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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Feb 18. 2018

내 탓이 아니라고,

탓할 게 필요할 때가 있다.

부경대 근처에 조용하게 책도 읽고 글도 쓸 수 있는, 좋아하는 카페가 몇 군데 있다. 카페 미마, 엘림, 계절의 온도. 스타벅스나 할리스도 눈치 안 보고 오래 있긴 좋지만 경성대부경대 점은 너무 시끄럽다. 최근에 3번 정도 카페 엘림에 들른 적이 있는데, 그중 2번이나 필요한 걸 깜빡했었다. 한 번은 노트북, 또 한 번은 타이핑한 종이를 끼워둔 시집. 어쩔 수 없이 여유롭게 다른 책이나 읽다 나왔다. 여자 친구는 내 얘길 듣고 농담으로 "엘림이랑 빈이가 잘 안 맞나 봐"라고 했다. 엘림 탓을 하기엔, 난 엘림 편하고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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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셋인가 넷인가, 동네의 24시 할인마트에서 일했던 적이 있다. 처음엔 주말 야간이었는데, 사장님 내외의 신망(?)을 받고 주간 배달일도 떠맡았다. 운전을 못하는 나는 가까운 거리를 도보로 배달했는데, 하루는 좀 애매한 거리(걸어서 10분쯤)에 꽤 무거운 구매품(쌀 20kg, 수박 1통, 그 외 잡다한 것들)을 배달해야 했다. 여름이었지만, 전역 후 혈기왕성하던 나는 기꺼이 배달을 갔다. 힘들었다. 게다가 배달지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오래된 건물의 4층. 낑낑 대며 올라간 곳은 신점을 보는 무당집이었다. 손님 맞는 어르신이 장거리들을 받는 동안, 안쪽에서 누가 봐도 무당 같은 할머니가 스윽 나오더니 땀범벅인 나를 보며 한 마디 했다. "잘 살겠네. 걱정 말고 열심히 살면 잘 살 거여!" 그날 이후로, 힘들 때마다 그 기억을 꺼내 위안 삼는다. 그 덕에 마지막 희망은 늘 안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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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탓이든, 덕이든 꼭 다른 무엇에 기대고 싶을 때가 있다.
모든 게 다, 내 탓이라고 하면 왠지 불안해서.
모든 게 다, 내 덕이라고 하면 왠지 오만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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