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대형 IT 프로젝트를 많이 해 왔다고 하나, 프로젝트 착수 준비 및 플래닝 컨설팅, 프로젝트 종료 후 고도화 프로젝트 등 다양한 성격의 일들도 해 오다 보니, 내가 어떤 프로젝트를 참여해 왔는지 어디 적어두지 않으면 언제 어떤 프로젝트를 했는지, 몇 개나 했는지 기억하기도 어려워진다.
'IT 프로젝트'의 정의와 특징은 몇 가지 있으나 가장 뚜렷한 것은'시작과 끝이 있다'이다.
바로 이런 특징이 일반 '운영'과 가장 다른 점이다.
각 기업마다 전산시스템을 운영하는 전산부서들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이미 만들어진 전산시스템을 운영, 유지, 관리를 한다. 이곳에서도 소규모 단위의 개발은 이루어지나, 특별한 목적을 위해 진행한다기보다 시장의 즉시적 대응을 위해 가변적으로 이루어진다. 전산시스템을 크게 건드릴 만한 비즈니스 요건이 발생하거나, 전산시스템이 노후되어 미래를 위한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할 때, 그리고 신기술을 적용할 필요가 있을 때는 기존 시스템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거나 아예 새로운 시스템으로 전환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기존 '운영부서'에서는 하기가 어려워, 새롭게 프로젝트를 띄어 진행하게 된다.
그래서 같은 IT를 하더라도 프로젝트이냐 운영이냐에 따라 참여하는 사람들의 성향조차 달라진다.
운영은 새로운 것에 대한 접목보다 '안정', '보안' 이런 키워드가 최우선이다. 뉴스에 간혹 등장하는 사건 사고 들 중 운영 관련 사고는 대부분 절차와 통제에서 벗어난 것들로 인해 생긴다.
프로젝트는 애당초 목표가 '새로운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프로젝트 내내 '이걸 하면 뭐가 좋아지는 데?'에 시달리기 때문에 새로운 것, 좋아지는 것, 더 나아지는 것을 보여 줘야 하며, 시작과 끝이 있다는 말은, 그 기간 내 해야 할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내야 한다는 것으로 근무시간 역시 타이트하게 진행된다. 뉴스에 등장하는 프로젝트 관련 사고는 새로운 시스템 오픈 오류 관련된 사항이 많다.
달라도 너무 다른 이런 특징으로 인해 운영을 하시는 분과 프로젝트를 하는 분들의 성향, 성격, 분위기도 확연히 다르다. 프로젝트 쪽 성향이 훨씬 더 aggressive 하다. 프로젝트는 끝나면 모두 뿔뿔이 흩어지므로 인간관계도 좀 더 드라이하다.
프로젝트를 할 때는 '제안-업체 선정-프로젝트 착수 과정'을 거쳐 발주되며, 프로젝트가 클수록 여러 업체가 모여 프로젝트 팀을 이룬다. 내가 참여한 대형 프로젝트는 고객사까지 포함하면 대게 천여 명 안팎이었다. 오죽하면 200~300여 명 정도 참여하는 프로젝트는 내 기준에는 소규모 프로젝트로 볼 정도이다.
대형 프로젝트일수록 또다시 다양하면서 이질적인 기술을 가진 조직 구성이 이루어진다. 크게는 실제 개발을 하는 SI업체와 전체적인 관리/계획/점검 등을 하는 컨설팅 업체가 참여한다. 물론 SI업체가 개발을 하더라도 스스로 해야 하는 관리는 필요하므로 조직도 상 컨설팅사가 하는 관리조직과 별개로, SI업체의 구축 중심의 자체 관리조직이 있으며, 계획은 주로 개발 리더들이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과거 IBM 시절에는 주로 리더 역할 었으나 컨설팅 업체다 보니 계획/방안 수립 역할도 컸다. 당시에는 정신없이 이 일, 저일 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컨설턴트와 SI리더, 이 양쪽 일을 한꺼번에 다 한 셈이었다. 대략 10여 년 넘도록이 두 가지 성격의 일을 계속 타이트하게 하다 보니, 컨설턴트로써의 눈이 제대로 떠졌던 것 같다. 그 후는, 프로젝트를 '읽는 눈'이 생겨, 현재 새로운 프로젝트를 착수시키는 일도, 프로젝트를 진단하는 일도 그리 힘들지 않게 하고 있으며, 자신 있게 고객사 임원들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IT 컨설턴트로 살면서, 일상생활에서는 내 일을 적용한 적은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눈에 보이는 물질 세상과 비교하자면 IT는 거울 속 세상과 마찬가지니까.
