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이 미국으로 유학간지 한 달이 넘었다. 많은 분들이 허전하지 않냐, 어떻게 견디냐 질문과 걱정을 해 주시곤 했는데 '정말 평소와 다름없게' 잘 살고 있다. 평소 나를 아는 사람들은 그 바쁜 와중에 아이 잘 챙겼다고 생각해서인지, 션에 대해 상당히 애지중지하고 오매불망 그리워할 것으로 여겼던 것 같다. 물론 션이 종종 보고 싶기는 하나(맛있는 거 먹을 때?), 그냥 친한 친구 보고 싶은 정도의 평범한 보고 싶음이지 눈물이 나는 등의 애절함은 없다.
오히려 짬짬이 션파와 놀러 잘 다니고 있다.
IT종사자들은 생각보다 단순하게 생각하며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큰 관심이 없으며, '일'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집중해야 하는 업종이다 보니 취미/여가 생활 한 가지 정도를 제법 전문적으로 파고드는 사람도 많다. 우리끼리 이야기할 때 '일'이야기가 제일 재미있을 때도 많고.. 그렇다 보니, 성격도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고, 그 내면을 보려는 성향은 약하다. 이과 성향의 특징 같기도 하다.
반면 나는 여러 기질이 섞여 있는 편이다. 일할 때는 논리/이성적 특징이 극악으로 치닫지만, 행간을 읽는 것이나 세상 돌아가는 일에도 관심이 많다. 그래서인지 업무 경험과 경력이 쌓이면서, 어떤 기술요소에 특화하기보다 전체 흐름을 읽는 역할로 바뀌었다.
책을 읽을 때 분야를 국한하지 않고 꼬리를 무는 독서를 한다거나, 다방면에 호기심이 많고, 그림을 좋아하고,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등이 이런 기질임을 뒷받침 하는 증거가 되는 듯하다.
그렇다 보니, 소위 말하는 '사유'를 즐겨한다. 거창하게 말해 사유이지, 사색이 더 맞는 표현일 듯하다. 책을 읽고 리뷰 쓰는 시간을 즐거워하는 수준, 사소한 것에서 감동을 잘 느끼는 수준 정도이다. 항상 그런 건 아니다. 아주 가끔 특정 책이나 공간, 상황에서 여러 생각이 춤을 춘다. 이 때는 그 생각들이 '내 이야기'로 연결되어 채워진다.
그래서인가, 션을 낳은 후 긴 세월 동안 가끔 '모성애'에 대해 생각을 했다.
임신했을 때 '아이를 낳고 쳐다보는 순간 모성애가 생기나?'가 궁금했다. 낳아보니 그렇지 않았다. 처음 보는 낯선 아이를 안았을 때 열 달간 배속에 있었던 아이의 모습이 이랬구나 하며 신기했으나, 책에서 또는 영화에서 봤던 애틋한 모성애가 바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션을 키우면서 일한다고 파김치가 되더라도 내 몸의 휴식보다 아이와 눈 마주치기를 실천하는 모습에서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모성애였구나' 생각했다.
퇴근 후, 또는 주말 다들 쉬고 싶을 때 션에게 집중하는 모습이 지극정성으로 보였던지 주변에서는 내가 모성애가 대단한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막상 나의 딜레마는.. '그렇게 모성애가 강하면, 왜 내가 일을 관두지 않고 일하러 나가나'였다.
션이 가장 바랬던 건, 잘 놀아주는 엄마가 아니라 '함께 있어주는 엄마'인데, 누구보다 잘 아는 내가 이렇게 일을 관두지 않고 계속하는 이유에 대해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일할 때는 아이 생각이 나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엄마가 없으면 불안해한다. 션이라고 예외였을까. 감질나게 하루에 잠깐 보는 엄마가 그리워서 심리가 불안정할 때도 있었다. 많은 워킹맘들이 체력이 점차 달리고, 힘든 상황 때문에 의지력도 약해져서 일을 관두기도 하지만, 아이가 엄마를 필요로 하는 시기에 마지막 의지를 꺾고 집으로 돌아갔다.
