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명문대 친구들 vs. 국내명문대 친구들
직장맘의 육아일기
션은 짧은 겨울방학을 보내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방학 동안 워낙 공사가 다망하시어 집에 있지 않고 돌아다녔고, 집에 있을 때는 내가 일이 많은 날이 겹쳐서 이야기 나눌 시간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그동안 짬짬이 나눈 대화 중 하나, 나의 궁금증이 발동하여 물어본 주제이다.
"해외명문대 친구(HIPSM)들과 국내명문대 친구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참고) HIPSM :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스탠퍼드, MIT
물론 션의 선배, 지인, 친구들 간의 비교이므로 표본집단 오류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션이 워낙 마당발이라 어느 정도 대표성을 띌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션은 해외명문대의 '천재급' 친구들(외국인 포함)을 제외하면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 자질, 능력은 그렇게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해외의 경우 명문대일수록 학교별 원하는 학생상이 있다 보니 태도면에서 좀 더 적극적이거나 끈기를 요하거나 특별함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국내 친구들이 한국입시에 맞춰 공부했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없어서 하지 않았을 뿐이지 기회가 되면 잘했을 친구들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 질문으로, "그러면 국내명문대 간 친구들 중 기회가 있었다면 아이비리그에 충분히 진학할 만한 친구가 있었느냐" 물어봤다.
고민하더니, 몇 친구들은 해외를 겨냥했다면 충분히 가능했을 거라고 했다. 아이디어, 열정이 있는 친구들이라 공부와 활동을 병행해도 충분히 자신을 드러낼 친구들이라고 했다.
그러면 다른 친구들, 특히 엄마인 나의 입장에서 그동안 지켜봐 온 우수한 친구들은 왜 포함되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 친구들은 적극성이 있거나 호기심이 있거나, 스스로 뭔가 찾아가려는 기질 이런 것이 있는 게 아니라 주어진 일에 대해 묵묵히 해 나가는 수재형 타입이라고 했다.
이런 경우는 활동에서 다른 학생들과 차별성을 가지기 힘들기 때문에 해당 학문에서 탁월한 업적이 없을 경우 해외명문대 중 Top을 노리기에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 "해외명문대에 충분히 갈 수 있을 만한 친구들이 왜 해외가 아닌 국내로 진학했을까?"라고 물어봤다.
여기에 대답은 '환경'과 '부모님'의 영향이 큰 것 같다고 했다.
환경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이렇게 중고등학교 때 유학을 간 친구들, 영주권이나 시민권이 있는 친구들, 주변에 해외명문대를 진학한 경우가 있어서 자극을 받은 경우, 부모님이 어려서부터 가능성을 열어준 경우도 있다. 물론 해외 진학이 '꿈'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므로 경제적인 뒷받침이 어느 정도 있는 경우가 많다. 책이나 TV에서 가끔 환경이 별로 좋지 않거나 부모님의 뒷받침 없어도 학생이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해낸 사례가 나오긴 하지만 그런 경우는 워낙 특별해서 일반화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경제적인 수준이 같다고 가정하면?"이라고 물으니
조금 생각하다가 '부모님의 교육관'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가장 영향을 받는 데가 부모님일 수밖에 없고, 부모님이 어떤 교육관으로 자식을 키우느냐에 따라 환경이 결정되는데 그 울타리 안에서 대부분 아이들이 보고 배우고 꿈을 키우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의 경우만 예를 들어도, 난데없이 엄마 아빠가 초6학년 말에 제주의 국제학교로 가는 게 어떻겠냐고 했는데 솔직히 제주국제학교나 해외대학에 대해 잘 몰랐고, 중1부터 집에서 떨어져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전혀 모른 체 얼떨결에 가게 되었는데 가서 여러 경험을 통해 자신에게 잘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주 국제학교에서는 국내 대학도 진학하지만 해외 대학 진학이 워낙 자연스러운 일이라 자기도 자신의 미래에 대해 국내/해외 구분 없이 더 넓혀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다가 션파가 잠시 껴들었다.
