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도 재탕이 필요하다.
스물 이후, 군 복무 기간과 본가에서 집밥을 먹으며 지냈던 휴학 기간을 제외하면 약 6년 동안 ‘자취생’ 신분으로 살아왔다. 겨우 1평이 될까 말까 한 고시원의 공동 부엌에서부터 그보다 형편이 나아진 원룸의 부엌에 이르면서, 겨우 라면이나 계란 프라이 수준에 머물렀던 나의 요리도 조금씩은 구색을 갖출 수 있었다.
지난 6년 동안 나는, 꽤 그럴듯한 한 끼로는 볶음밥만큼 수월한 메뉴가 없다는 것, 웬만한 찌개나 국 요리의 기초 단계가 비슷하다는 것, 라면보다 조금만 더 신경 쓰면 그럴듯한 파스타도 뚝딱 만들 수 있다는 것, 뭐 그런 정도를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아, 그리고 당장은 돈이 더 드는 것 같지만 결국 식재료를 사서 만들어 먹어야 조금이라도 식비가 줄어든다는 것도.
2년 전, 원룸으로 이사하면서 한동안 요리 삼매경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땐 나름 학구적인 태도로 요리에 임했기 때문에, 어떤 메뉴든 2번 정도 실패하고 나면 적어도 내 입에 맞는 수준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 당시 한창 인기였던 프로그램 <집밥 백선생>을 보며 귀동냥으로 배운 팁들도 많았다. 그렇게 ‘나 홀로 셰프’를 자청했지만, 그럼에도 늘 만족스럽지 않았던 메뉴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김치찌개였다.
쌀뜨물에 푹 삭은 신김치와 대파, 양파, 두부 정도만 있어도 되는 찌개. 거기에 고소한 기름기를 더해줄 돼지고기나 참치가 있다면 탄·단·지를 고루 갖춘 최상의 찌개. 그런데 그 김치찌개만큼은 어떤 레시피대로 요리해봐도 첫술에 ‘아, 바로 이 맛이지!’ 할 수가 없었다. 물론 내 기억 속 ‘바로 이 맛!’은 엄마가 집에서 해주시던 김치찌개 맛이었다. 다진 마늘이나 간장, 청양 고추를 요리조리 더해보기도 하고 조미료의 감칠맛을 빌려보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비결이 뭘까. 결국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부 전화도 아니고, 돈 필요하다는 전화도 아니고, ‘맛있는 김치찌개’의 비법을 묻는 28살 아들의 전화라니. 엄마는 기가 차다는 듯 웃으면서, 한마디 툭 던지셨다. “오늘 저녁에 먹고, 내일 아침에 다시 끓여 먹어봐라.”
항상 제일 작은 양은 냄비에 한 끼 먹을 양으로만 찌개를 끓였던 탓에, 재탕 해먹을 일이 없었다. 대학 시절 MT에서 “김치찌개는 재탕, 삼탕해야 맛있다.”던 허름한 선배(!?)의 실없는 소릴 엄마에게 다시 듣게 될 줄이야. 전화를 끊자마자 조금 큰 냄비에 넉넉히 김치찌개를 끓였다. 어딘가 아쉬운 맛의 김치찌개로 대충 저녁을 먹고 늦은 밤 침대에 누웠을 땐, 괜히 아침이 기대되기도 했다. 잠잠히 식은 김치찌개가 무슨 발효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더 맛있어져라. 더 맛있어져라.’하는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식어버린 김치찌개는 기대와 달리 볼품없었다. 국물을 가득 머금은 김치는 말 그대로 불어 터져 널브러져 있었고, 국물 위로는 돼지고기의 기름기가 적나라했다. 밤새 술이라도 퍼 마신 듯 대파와 양파, 잘게 썬 청양 고추까지 모든 재료들이 취객처럼 누워 있었다. 너무 졸아버린 국물에 물을 약간 붓고, 다시 센 불로 팔팔 끓였다. 모든 재료들의 취기가 날아가고, 맛있는 김치찌개로 거듭나길 바라면서!
직접 김치찌개를 끓여 먹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렇게 재탕한 김치찌개 맛은 그야말로 ‘바로 이 맛!’이었다. 속까지 알찬 맛, 모든 재료와 국물이 겉돌지 않는 맛, 밥그릇을 싹싹 비우고 나서도 괜히 계속 떠먹게 되는 맛. 그리고 그 맛의 비결은 바로, 한소끔 끓인 이후 충분히 식힌 뒤. 다시 팔팔 끓이는 ‘재탕’이었다. 부족한 것 없이 잘 갖춘 재료와, 정량의 레시피, 그리고 온 마음의 정성으로도 아쉬웠던 맛이 겨우 ‘재탕’으로 채워지다니. 뭔가 허무한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재탕’이야말로 김치찌개 레시피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다. 좌우지간 한 번은 끓여 먹어야 하고, 어쨌든 몇 시간은 식혀야 하며, 그러고도 다시 끓여야 하니까. 그러니까 맛있는 ‘재탕’ 김치찌개를 맛보려면, 적어도 반나절쯤 전부터 요리가 시작되어야 하는 셈이다.
사는 일에도 그런 ‘재탕’의 시간이 필요하다. 만반의 준비, 넘치는 열정, 소진되지 않는 에너지, 그 모든 것을 갖추고도 쉬지 않고 몰아붙이기만 해서는 이루기 힘든 일들이, 우리네 삶에는 있는 것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왜 세상은 내 맘 같지 않은 걸까. 아주 진부한 말이지만, 그럴 땐 잠시 멈출 필요가 있다. 멈춰야만 보이는 것들이, 삶에는 있는 법이니까. 그런 후에 다시 시작하는 ‘재탕’의 시간 동안, 우리는 보통 이전보다 더 성장하곤 한다.
어제는 남은 김치를 탈탈 털어 김치찌개를 끓이다 보니 양이 많아져서, ‘삼탕’만에 국물을 다 비웠다. 좀 짜긴 했지만, 맛은 있다. 겨우 김치찌개의 재탕을 겪으면서, 거창하게 삶의 맛을 생각해본다. 삶이라는 게 계속 끓어오르기만 하는 일은 아니라고. 한소끔 끓고 난 후, 식어가는 시간도 있는 법이라고. 그러고 난 후에 다시 뜨거워져도 괜찮은 거라고. 삶이라는 건, 그럴수록 더 맛깔나는 거라고.
이 글은 칸투칸 8F 칼럼으로 최초 기고된 글입니다.