하나 둘 여성동료들이 일터를 떠날 때도, 션에게도 엄마가 필요할 때도, 최선보다 차선책을 찾았다. 그렇다 보니 오히려 나 스스로는 "모성애가 부족한 건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무슨 사명의식으로 일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나마 자위했던 것은, 션과 보내는 시간은 짧아도 그 짧은 시간 엄마로서 해 줬던 정성은 깊고자 했던 것이다. 션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애썼고 내 욕심은 최대한 버리려 했다.
그래서 나의 결론은, 나의 이런 마음과 행동은 나의 대표 기질인 '과한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의심했다.
일터에서도 내가 맡은 건 끝낸다 수준이 아니라, '제대로 끝낸다'로 일을 해 왔다. 뭐든 내 성에 찰 정도로 해야 했다.
일 때문에 밤을 세더라도, 지금까지 제사가 있는 날은 설거지만 해도 빠진 적이 없는데 이것도 책임감이 크게 작용했다. 제대로 준비는 못하지만 모름지기 맏며느리인데, 일로 빠지고 싶지 않았었다.
일하는 엄마들은 아이에게 잘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마음에 죄책감에 많이 빠진다. 특히 전업과 비교하면 자괴감이 많이 든다. 나는 남과의 비교 이전에, 나 자신이 '모성애가 '부족'하고 책임감만 '강한' 엄마는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육아나 교육이 재미있기까지 했다. 션에게 무언가를 해 주려고 이것저것 찾고 공부하다 보면 션보다 내가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여러 엄마표 놀이나 교육방법이 생겼는데 내가 즐거워서였다. 이왕 하는 거 좋아서 하지 않으면 오래 할 수도 없고, 나만의 스타일을 찾았다. 게다가 션이 좋아하는 모습 보는 것이 행복했다.
일에서 쌓인 스트레스는 션과 놀면서 풀었고, 아이 키우며 생기는 스트레스는 일에서 재미를 찾으면서 사라졌다.
(가끔 둘 다 스트레스 쌓이는 기간이 겹치면 멘붕)
그런데 션 친구 엄마들과 만나면, 뭔가 달랐다. 아이들 챙기는 수준이나 고민의 깊이도 훨씬 깊었고, 나와 달리 아이 진로에 대한 로드맵도 꽉 차 보였다. 오로지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처럼 보였고, 진지하고 전문적으로 육아에 임하는 것 같아 보였다. 평일에 낄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그 대화에 동참하고 나면 나 역시 '일을 계속해도 되나, 나도 저기에서 아이 챙겨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힘든 시기와 감당이 안 되는 기간이 있긴 했으나, 어쩔 수 없는 부분에서는 포기할 거 포기하고, 션의 기질에 맞추고 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집중했다. 그랬더니 훨씬 행복해졌다.
엄마들과 보내는 시간보다 션파와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좋았다.
그러다가 션의 친구 엄마들 중 큰 아이가 입시준비를 할 때 칩거생활을 시작하고, 아이가 대학을 입학하면 우울해하시는 분들이 늘었다. 입시준비할 때는 여러 가지 예민해져서였고,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면 마음이 뻥 뚫린 것 같아서였다. 일터에서도 꽤 많은 남자분들이 아이가 대학에 가자 와이프가 우울해한다며 걱정을 많이 하셨다.
이런 심리상태를 "빈 둥지 증후군"이라고 하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으나 나는 가능하면 그런 심리를 피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션이 중학생이 되자마자 제주도로 보내기로 했다.
내가 일한다고 함께 한 시간이 많지 않았고 늘 야근을 한 데다, 션도 점차 공부량이 많아져서 제주로 가도 아주 큰 차이가 없을 줄 알았다. (실제로는 차이가 컸으나 이 이야기는 따로..)
하지만 퇴근하고 왔을 때 늘 보던 아이를 볼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충격은 있을 듯하고 이른 '빈 둥지 증후군'이 올 수 있겠다 싶어서, 션을 제주로 떠나기까지 3,4개월 시간이 남아 있을 때 새벽에 영어회화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션이 없을 때 몰입할 무언가가 있다면 나의 공허함을 좀 달랠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뭐든 해 보고 몇 개월 노력하면 재미를 느끼는 시기가 온다. 그렇게 영어에 재미를 붙일 때 즈음 션이 제주로 떠났다.
