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 것 같은 착각

깡지가 사는 법

by 연작가

내가 문서를 만들 때 가지고 있는 버릇 중 남들과 조금 다른 것이 있다.


보고서나 자료를 만들 때 여러 자료들을 읽고 분석하고 정리를 하게 된다.

이때 대부분 사람들은 어디에서 사용한 비슷한 자료를 얻어다 글과 그림을 조금 조정하거나, 여러 문서를 짜집기 한다. 성의를 보이는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자료에서 양식만 따다가 본인만의 내용으로 정리한다.


그런데 나는 빈 파워포인트에서 시작한다. 작성하고 싶은 내용에 따라 문서의 전체 구성, 내용, 디자인을 대부분 새롭게 그리고 작성한다. 혹시 다른 자료에서 인용할 만한 좋은 문구나 그림이 있어도 참고로 할 뿐이지만, 정 필요한 경우 copy를 하지 않고 다시 그린다.

Back data 자료가 많을 경우도, 어지간하면 필요한 내용을 일일이 다 다시 적으며 요약을 한다.

이렇게 초안을 만들고 나면 두 번, 세 번 다시 modify 하며 문서의 완결성을 올린다.


copy를 하면 편할 텐데, 일일이 다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내가 제대로 이해를 하기 위해서다. 이문서, 저 문서를 짜집기 해서는 현재 내가 작성해야 할 문서(보고서)의 취지에 제대로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영혼이 없는 문서'가 나온다.

그런 보고서로 사람들에게 공유를 한들, 깊이가 없어서 제대로 된 전달을 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작성자로서, 내 문서에 대해 완벽하다 '다' 안다고 할 수가 없다. Q&A를 하다 보면 제대로 답변을 못하는 컨설턴트가 많은 이유다.

적합한 단어를 선택해가며 한 글자, 한 글자를 직접 쓰다 보면 다방면으로 고민을 하게 되고 이런 고민의 과정을 거쳐야 촘촘한 구성을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 버릇은 다른 데에서도 등장한다.

대표적인 예가 학창 시절 수학과 취미 생활인 책 읽기다.


책 읽기부터 예를 들자면, 책을 읽고 나면 그 내용을 어느 정도 '안 것' 같다. 자기 계발서 같은 경우는 실천을 하려고도 한다. 다행히 한 두 가지라도 행동에 옮기면 내 것이 되기 쉽다. 내 경험상 '머리'로 익힌 건 잊더라도, '몸'이 익힌 건 습관이 되기 때문에 어딘가 잘 저장이 된다. 자전거나 수영을 오랜만에 하게 될 경우 처음에는 적응이 필요하나 곧 편안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런데 대부분은 '좋은 내용이네', '어렵네', '이 책은 별로야' 하고 넘어간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책을 보면 "읽어봤다"의 만족감만 있지 다른 의미는 없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나면, 짧게라도 리뷰를 써보라고 권하고 싶다.

렇게 쓰다 보면 '배운 것 같다, 안 것 같다'의 착각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생각보다 막힐 때가 많아서이기도 하고 이 내용이 있었던가 싶기도 해서다.

책의 좋은 내용이 있으면 필사도 좋고 타이핑도 좋고 써보면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천천히 곱씹어 보게 된다. 처음에는 막연하더라도 내 생각을 조금씩 써보면 비로소 '배운 것, 알게 된 것'이 된다.

리뷰를 하면서 다시금 책을 보다 보면, 책 장을 빠르게 넘길 부분과 내 시선이 천천히 머무는 곳이 뚜렷해지는데 이 과정이 '내제화' 같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수학도 마찬가지다.

수학을 좋아하고 잘하는 편이었는데, 책 보고 답 지보며 혼자 공부를 했었다. 틀린 문제는 며칠 후 따로 모아서 다시 풀어보면서 내 것으로 만들었다. 매번 미리 예습을 했던 터라, 수업시간에 선생님 설명할 때는 따로 문제를 더 풀었었다. 수학을 잘하니 친구들이 가르쳐 달라고 하게 되고,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문제집의 문제도 풀 수 있게 되어 더 풍족하게 문제를 접했다. 더욱이 가르쳐 주는 과정에서 내가 더 공부가 되었다.

