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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빈 Apr 26. 2018

타르트 예찬

정성스러운 시간의 맛

진짜 ‘한 입’의 음식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인생을 살아왔을 텐데, 신기하게도 과거를 되짚다 보면 공감의 기억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예를 들면, “한 입만~” 같은 말. 절대 안 먹겠다던 형이나 누나가 라면 다 끓이고 나면 꼭 하던 말. 내가 매점에서 빵 사 먹을 때마다 어떻게 알고 나타난 친구가 하던 말. 짜장면이랑 짬뽕을 시키면, 꼭 누군가는 하던 말, “야, 한 입만.” 그 시절의 ‘한 입만’은 그야말로 ‘한 입’ 일뿐이었는데도 어찌나 얄밉던지. 

어쩌면 타르트 6개도 가능할 것만 같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cdXcAHDdCpI


그래도 그 시절의 라면이나 빵, 짜장면은 한 입 나눠줄 수나 있었지만, 정말 그 자체로 ‘한 입’의 음식은 기꺼이 나눠줄 수도 없다. 예를 들면 곱게 구워진 타르트 같은 것들은 말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꾸덕하게 구워진 파이 안에 촉촉한 커스터드 크림과, 그 위에 살포시 자리 잡은 갖가지 토핑들. 타르트는 그 자체로 파이라는 그릇에 담긴 한 줌의 요리 같다. 이건 뭐, 누가 달란다고 한 입만 주기엔 너무 작고, 너무 아깝다. 만약 <맛있는 녀석들>의 문세윤이 “한 입만~!”이라고 외치면, 족히 5개쯤은 한꺼번에 먹어야 될 정도로, 타르트는 그야말로 ‘한 입’의 음식이다. 


‘한 입’의 음식을 한 입에 먹지 않는 이유.


그런데 사실 나는 타르트를 절대 한 입에 다 털어 넣어 먹지는 않는다. 먹神, 먹짱 문세윤만큼은 아니지만 나라고 타르트 하나쯤이야 ‘한 입만’ 하지 못할 리가 없는데, 절대 그러고 싶지가 않다. 푸짐한 것의 한 입과 작고 귀한 것의 한 입, 포만감을 위한 한 입과 맛을 즐기기 위한 한 입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내게 타르트는, 디저트의 즐거움을 알게 해 준 음식이었다. 

꿀잼보다 달콤한 탕진잼. 하지만 타르트 따위로 탕진하지 않으니까 걱정 말라구.

출처 : http://www.joyofeaters.com/shop/mall/prdt/prdt_view.php?pidx=20030&pcate=048022005


애초에 ‘디저트’라는 말이 프랑스 어 ‘Desservir’의 “치우다, 정돈하다”라는 말에서 생겨났으니, 식사 후에 굳이 배 부르려고 먹는 음식은 아닌 셈이다. 그 크기에 비해서 값이 저렴한 편이 아닌데도 기꺼이 타르트를 사 먹는 이유 중 하나다. 타르트를 먹을 땐 아주 ‘소박한 사치’를 부리는 기분도 들고. 아니, ‘소박한 사치’라는 역설은 또 얼마나 그럴듯한 지. 


그 작은 타르트를 굳이 두 입, 세 입 나누어 먹고 있노라면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라는 진부한 질문에 대해 새로운 답을 내놓고 싶어 진다. ‘먹기 위해 산다’는 건 지나치게 동물적이고, ‘살기 위해 먹는다’는 건 지나치게 생존적이다. 먹는 행위는 삶의 절대적인 목적도, 절대적인 수단도 아니다. 누군가는 유년기에 그토록 먹고 싶던 짜장면을 위해 성공을 이루기도 한다. 해서, 적어도 타르트를 먹는 동안은 이렇게 대답하고 싶어 진다. “네, 저는 아주 잘 먹기 위해 삽니다.”


‘소확행’의 재해석


타르트를 먹으면서, 소확행의 의미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다. 소확행의 원류인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제목은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나는 이 말을 살짝 바꿔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아니라 ‘작을수록 확실한 행복’으로. 


무라카미 하루키 님 젊은 거 보게나...

 출처 :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2383992


만족감이나 행복이라는 건 결국, 기대치를 웃도는 경험치의 값이다. 예상보다 더 좋은 느낌. 작디작은 것일수록 거기에 거는 기대치 또한 그리 크지 않아서, 그로부터 겪는 경험치가 기대치를 쉽게 웃돌게 되는 거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내게는 크고 화려한 케이크보다 작고 아기자기한 타르트가 더 정확한 ‘작을수록 확실한 행복, 소확행’이었다. 대형 베이커리 프랜차이즈인 P사나 T사의 타르트는 물론이고, 동네 빵집, 서울 통인 시장의 유명한 타르트까지 그 만족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한 번도 실망해본 적은 없었다. 역시, 타르트! 


타르트, 정성스러운 시간의 맛


나이 들수록 나도 모르게 “왜 이렇게 세월이 빠르냐.”라는 말이 튀어나와서, 스스로도 놀란다. 아직 그럴 나이 아닌 것 같은데, 벌써 이러면 나중엔 어떡하려고. 근데 이게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어르신들이 허투루 뱉는 타령이 아니라, 보편성을 지닌 심리적 현상이었다. 그 이름하야 ‘시간 수축 효과’ 

시간아 쪼그라들지 마...

알아보니, 뇌 세포의 활동성이 떨어지면서 세상을 인지하고, 자극을 감지하는 정도가 무뎌지는 것이 시간 수축 효과의 주된 원인이었다. 쉽게 말해, 아직 팔팔한 때엔 똑같은 1년을 살아도 머릿속에 10000개의 기억을 담는데, 나이가 들고나면 겨우 100개의 기억을 담는 셈이다. 그런 후에 지난 1년을 돌이켜 보면, 누군가는 ‘10000개의 기억을 세어볼 만큼 긴 1년’을 보냈지만, 다른 누군가는 ‘겨우 100개의 기억뿐인데 벌써 1년이라니’가 되는 것이다.


고로, 시간 수축현상을 최대한 방지하는 방법은 의식적으로 매사에 집중하고,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사소한 것을 소중히 여기는 거다. 예를 들어 타르트 하나를 먹을 때에도, 그냥 한 입에 냅다 털어 넣지 말고, 그 작은 타르트를 두 입, 세 입에 나눠 먹는 거다. 먹으면서 겉 파이의 질감, 속 커스터드와 토핑의 맛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 그러는 동안 어쩌면 우리의 시간은 조금 더 느리게 흐를 테니까. 타르트는 그렇게 먹는 거다. 정성스러운 시간의 맛을 즐기면서, 생존이 아닌 삶을 누리면서. 

누구 나한테 이런 타르트 선물해주실 분...?

출처 : http://www.joyofeaters.com/shop/mall/prdt/prdt_view.php?pidx=20030&pcate=048022005


이 글은 칸투칸 8F 칼럼으로 최초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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