이때도 다들 괜찮겠냐고 걱정을 했는데, 정말 괜찮았다. 오히려 집에 돌아가도 돌봐줘야 할 아이가 없으니 마음 편히 야근을 했다. 션이 제주에 가고 나서 한 달, 두 달 넘어가니 그리움이 점차 쌓이긴 했으나, 나름 적응을 잘했다. 영어학원 다니겠다며 생각했을 때부터 미리 마음을 잘 다스렸나 보다. 반면 션은 어리다 보니 집과 가족을 떠나 낯선 환경에 홀로 가서 살다 보니 초반부터 적응이 필요했었다.
션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지내는 6년 동안,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다. 매일 통화를 하며 션 마음 헤아려 보고, 주말이면 제주로 찾아가서 엄마 얼굴을 보여주고 이야기도 들어주었다.
션이 사춘기 겪으면서 공부/성적 욕심도 버렸고, 션이 어떤 대학에 가서 무엇을 공부하면 좋을지에 대한 기대도 버렸다.
'어떤 인품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되면 좋겠다만 생각했고, 좋은 삶의 태도를 가질 수 있을 조언만 간혹 하려 애썼다. 입시를 치를 때는 여느 부모님처럼 은둔 생활을 하지 않았고, 하던 대로 살았다. 블로그에는 오히려 더 '용기 있게' 입시 과정을 적기도 했다. 입시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인가 정말 행복한 입시준비기간을 보냈다. 션은 고군분투했고, 나름의 목표를 이루고 싶어서 치열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이 편안하기만 했다. 입시 내내 '지원한 대학 중 하나는 붙겠지' 마음이었고, 진심으로 '그래도 된다'는 마인드컨트롤을 했다. 실력이 있어도 운이 없으면 떨어지는 것이 입시이기 때문이다.
새벽 달리기, 독서, 리뷰 쓰기도 꽤 도움이 되었다. 엉뚱한 생각을 하지 않게 해 줬고 나의 내면을 계속 들여다보고 다독여 주었다. 이렇게 좋은 걸 왜 이제야 했나 싶었다. 인생의 좋은 친구를 만난 것만 같았다.
이후 입시결과가 좋아서 부러움을 많이 샀다. 나도 일주일은 좋았다. 그러나 곧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내가 대학에 갔나, 션이 갔지. 내가 좋은가, 션이 좋지.
션이 서너 살 때 내가 낳았으나 나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적이 있다. 저 어린 아기가 독립적인 인격체임을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내가 해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션이 바라는 것'을 보려고 했다. 션의 렌즈가 어떤 것인지 말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이 아이를 계속 관찰'해야 했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므로 시행착오가 많았고 아직도 하고 있다. 그래도 하나 깨달은 건, 한번 말해서 듣지 않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 답이었다는 것이다. 이해를 하지 못하니 행하지 않고 변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인지 션이 제주에 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션이 유학을 가고 나서도 아무렇지 않다.
이번에는 션이 없을 때를 대비하여 따로 마음의 준비를 하지도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모성애를 의심하지 않았다. 션의 입장으로 생각해 주려는 이 마음이 모성애 외엔 달리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올 초,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고 나의 '책임감'이 사랑이 대표적인 형태이며, 션 입장으로 생각하려 했던 것 또한 '존경'이라고 하는 사랑의 형태임을 알게 되었다. 큰 위로가 된 책이었다.
션이 어릴 때부터 간혹 해 준 말이 있다.
하나는,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는 '부모에게 이기적이 되어라.'라고 했다.
엄마나 아빠 바람대로 살지 말고, 부모 이겨먹으라고 했다. (이런 건 말을 또 잘 들어요~)
환경이나 여건에 대해 부모를 먼저 배려해서 본인 꿈 버리지 말고 오픈해서, 함께 풀어보자고도 했다.
두 번째는,
앞으로 좋은 친구, 아내, 그리고 션의 자식이 생길 텐데,
내가 그러했듯, 션의 우선순위도 더 이상 부모가 아니게 된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마땅히 그래야 한다.
내가 아니더라도 위로와 격려받을 대상자는 많겠지만,
세상이 모두 션을 버릴 때, 션을 감싸주는 최후의 '너의 편'이 되어 주겠다고 했다.
션이 내 나이가 되면, 이 글 한번 읽어보면 좋겠다. 션의 부성애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