그저 선생님의 설명을 들을 때는 내가 마치 다 '이해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자라면서 수학이 어렵고 힘들다는 학생 들 중 많은 경우가 어려서부터 직접 문제를 풀어본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요즘 아이들의 경우, '정석 몇 바퀴 돌렸다'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과연 그 몇 바퀴가 학원과 과외를 여러 차례 한 것인지, 스스로 끙끙거리며 한 것인지 궁금하다.

특히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바로 문제를 푸는 경우도 조심해야 한다. 우리나라 수학은 고등학교 수학까지 모조리 '패턴 형식'이 많아 수학 센스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바로 풀어낸다. 반드시 하루라도 시간이 지나서 다시 풀어봐야 제대로 익힌 것인지 알 수 있다.


정석을 예를 들자면, 익히기 가장 좋은 방법은 배우지 않은 내용을 직접 읽어보고 기본 개념 따라 풀어본 후, 연습문제를 도전해 보는 것이다. 이해가 가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질문하기 전에 답지를 보고 이해를 해 보려고 애써도 좋다. 답지를 이해하는 것도 상당한 이해력을 필요로 한다. 그렇게 한 후 틀린 문제를 다시 풀어보되,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것만 선생님께 질문하면 좋다.

사실 답지 보고 이해하는 연습을 한다면, 선생님께 여쭈어볼 문제가 없다. 워낙 설명이 잘 되어 있으니까.

여기까지는 '학습' 중 '학'에 가깝다고 본다. '습'을 하려면 시간의 텀을 두고 다시 틀린 문제, 답지 보고 풀어 본 문제를 다시 풀어봐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내가 무엇을 제대로 모르는지 알게 된다.


션은 정석을 초등학교 고학년에 했는데, 이 방식으로 했다.

읽어보고 혼자 풀어 보라고 하고, 모르는 것은 답지 보고 궁리해 보라고 했다.

처음에는 " 안 그래도 돼, 선생님이 가르쳐 줘, 애들 모르는 거 다 여쭈어봐 "라고 했는데 이렇게 수학을 접했다가는 나중에 난이도가 올라가면 선생님 의존도가 커지고 혼자 공부할 수 없는 아이가 될 것 같았다.

처음 습관이 중요하므로, 모르는 문제를 더 고민해 보라 했다.

그렇게 해야 선생님이 설명해 줘도 '유레카'를 외칠 수 있다고 했다.

그리 습관을 들이고 나니 이후는 많이 수월했다.


션이 수학에 대해 더 재미있어하게 되었고, 궁금한 게 생기면 인터넷, 구글링, 학회지, 논문집 등 다 뒤져보며 익히게 되었으니. (션은 엄마 때문이 아니라고 우길 지 몰라도 나는 나 덕분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

정석 2 뿐 아니라 이후 수학과정 및 경시 준비까지 알아서 공부했다.


일할 때,

책 읽을 때

수학을 공부할 때

과연 이때만 통하는 이야기 일까.


요즘은 정보가 넘쳐난다.

그 정보 중 '요약된 정보'가 참 많다.

이 요약된 정보, 누군가가 가르쳐준 정보가 '내가 배운 것 같고 알고 있는 것'으로 믿게 만든다.


요약된 정보는 휘발성이다. 필요한 것은 요약할 줄 아는 힘이다.

요약을 위해서는 내가 이해를 해야 하므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두배, 세배, 열 배의 시간과 노력이 들겠지만, 그 과정으로 배우는 능력은 상당히 크다.

더 좋은 점은 '배우는 속도'가 빨라진다.

무엇보다 그 어떤 것을 시작해도 '하면 되지'하는 자세가 생긴다.

뭘 해도 방법이 똑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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