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은 제주에서 5:30에 집에서 나서서 비행기 타고 지하철 타서 서울의 사무실로 출근한다. 출근 준비시간까지 포함하면 출근시간이 4시간 넘게 걸린다. 지금은 일이 너무 많아서 제주도 가는 것이 큰 부담이 되어버렸으나, 션이 6월에 졸업하면 이제 제주도 올 일도 없어진다.
이 새벽 시간은 공항에 가는 버스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매번 택시를 탄다. 겨울에는 깜깜하더니, 지금은 해가 일찍 떠서 일출 보기가 힘들어졌다.
지난주는 택시를 타고 가는데, 기사님이 중간에 딸아이를 태워도 되겠냐고 여쭈어 보신다. 비행기 시간만 안 늦으면 되니까 그러시라고 했다.
공항 가는 중간에 20대로 보이는 따님이 타셨고, 나에게 방해가 될까 봐 작은 목소리로 아빠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눈 후 인사를 예쁘게 하고 내리셨다.
기사님은, 딸아이가 일하러 가야 하는 데 새벽이라 택시가 안 잡힌다고 연락이 와서 나에게 양해를 구한 것이라고 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을 하실까 궁금하여 여쭈어보았더니, 요양사일을 시작했다고 하셨다.
원래 직업은 대학병원 간호사였는데 너무 힘들어서 관둔 후 조금 쉬었다가 자격증을 준비하고 요양사를 시작했는데 재미있어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딸아이가 서울로 가볼까 한 적이 있다며, 기사님은 그렇게 되면 가족이 이제 영영 헤어져 살 것 같아서 그냥 제주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좋겠다고 했고, 딸아이도 그러기로 했다고 하셨다. 자식이라곤 하나에, 거기다 여자인데 서울에서 고생하는 거 보기 힘들 거 같았고, 돈, 명예 이런 거 쫓고 사는 것 보다 가족이 얼굴 자주 보고 사는 게 훨씬 좋아서 그리 말했다며 정말이지 행복하게 웃으셨다.
내가 이십 대, 삼십 대, 사십 대였다면..
기사님의 이 말씀에 어쩌면 다른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여자니까'라는 말에 발끈했을 수도 있고, 무언가 하려는데 부모가 앞을 막는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50대 접어들면서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가치관과 생각을 보면서 이들 모두의 삶의 방향에 대해 존중하게 된 것 같다.
이제는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서로 '다름'이 있음을 안다.
그리고 그 다름에서 각자 나름의 소중하고 고귀한 가치가 있다는 것도 보인다.
아마도 기사님이 아빠로서 하신 말씀에는 독단적인 내용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보다도 딸의 성향과 기질도 보셨을 가능성이 높다. 거기에 인생의 경험이 녹아들어 가서 딸의 행복을 위해 하신 조언이었을 것이다.
'내가 부모였다면' 어떤 조언을 했을까, 그리고 부모로서 어떤 결정을 했을까.
아마도 서울로 가면 어떨까 하는 말에 원하는 대로 하도록 격려해 주고, 같이 방법을 찾아봤을 것 같다.
그래서 션이 제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보내고,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것에 찬성했었다. 기사님과 달리 가족이 서로 헤어져서 사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션파와 가끔 서로의 인생관,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한다.
션파는 재미를 추구하고 좋아하는 게 뚜렷하지만 열정이나 도전을 외치는 삶보다 안정적인 삶을 훨씬 좋아한다. 그래서 사람도 항상 변함없고 든든한 스타일이다.
반면 나는 뭔가 성취하는 것, 생산적인 것을 좋아한다.
쉬운 거, 같은 거 평생 하라고 하면 박차고 나온다. 어쩌면 그래서 매번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프로젝트를 계속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어려운 과제를 풀 때까지 그 기간이 힘들더라도 잘 해결해 낼 때 엄청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렇게 다른 부부가 션이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할 때 바라는 바가 같을 리가 없다.
그런데 의견이 모아지는 부분은.. 부모인 우리가 바라는 션의 모습이 아니라, 션이 원하는 션의 모습이었다.
'션의 성향을 고려해 볼 때, 션은 이렇게 살면 참 행복해할 아이구나'에 대해 참 많은 이야기를 했었고, 부모로서 그런 환경에 션이 갈 수 있도록 도와주면 우리 몫은 어느 정도 이룬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마 우리가 함께 살자고 해도 그 시기만 늦어질 뿐, 션의 선택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원하는 곳에서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기사님 가족과 다른 선택을 하게 된 것 같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집의 행보에는 '다름'만 있고, 누가 더, 덜 행복하다는 '비교'나 '우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팔자대로 산다'는 말이 꼭 나쁘게만 들리지 않는다.
참 희한하게도 사회생활 오래 한 여자들의 사주를 보면 비슷한 구석이 많다.
워킹맘들은 한 지붕에 가족이 같이 잠을 자지만, 가족이 헤어져 살고 있다는 느낌을 내내 받는다. 특히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할 때는 무슨 부귀영화 누리려고 내가 이리 일을 계속하나 갈등할 때가 많다.
누구나 처음에는 일을 시작할 수 있으나 계속 지속하거나, 업종을 바꾸는 경우를 보면 능력이나 끈기때문만일까 하는 의문을 이제야 한다.
어느 정도는 나의 가치관과 인생관이 조금은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 같은 조건에서 누구나 같은 결정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이 많아서 저녁이 없는 삶을 살게 되었을 때, 사람들의 해석과 선택은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워라밸을 위한 결정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시기가 지나고 나서 찾아올 기회를 위해 견디는 사람도 있다.
새벽에 기사님과 대화에서, 나에게 질문해 봤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대답은 "그렇다"이다.
기사님이 우리 집을 보면, '아니 가족이 헤어져 사는데 뭐가 그리 행복해요?'라고 할 수도 있고,
내가 기사님 집을 보면서 '이왕 사는 거, 힘들어도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는 게 더 나을 거 같은데요?'라고 할 수도 있다.
내가 행복한 이유는,
내가 일을 해서,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서, 친구 같은 남편이 있어서, 등의 이유가 아닌 것 같다.
세월이 갈수록 우리 가족이 우리만의 색깔로 성숙함이 무르익어가서 이다.
한 공간에 있는 시간은 짧을지 모르나, 서로 간 교감이 있다. 그 어떤 집보다 대화가 많다.
기사님이 행복한 이유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딸과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서 권위적인 부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새벽에 일하는 딸을 기특하게 바라보는 눈빛만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