그러다 대략 3,4년 전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션이 중3 때 학생대표가 되어 내가 (거의) 반강제 자동으로 어머니회(PRG) 대표가 되었다.
프로젝트를 한다고 해서 누구나 다 바쁜 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개발자들의 권익을 위해 강압적 근무 형태는 상당히 개선되었다. 문제는 컨설턴트다. 고객들, 특히 임원들이나 부서장들과 함께 일을 해야 하며, 프로젝트 전반적인 관리, 이슈 리스크 등을 발굴해야 하는 역할이 있는 컨설턴트들은 과거나 지금 모두 일하는 모습이 비슷하다. 눈에 보이는 코딩을 하는 게 아니라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형체 없는 문제들을 가시화해야 하므로 업무성격상 9 to 6라고 하는 근무시간과는 맞지 않다. 어찌 보면 창의적인 일에 가까우므로 아이디어가 근무시간에만 반짝하고 떠 오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일을 해 오다 보니 야근, 주말 근무가 일상화되어 살아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집에 와도 의식의 흐름 저변에 '프로젝트 생각'이 계속 흘러 다닌다. 그래서 프로젝트 하나가 끝나면 연예인들 콘서트 끝난 후 찾아오는 공허함 같은 것도 느껴질 때가 있다.
어찌 되었건 내 온 정신이 프로젝트에 가 있는 스타일이다 보니 어머니회를 맡는 것이 여간 부담이 아니며, 또 뭐하나 맡으면 '제대로 하자' 주의라 더 걱정했다.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아니라, 여기서 더 과로하면 체력이 버틸까 하는 걱정)
그런데 맡자마자 바로 일을 벌인 게 '아이들 파티와 앨범 제작'이었다.
문제는, 아이들 명단도 없고, 부모님들 명단도 없다. 부모님들은 전국 각각 흩어져 계시고 아이들은 제주도에 있으며 나는 서울에 있는 상황에서 어머니회 맡은 첫날, 이 일을 하기로 했다.
결론은 3주 만에 해 냈다. IGCSE라는 과정(국내로 치면 중학교 과정과 유사)을 마친 기념으로 실시한 이 행사는 어떤 한 곳을 예약하여 버스를 불러 아이들 데려다 야외뷔페 형태로 진행했고, 아이들은 자유복과 교복 준비해 와서 개인/단체 촬영도 했고 앨범으로 만들어 배부해 줬다. 한참 사춘기 아이들이 처음에는 파티라는 말에 흥분은 했으나, '엄마들 개입이 있겠지, 이것 저것 하지 말라고 간섭하겠지'라고 생각했다가 자유롭게 즐기게 해 주고 친구들과 사진도 찍고 해서 너무 좋았다고 했다.
말은 이렇게 적었지만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일단 준비 기간도 짧고, 무엇보다 학생/학부모 명단이 없었고, 파티와 앨범에 대한 적정 가격 책정도 문제였으며, 아이들 안전에 대한 담보도 필요했다. 장소 섭외, 식단 짜기, 앨범 제작업체 섭외, 학교 승인 등도 해야 했다.
해야 할 일을 계획표로 정리하고,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도움을 주실 어머니들 섭외한 후 일사천리 일을 진행했다. 다행히 자원으로 나서주신 어머니들이 너무 열심히 일을 해 주셔서 일은 착착 잘 진행되었다.
이때 나는 잠을 하루 2~3시간 정도로 거의 못 잤다.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행사 준비를 했기 때문에, 오밤중에 행사 준비 관련 오늘 해야 할 일 다 체크하고 내일 할 일 다시 분배하는 등 다 끝내고 나면 새벽이다. 저렇게 안 해도 행사는 치렀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정적 시간에 제대로 시행착오 없이 하려면 계획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계획대로 '진행'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큰 문제없이 잘 마무리되어 드디어 행사 당일 아이들이 얼마나 행복해하던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그때 한 가지 깨달음 아닌 깨달음을 얻은 게 있는데, 그간 프로젝트를 해 오면서 나의 생활과 일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었다고 생각했다. 특히 나의 직업인 컨설턴트로써의 소양은 나의 사생활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렇게 생전 해본 적 없던 아이들 행사 준비를 통해 비로소 알게 된 것은,컨설턴트로서의 소양도 '나의 기질'에서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그 짧은 기간에 절대 안 될 거 같던 일을 기획, 계획, 관리, 진행했던 것이, 프로젝트할 때 내 모습이었다.
