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 가지치기

직장맘의 육아일기

by 연작가


오늘의 글은.. '재능이 뭔지 잘 모르는 경우'가 아니라 '여러 분야에 재능이 있을 경우'에 대한 이야기다. 재능이 많다는 것 자체가 부러울 수 있으나, 아이들의 재능은 말 그래도 재능일 뿐이다. 성인이 되어 이를 어떻게 갈고닦느냐가 더 중요하다.





처음 사회생활할 때 노래 잘 부르는 사람들이 부러웠던 적이 있다.


일 하는 데서는 아쉬움 없이 했는데 회식 후 노래방 가면 마이크는 잡지 않고 박수만 쳤다. 노래를 잘 부르건 잘 못 부르건 신나게 노는 사람도 있으나, 학창 시절부터 춤, 노래, 술은 보는 걸 좋아했지 내가 주도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여행, 나들이, 영화, 뮤지컬, 책, 미술관, 각종 만들기 등을 더 좋아해서다.


손재주가 좋아서 뭐든 잘 만들었으나 신입사원 시절의 개인기란 주로 회식에서 모습이다 보니 나도 노래 몇 곡조 멋들어지게 뽑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하며 생각했다.


잠시 그리 생각하고 이내 잊고 살았지만.




나도 어릴 때 그림을 잘 그렸었다. 지금 태어났다면 미술로 꿈을 키웠을 것 같으나 대학 입학 당시 IT붐이 일어 부모님 뜻이 반영되어 이 길로 왔었다. 재미있는 건, 당시 가장 좋아했던 과목이 수학과 미술이면서 고3 때 의대를 지원했다는 점인데 당시 많은 학생들이 꿈, 진로에 대해 제대로 된 가이드를 못 받아서 생긴 결과였던 것 같다.


아마도 과거로 돌아간다면, 좋아하는 것을 토대로 꿈을 키워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걸 가끔씩 하고 있고 내 손재주는 생각지 못한 데서 발휘되곤 했다. 뭔가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데서 스트레스 해소도 되고 마음의 안식이 되는 경험도 하고 나서는 내가 가진 손재주를 더 사랑하게 된 것 같다.


나의 세대는 '미래의 꿈 = 직업'으로 생각했었고 그 조차도 성적에 맞추어 대학과 전공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 보니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전공하고 직업으로 연결시켜 계속 개발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가끔 취미생활로 계속해 오다가 준 전문가로 거듭난 분들이 있긴 했으나 꽤 오랜 세월 꾸준히 갈고닦아 온 경우였다.




그렇다 보니 나를 포함한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들이 어디에 소질이 있는지 찾아보고자 노력을 한다. 거기에 아이의 기질까지 살펴본 다음 적절한 자극을 주기도 한다. 나도 그리 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다양한 체험을 하게 해 주다가 션이 어디 관심을 가지면 좀 더 많은 노출을 하도록 도와주어서 관심분야에 빠지게 해 주었다.




그러면서 션의 몇 가지 재능을 눈여겨보았고, 션이 어디에 재미를 느끼는지 관찰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 지켜본 바로는, 그림과 글쓰기에 소질이 있었고, 디베이트와 수학에 재미를 가지고 있었고, 상당히 호기심이 많고 사교적인 성격이었다. (운동은 나 닮아 소질이 없었으나 중학생 이후 노력으로 극복한 경우임)




이런 유형이 '다 잘하는 아이'로 보이는 대표적인 경우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부모나 아이 입장에서 헛바람 들기 딱 좋다. 성취까지 좋으면 묘한 우월의식에 빠질 수도 있다.


"아유, 그 집 아이는 다 잘하잖아요. 뭘 걱정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면, 자랑스러워하지 말고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션에게 '네가 지금 뭔가를 쉽게 익히는 건 네가 잘나서가 아니다. 소질을 타고 나서건, 재미를 느껴서 건 이미 너도 모르게 쌓인 게 있어서 쉽게 배우고 쉽게 결과물이 나오는 거다'라는 말을 해 줬다.


그것이 어릴 때 읽었던 책이 될 수도 있고, 숱하게 그렸던 그림일 수도 있고, 부모와 나눈 대화일 수도 있다.


나름 겸손을 가르치려고 했던 말이지만 나도 '내 자식 최고'라는 생각에 빠지지 않으려고 했던 말이기도 했다. 교육 덕분인지 션도 세상에 자기보다 뛰어난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충분히 잘 알고 있고 어느 정도 자기 객관화가 되어있다.




그런데, 여러 가지 면에 소질을 보일 경우 특정 재능 한 가지를 키울 때 꽤나 고민이 될 수 있다.


어떤 재능을 키워줘야 하는지 부모 입장에서는 영 헷갈리기 때문이다. 아이도 헷갈리기는 마찬가지다.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평생을 죽자고 한 가지 분야를 파고들어도 전문가가 되기 어려운 세상인데, 학창 시절이야 다재다능한 학생이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경쟁력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즉, 독수리, 호랑이, 고래가 되어야 하는데, 날 수 있고 달릴 수 있고 헤엄을 칠 수 있는 '오리'가 되어 버릴 수 있다는 거다.




이때 중요한 건 '가지치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IB를 할 무렵, 가장 많은 재능을 가진 미술을 잘라냈다.


션은 어릴 때부터 그림을 참 많이 그렸다. IGCSE에서도 미술에서 꽤 재능을 발휘했다. IB과목 6개를 선택할 때 션은 그중 하나를 미술을 하겠다고 하였으나, 나는 전공에 집중하라고 했다. 물론 미술을 택해도 잘했을 것이나, 션의 그림 스타일은 상당히 디테일해서 그림 한 장 완성하는데 엄청난 시간이 든다. IB를 하면서 여러 활동, 봉사를 하면서 션 스타일로 그림을 그린다면 하루 40시간이라도 부족해 보였다.




그렇게 점차 하나에 에너지를 모을 수 있도록 계속 가지치기를 하자고 션에게 말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엄마는 하지 말라고 말리고 션은 하겠다고 하여 부딪치는 경우도 늘었다. 이때는 션이 계속 밀고 나갔는데 지나고 보니 션이 옳았다. 그 이유는 션이 이미 충분히 전공을 고려하여 벌린 일이어서 다.




션이 어릴 때 션이 어떤 전공을 하면 좋을지,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션파와 종종 이야기하곤 했다. 그때 션파는 션이 그림을 잘 그리고 엉뚱한 생각도 잘하고 무언가 자꾸 만들어 내면서 이과 과목도 소질이 있으니 이를 다 접목한 '건축' 쪽으로 가면 션이 자기 일 재미있게 하지 않을까 하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션이 중학생일 때 진로적성검사해 본 적이 있는데 건축가가 꽤 높은 순위로 나왔다. 션의 창의력 때문이었다. 얼마 전에도 션파는 우리가 션에게 '미술' 쪽 환경을 제공해 줬다면 재능을 더 키워주면서 대학뿐 아니라 이후 삶도 더 재미있게 살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나도 션파의 이 말에 꽤 동감한다.


만약 션의 재능 중 미술을 살렸다면 션의 미래는 어찌 될까.




션은 지금 수학을 너무 좋아한다. 순수 수학이라기보다 션의 기질이 가미되어 응용 수학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 '가지치기'를 하지 않았다면 션이 지금처럼 수학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래 언젠가 '미술'에 대한 미련이 생길 수도 있겠다 싶다.




아마도 션이 향후 최소 10년 이상은 한 분야를 파고들고 나서 궤도에 오르면 본능에 이끌려 그림을 취미로 그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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