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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Apr 13. 2016

행복의 원근법

가까울수록 커다란 행복에 관해

행복하고 싶다. 행복해지고 싶다. 


  아마 평생을 달달 외워야 할 주문 같은 말 아닐까. 많은 돈과 시간, 건강한 신체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그중에 무엇 하나 제대로 건진 것 없이 하루하루가 지난다. 내 나이 스물여덟은 젊다고 생각하면 한창일 때고, 늦었다고 생각하면 다 져버린 꽃 같은 나이다. 이뤄둔 것 하나 없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일이 욕심 같이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스냅사진 같은 찰나의 행복이 쌓여간다. 신기한 일이다. 이 따위의 인간도 행복할 수가 있다니. 행복, 이라는 그 원대하고도 궁극적인 삶의 목표를 가끔씩이라도 느껴보다니. 


  행복의 원근법이라고 해도 좋겠다. 먼 미래의 행복은 너무나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차라리 본다기보다는 거기에 행복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라고 해야 할 정도다. 가까운 곳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마음먹고 나면 도처에 적당한 크기의 뽀송뽀송한 행복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쩌면 행복이란 건, 매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달리 말하면, 매 순간마다 존재하는 것. 




행복
 
 소주 두 병 정도 
 나 아직 안 취했어, 묻지도 않은 너스레를 떨다가
 문득 침묵일 때  
 지난 사람들 말고
 너를 떠올릴 수 있어 참 좋다
 이제는 술 취한 새벽에 이별이나
 이별의 얼룩 같은 것들에 대해 골몰하지 않고
 너의 잔소리를 걱정할 수 있어
 참 좋다
 우리 벌써 몇 년째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사랑을 한 덕에
 이제는 나를 그리워하는 
 술 취한 옛 애인도 하나 없고 
 그래서 괜히 싱숭생숭 
 사랑도 아닌 감정으로 뒤척이지 않을 수 있어
 참 좋다
 만약에, 만약에 하고 상상해보는 일이
 되돌리고 싶은 날들이 아니라
 너랑 살아가고 싶은 날들이라서
 참 좋다
 우리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했을까
 흔한 몸짓처럼 인사처럼 그렇게 
 그럴수록 사랑이 가벼워지기보단
 내 일상이 이토록 특별해질 수 있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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