇴는 언제 할까 나도 궁금하다. 아직은 일이 재미있으므로 한동안 더 하지 않을까 한다. 올해까지 뿌린 씨들이 내년에 더 싹을 피웠으면 좋겠다.

션이 8월에 대학에 가면, '일'과 '육아' 중 '육아'는 자유로와 질 것이다. 물론 여전히 내가 부모임에는 변함이 없으나 성인이 된 아들을 이전과 같은 강도로 챙겨줄 수도 없고, 챙겨줘서도 안된다고 본다.


그것보다 사회생활 선배로써 더 많은 조언을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뭐 애들이야 부모 말보다는 친구나 형아들 말 더 듣겠지만..

제주에 학교를 보내지 않고 서울에서 함께 지냈다면 나도 선배맘들처럼  '둥지 증후군'이 생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오래전부터 조금씩 '일'과 '육아'에서 '나 자신'이 비집고 들어왔고 올해 나와 더 많이 친해졌다.

그래서 '육아'가 빠져나간 자리에 이미 '내'가 자리 잡고 있게 되었다.


앞으로 10년 간 해 보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새롭게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경험해 보고 싶은 것도 많다. 다 못하면 60대 몫으로 조금 미뤄둘 것이다. 그리고 한 해 한 해 가다 보면 또 새로운 재미있는 거리를 찾아낼 거 같기도 하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지금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듯하다. 바로 '나'다.

'사랑하니까 하고 싶은 거 실컷 하게 해 줄게'라고 자신있게 말해 줄 수 있다.





나의 50대는 아마도 40대보다 더 찬란할 것 같다.

그 이후 다가올 60대, 70대, 80대는 얼마나 더 멋질지..  상상만 해도 근사하다.

얼굴에 주름은 훈장으로 하나씩 둘씩 새겨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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