"그때 엄마, 아빠가 너를 제주로 보낸 건, 우리가 풍족해서도 아니고 해외 명문대를 보내야겠다는 의지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너의 기질이 국내보다 해외에 더 잘 맞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서 너의 기질에 잘 맞는 환경을 고른 거다."라고 했다.
우리 부부 대화 중 빈번히 등장했던 것이 '션의 기질과 재능'이었는데 초6 때가 어떤 갈림길로 가느냐 분기점이었다.
국내 입시를 해도 괜찮겠지만 그렇게 되면 션이 가지고 있는 장점 중 상당수는 강제로 봉인해야 하는 시점이었고, 해외 입시는 션의 기질과 강점을 더 키워서 션에게 맞는 학교를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션의 강점을 누르는 과정에서 부모/자식 간 갈등이 생길 것은 뻔했다. 션이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다 했다가는 국내입시에서는 실패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못하게 말려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1부터는 특목고 진학 준비에 맞춰서 션의 친구들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보다 특목고 준비와 입시에 맞춰서 선택과 집중을 시작했다.
그렇다고 제주에 보내고 나서 장밋빛 인생이 펼쳐진 것도 아니었다. 무척이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다행히 중고등학교 6 년간의 각종 경험은 미국대학생활에서도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낯선 땅에서 적응이고 말고 할 것이 없었고 오히려 자생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션과의 대화는 여기까지다.
이 질문을 한 이유는, 내 주변에 우수한 아이들을 볼 때 이 아이들의 미래도 함께 생각해 보곤 해서다.
일터에서 만났던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연결도 시켜보았다. 내가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만으로는 인적 범위의 한계가 있어서 책을 통해 만난 간접 사람들도 넣어봤다.
이 아이들의 미래가 어떤 어른들의 현재 모습과 연결되어 있을까 하면서...
우리는 '대학생이 되었으니 알아서 해야지, 졸업을 했으니 알아서 해야지'라고 말하곤 한다.
법적으로 정한 성인의 나이가 주는 무게감에 대해 생각해 봤다.
어제까지 미성년자, 오늘부터 성인. 갑자기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 책임감과 의무가 주어지는 나이.
어떤 아이는 '알아서' 자기 길을 척척 나가고 실패해도 일어서는 회복탄력성이 있는 반면, 또 어떤 아이는 부모님 걱정을 여전히 자아낸다.
아들에게 한 저 극단적인 질문은, 해외 진학이 더 좋다 안 좋다의 의미가 아니다.
꿈을 이야기하고 입시의 목표를 정할 때 아이들이 어디까지 눈을 돌릴 수 있느냐의 문제는, 동일 조건이라면 아이들이 어릴수록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네가 하고 싶은 게 생길 때 효자가 될 생각 말고 최대한 이기적이 되어라."라는 말을 종종 했다.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우리 집 가정형편, 부모님 재력을 생각해서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은 채 꿈을 접지 말라는 의미였다. 일단 말이라도 꺼내면 다른 대안을 함께 찾아볼 수도 있고, 현실적으로 정 안되면 꿈을 이루는 순서를 바꿀 수도 있다. 효자가 되어 속으로 삼키면 훗날 미련이 많이 남는다.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알아야 부모도 함께 바뀔 수가 있고, 부모가 생각이 깨어 있어야 아이들도 큰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리 좋은 부모도 못되고, 나 자신이 그리 큰 사람이 아닌데..'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다행인 점은.. 이런 계기를 통해서 궁리를 하는 동안 아이가 자라면서 부모도 함께 자란다는 점이다.
아이가 성인이 되기까지 20년의 세월이 있다. 20년이면 부모가 자라기에 충분한 세월이다. 20년 후 여전히 부모의 직업은 변함이 없을지 몰라도 내면은 성장할 수 있고 부모가 성장한 만큼 아이에게 좋은 양분이 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