봉사 어머니들에게 역할을 드리고 각각 소통하며 진심으로 감사하던 마음이, 내가 프로젝트할 때 사람들을 대하는 바로 그 태도였다.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좀 더 즐거워할까 하고 바라보던 내 모습이, 프로젝트의 변화된 결과물을 위해 고심하던 나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준비과정에서 잠자는 시간도 아끼며 밤새 그리 애쓰던 모습이, 프로젝트 기간 동안 일에 몰입하던 나의 모습이었다.
프로젝트는 시작과 끝이 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 안에서도 기승전결이 있다. 처음에는 조심 스래 시작하다 어느 순간 불이 붙어 생산성이 나오는데 이때 오류/결함도 쏟아진다. 개발, 데이터, 시스템이 서로 불협화음을 이룬다. 그러다 오픈 직전에 가면 각종 문제 해결과 오픈에 대한 의사결정으로 정신이 없어진다. 컷오버하고 난 후 집중 모니터링 기간이 지나면 점차 안정화된다. 이때 운영팀에게 새로운 시스템을 인수하게 되고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철수한다.
어떤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끝나는 반면 어떤 프로젝트는 절반의 성공으로 끝나는 경우가 있다. 무엇보다 나 혼자 잘나서는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 수 없다. 프로젝트 하나를 끝내면 그때 경험으로 다음 프로젝트를 더 노련하게 하기도 하고, 다음 프로젝트에서 새로운 일을 맡기도 하게 된다.
우리 인생도 비슷한 것 같다. 우리 인생도 시작과 끝이 있다. 길게는 탄생과 죽음이라는 시작과 끝이 있고, 작게는 살면서 거친 소소한 여러 일들이 그리 시작과 끝이 있었다. 크고 작은 일 안에서도 프로젝트와 동일한 사이클로 일이 해결된다. 어떤 일은 회피하고 어떤 일은 끝까지 마무리한다. 같은 일이라도 사람에 따라서 이뤄낸 성과도 다르다. 어떤 일들은 다 같이 잘 해나야 하며 괜스레 나만 생각했다가는 나중에 피보는 건 오히려 내가 된다.
어찌 보면 나는, 그리고 우리 세대 대다수는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아왔다. 그 시대를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수준의 경험을 했지, 우리의 조부모님, 부모님 세대처럼 전쟁과 가난 등의 특이한 인생 역경은 당해 보지 않았다. 다양한 인생 경험은 책을 통한 간접경험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얻은 또 하나 인생 경험이라면 바로 '프로젝트'였다. 무형의 존재인 줄 알았던 프로젝트가 어느 날부터 '생명체'로 여겨진다.
똑같은 기술을 접목하는 프로젝트라 해도 어떤 고객, 어떤 참여자, 어떤 AS-IS 시스템이었느냐에 따라 너무도 다르게 진행이 되며 결과물도 다르다.
프로젝트를 하며 그 속에서 벌어지는 생태계가 우리 현실의 모습의 축소판임을 갈수록 깨닫는다. 그래서 어느 순간 생활에서 얻은 지혜와 프로젝트에서 얻은 경험들이 서로 넘나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저 수월하게 지내온 일들은 앞으로 다가올 시련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고, 문제를 해결하여 애쓰고 새로운 목표를 이루려고 애썼던 경험이 이후 큰일이 와도 넘어설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순탄한 삶을 살아온 대신, 험한 인생 경험은 프로젝트에서 한 셈이다.
20대 중반 이후 내 청춘과 젊음은 사람들이 기억도 못하는, 그리고 있는 줄도 모르는 수많은 프로젝트에서 활활 태웠다. 끝이 있기 때문에 이미 사라져 버린 그 프로젝트 들이 정말 사라졌는 줄 알았는데, 지금에서야 내 속에 나의 자양분이 되어 있음을 깨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