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가끔 듣는 말이 있다.
"이렇게 일을 재미있어하는 사람 처음 봤어요."라는 류의 말이다.
일로 먹방을 한다면 맛있게 먹는 걸로 꽤 상위권에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나도 가끔 해 본다.
프로젝트 안에서도 일의 범주가 워낙 넓으니, 그들이 잘하는 영역은 그들에게 맡기고 나는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해서 그렇게 보였을 듯싶다.
그래도 어떻게 365일 내 일에 만족하며 사랑하겠는가.
특히 프로젝트처럼 강도가 높은 일을 하면, 힘들고 지칠 때도 있고, 매너리즘에 빠질 때도 있고, 앞 날이 회의감이 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입시절 '깡' 말랐지만 '깡'이 넘쳐나서 '깡지'라는 별명이 붙은 이후, 50이 된 지금도 가끔 '멋있어요'라는 말을 사회 초년병들에게 들으면 괜히 으쓱해지곤 한다.
얼마 전에는 나보다 훨씬 젊은 고객과 톡을 하던 중 이런 질문을 받았다.
"상무님처럼 훌륭한 컨설턴트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빵 터졌다. 이런 귀여운 멘트를 보내주시다니.
올 초 고객에게 이런 문자도 받았다.
"상무님은 업무역량도 탁월하시지만 자녀교육부터 모든 것이 완벽하신 분이라 제가 항상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 딸도 상무님 같은 분이 롤모델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션파는 신년인사로 하는 말이라고 내 흥을 깼지만 겉치레라도 기분은 좋았다.
내가 일을 재미있어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단순히 '웃는 얼굴로 열심히, 나서서, 잘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여서가 아니다.
나 스스로 느끼는 '성취감'이 좋아서이고, 그 분위기가 전달되어서이다.
눈에 띄거나 큰 성과가 아닌 일이라 해도, 제대로 해 내면 나 스스로 만족감이 상당히 크다.
누군가의 칭찬이나 인정보다, 내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했으냐가 더 중요했다.
그래서 가끔 "내가 만들었지만 진짜 잘 만들었다."라는 혼잣말도 하고, 과거에 내가 만든 자료를 보고 "다시 만들라고 해도 못 만들겠네"라는 말도 한다.
대게 프로젝트를 하면 다른 이들이 만든 자료를 수집려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다른 이들이 만든 자료 중 정보 차원에서 필요한 문서들이 일부 있겠으나, 정말 잘 만들지 않은 이상 큰 관심이 없다.
하나하나 애정을 듬뿍 담아 작업을 하다 보니, 오히려 내가 만든 자료에 대한 애착이 더 크다.
션파와 간혹 우리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더러 "너는 정말 일을 재미있어하는 것 같아."라고 말한다.
이전에는 부인했었다. 나도 남들과 같다고. 오래 일하기 싫고 언젠가 은퇴하면 실컷 놀 거라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인정했다. 맞는 것 같다고.
미래 계획에 션파가 먼저 은퇴하고, 나는 언제가 될지 몰라도 계속 일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런)
하루 24시간 중 자는 시간 빼고 일만 한 날도 참 많았다. 그 기간을 견디게 해 준 이유는 일이 '재미'있어서 같다.
깔깔 웃게 만드는 유머가 있거나,
눈을 휘둥그래 만드는 화려한 볼거리가 있거나,
내 입을 즐겁게 하는 달콤한 맛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지겨운 과정을 인내하고, 사람들 간 이견을 좁혀가며 마음 상하는 일이 있었던 그 과정이 돌아보면 모두 의미 있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건강을 해쳐가며 일하는 고된 업무 강도는 안 하려 한다. 내가 우선이어야지, 일이 우선이 되면 오히려 '재미'가 사라진다.
올해 내내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기간으로 삼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독서를 부쩍 많이 하는 이유도 나의 내면을 윤택하여 균형 잡힌 삶을 살고 싶어서이다.
앞으로도 어떤 일을 하건 '맛있게' 하고 싶다.
누구의 입맛에도 맞는 산해진미를 맛있게 먹는 게 아니라, 간이 맞지도 않는 음식을 먹더라도 웃음을 빵 터트리며 맛있게 먹는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다.
왠지 자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